#오운완…매일 성실하게 ‘완료’하며 살고 있구나[언어의 업데이트]
‘인증’은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이다. 디지털상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각종 인증서와 절차를 생각해보자. ‘공인 인증서가 없는 한국인처럼 슬퍼하고 있었다’라는 밈처럼 인증은 이 세계에 우리를 입증하는 수단이다. ‘인증 사진’은 우리가 스스로를 그리는 방식이다. 창작 권한이 내게 있기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의 정확한 묘사보다 일시적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인상주의가 유행하는 것처럼, 인증 사진의 맥락은 그 시대의 사회상과 시대적 감수성의 반영이다.
미술사에 ‘사진 기술의 발명’이라는 사건이 있다면, 인증 사진엔 ‘코로나19’라는 사건이 있다. 소셜미디어의 발명 이후 ‘인증 사진’은 ‘허세’와 ‘나르시시즘’이라는 오해와 함께였지만, 코로나19를 맞아 비로소 인증 사진은 새로운 코드를 얻었다. ‘성실함’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부 활동이 줄고,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신만의 일상 루틴을 건축하려는 시도가 인증으로 기록되었다. 화려한 소비보다 투박하지만 성실함이 묻어나는 인증 사진이 인기를 끌었고, 자신만의 루틴을 꾸준히 반복하는 인증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얼마나 특별한 것을 소비하고 경험했는가보다 무엇을 얼마나 성실히 했는가를 증명하는 게 더 ‘힙한’ 인증의 시대다. 투박하고 진솔한 그 인증 사진은 사진만큼이나 솔직한 해시태그와 함께한다.
#오운완은 ‘오늘 운동 완료’라는 뜻의 해시태그다. 소셜미디어상에서 하루치 운동을 완료했을 때 사진과 함께 남기는 인증의 언어로 코로나 시기에 탄생해 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 언급이 꾸준히 증가하고 활발히 변주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오러(닝)완, 오필(라테스)완, 오골(프)완처럼 오늘과 완료 사이에 들어오는 운동이 다양해졌고, 오독(서)완처럼 그 활동의 영역이 넓어졌다.
‘오운완’은 지루한 일상에 ‘완료’라는 감각을 더해 ‘오늘치’의 성취를 만든다. 모든 성과가 지표와 수치로 계산되는 생산성의 시대,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와 더 높은 성과를 요구받는 속도의 시대에 #오운완은, 외부 검증도, 평가도 필요 없이 나만 아는 뿌듯함을 기록하는 산뜻한 인증 방식이다. 이 산뜻함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감각이다. ‘오늘 (양치를, 퇴근을, 물 마시기를) 완료했다’처럼, 스쳐간 작은 완료들을 점검하면 하루를 잘 마무리할 힘이 생긴다. 너무 익숙해져 몰랐으나 사실 생각보다 꽤 많은 완료를 하면서 살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는다.
매일 밤 숨죽이며 응원하는 파리 올림픽은 ‘오운완’의 누적이 지루함이 아닌 위대함의 방식임을 증명한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펼치는 활약은 수많은 오사(격)완, 오탁(구)완, 오양(궁)완들의 결과일 것이다. 메달로 이어지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다.
매일같이 성실히 완료하고 마감한 것들이 지금처럼 아름다운 그들의 오늘을 빚었다고 생각하면 응원과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모든 걸 쏟아낸 뒤 후회 없이 후련해 보였던 표정들, 마음껏 기뻐하던 포효의 순간이 모두 ‘오운완’의 결과임을 알아서, 나의 오늘도 더 충실하게 완료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의 완료를 거창한 목표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더 많은 ‘작은 완료’들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누리고 싶다. 그 발견과 누림이 지친 나의 일상에 산뜻한 활력이 되어 줄 것이다.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정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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