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내세우다 공멸로”…‘티메프 사태’로 본 플랫폼의 뒤틀린 구조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플랫폼(platform). 사전적으로는 교통수단 이용자가 타고 내리는 승강장을 뜻한다. 최근에는 여러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통적·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틀을 가리킬 때 더 자주 쓰인다. 대체 가능한 한국어를 찾자면 '토대'라고 볼 수 있다. 토대는 거기에 뿌리를 내린 서비스 제공자의 경제활동에 의해 유지된다. 즉 공생이 플랫폼 발전의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다. '티메프 사태'는 공생 관계가 깨졌을 때 그 후과가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준다는 시각이 짙다.
"상장하면 기업인, 실패하면 사기꾼?"
티메프의 공생 관계는 어쩌다 파국을 맞았을까. 검찰은 티몬과 위메프의 모기업 큐텐의 구영배 대표가 외형 확장을 통해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 게 화근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상장을 위한 밑작업은 티몬·위메프만 추진한 게 아니다. 쿠팡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쿠팡·티몬·위메프 모두 같은 길을 걸었지만 차이가 있다면 쿠팡은 나스닥에 상장했고 티몬과 위메프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그 결과 티몬·위메프는 자금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침몰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상장하면 기업인, 실패하면 사기꾼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신 티메프의 실패를 이커머스 플랫폼 전반에 대한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대규모 이커머스 플랫폼은 사실상 모두 오픈마켓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픈마켓이란 다수의 개인 셀러(판매자)가 자유롭게 상품을 올리고 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개 플랫폼이다. 중간 유통 과정이 없어 업체가 직매입해 판매하는 기존 온라인 쇼핑몰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다. 컨설팅 전문기업 KPMG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점유율 1위는 네이버 쇼핑(22%)이다. 그다음이 쿠팡(20%), G마켓(15%), 11번가(13%) 순으로 나타났다. 4곳의 점유율을 합하면 70%인데, 이 4곳 모두 오픈마켓이다.
이 가운데 쿠팡은 원래 전자상거래에 SNS를 결합한 소셜커머스 업체로 시작했다. 티몬과 위메프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소셜 3대장'으로 불렸던 배경이다. 하지만 쿠팡이 2014년 먼저 오픈마켓 전환을 선언했다. 티몬과 위메프도 각각 2016년, 2017년 오픈마켓으로 탈바꿈했다.
그 배경에는 인스타그램 등 주요 SNS가 직접 공동구매에 나선 점이 꼽힌다. 또 2017년 취임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형 직매입 유통업체의 수수료를 옥죄면서 오픈마켓이 반사이익을 얻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쿠팡·티몬·위메프는 전통의 오픈마켓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쿠팡이 점유율을 높이려고 쓴 차별화 전략은 '로켓배송'이었다. 티몬·위메프는 주기적으로 할인율 50%가 넘는 할인행사를 열었다.
출혈 심한 로켓배송과 반값할인
로켓배송과 할인행사 모두 상당한 지출을 감수해야 하는 전략이다. 당연히 플랫폼 입장에선 유동성 확보가 절실했다. 그 대책의 일환으로 후발주자들은 비교적 긴 정산 주기를 유지했다. 오픈마켓 셀러들은 구매자들에게 바로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한다. 대신 오픈마켓 업체가 대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수수료를 떼고 일정 시간 후에 정산해 준다.
쿠팡의 정산 주기는 30~60일로 알려져 있다. 티몬은 40일, 위메프는 37~67일이다. 한 달 넘게 지급을 미루다 보니 업체 입장에서는 '초단기 무이자 매입채무' 형태로 정산금을 확보하는 셈이다. 이를 자칫 잘못 굴리면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반품이나 환불 요청이 들어오면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티몬·위메프가 6만여 셀러의 판매 대금 1조원 이상을 유용했다는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영배 대표는 정산 주기에 대해 7월30일 국회에서 "십수 년간 이어져온 관행"이란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네이버쇼핑, G마켓, 11번가 등의 정산 주기가 1~2영업일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네이버는 물론 G마켓과 11번가의 모회사가 각각 신세계, SK 등 자금력이 충분한 대기업이라는 점도 무시하기 힘든 배경이다.
구조적 차원의 또 다른 요소는 직매입이다. 오픈마켓이 직매입까지 넘보는 것이다. 쿠팡이 대표적이다. 직매입 상품은 매출 증대에 여러모로 유리하다. 마진율에 플랫폼이 직접 개입할 수 있어서다. 예컨대 쿠팡이 셀러의 1만원짜리 상품을 중개 판매하면 정해진 수수료율(10.9%)만큼인 1090원을 가져간다. 그런데 같은 상품을 9000원에 매입해 1만500원에 팔면 마진은 1500원(14.2%)으로 커진다.
국내 의존적 플랫폼 '한계'…"해외에서 공생 기회 찾아야"
오픈마켓이 직매입 상품도 판매하는 부분은 소비자 입장에서 나쁠 게 없다. 문제는 소비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면의 갈등이다. 쿠팡에서 건강기능식품을 주로 파는 셀러 이아무개씨는 "쿠팡은 셀러들의 상품에 대해선 가품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규제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같은 상품을 싸게 내놓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차별 전략은 결국 당국의 철퇴를 맞았다. 공정위는 지난 6월 쿠팡이 직매입 등 자사 상품 6만여 개의 '쿠팡 랭킹'을 조작하고 임직원을 동원해 우호적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다. 당초 1400억원이었던 과징금은 최종 1600억원대로 늘어났다.
쿠팡의 또 다른 셀러 박아무개씨는 "소상공인과의 공생을 내세우던 오픈마켓이 점유율이 높아지니 공멸의 길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대다수 이커머스 플랫폼이 국내시장에만 의존한다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 결과 1078개 플랫폼 기업 중 해외에서 매출을 올린 곳은 29개에 불과했다. 해외 업체인 아마존, 쇼피, 알테쉬(알리·테무·쉬인) 등이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정연승 단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 5월 국회 토론회에서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이) 해외 사업을 활성화해 우리나라 소상공인과 셀러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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