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쳐의 민낯? 평생 8시간 일하고 한달 100만원 벌어도 괜찮은가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북한은 금요일 오후나 저녁에 담화를 발표하곤 했다. 즐거운 주말을 계획하며 슬슬 일을 놓으려고 할 때쯤 날아오는 북한 발 야근에 금요일 저녁을 날리며 "어쩌다 기자를 해서, 어쩌다 북한을 담당하게 되어 이러고 있는 거지" 라고 한탄하곤 했다.
기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위 많은 사람들이 본인 일을 이야기할 때 "내가 어쩌다 이 일을 해서, 어쩌다 이 회사에 들어와서"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취미가 아닌 진짜 '일'이 되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꼭 발생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쩌다 이랬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또 쉽게 일을 관두지는 않는다. 일이 주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서, 또는 일이 주는 만족 때문에 우리는 계속 일을 해나간다.
그런데 평생 하루 8시간씩 일을 하면서 한 달에 100만 원만 벌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작가인 김태희 바라컬처스랩 소장은 최근 출간한 책 <어쩌다 예술을 해서>에서 "아이가 예술을 하고 싶다고 하거든, 다음 두 가지를 질문해보세요. 첫째, 평생 하루 8시간씩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둘째, 평생 한 달에 100만 원만 벌어도 되는지"라며 직업으로서의 예술가에 대해 현실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이 책의 부제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건네는 살벌한 현실 이야기와 데일 만큼 뜨거운 위로'다. 김 소장은 우선 이 책에서 예술가의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한다. '어쩌다 이 직업을 택했지' 라고 한탄하더라도 다시 돌아가서 일을 할 수 있는 주요 동력 중 하나가 금전적인 부분인데, 예술은 이러한 동력을 받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라는 것이다.
김 소장이 책에서 인용한 문화체육관광부 발간 <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가 1년의 평균 활동 수입은 695만 원이다. 소득이 없는 예술가도 43%로 전체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예술가는 왜 이렇게 가난할까? 김 소장은 우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하는 구조적 문제를 꼽았다. "젊은 예술가가 넘쳐나게 된 진짜 이유. 한마디로 결론을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사립대학 정책의 생산품이자 소모품, 젊은 예술가'"라는 인식이다.
김 소장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4가지 요건(땅+교사+교원+수익용 기본재산)만 충족하면 자유롭게 대학을 설립할 수 있었다며 "경제가 발전하고 대학에 가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대학도 장사의 일부로 보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가 교육정책과 환경을 바꿔놓게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대학들이 돈이 되는 전공으로 예술 관련 학과들을 만들고 젊은 예술 전공자들을 쏟아낸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뼈 때리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소장에 따르면 실제 1960년대 홍익대학교에 미대는 '미술학과' 단 하나만 있었다. 그러다 전공을 쪼개어 십수 개의 학과로 늘어났다. 연극영화과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5개 남짓이었는데 지금 약 80개의 대학에서 해당 과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음악, 무용, 국악, 대중예술까지 포함하면 사립대학이 팽창했던 지난 20여 년 간 대학 졸업생 100명 중 10명은 예술 전공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젊은 예술가들의 현실은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역사와 높은 대학 진학률, 예술가에 대한 열망 등이 한데 뒤섞여 만들어진 다소 괴상한 산출물"이라고 규정한다.
김 소장은 이같은 예술가의 과잉 공급과 예술시장 확장의 보수성, 고급예술과 상업예술의 상호 경계, 일반 시민의 예술에 대한 인식과 낮은 구매욕구, 예술 마케팅의 한계 등 다양하고 복잡한 외부 요인들이 함께 작용해 예술가들의 경제적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그동안 왜 주변에 젊은 예술가들이 그렇게 많았는가에 대한 '인식'과, 그래서 지원사업이나 오디션을 통한 예술계 진입 경쟁률이 엄청날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이해'가 동시에 생겨나야 한다"라며 "단순히 주변 젊은 예술가들을 경계나 경쟁의 대상으로만 삼아서도 안 되고, 늘 지원사업이나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상황을 나 자신의 문제로만 삼아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린 시절 막연하게 품었던 꿈 따라 대학에 갔을 수도 있고, 수능 점수에 맞춰 적당히 예술대학에 진학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과 그것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걸 이해할 때"라며 현실적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예술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것처럼 예술만이 고귀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편견을 깨고, 생업과 예술을 같이 하게 되면 작품 활동에 더 큰 장점이 있다는 해외의 시각을 소개하기도 한다.
"예술만 신성하고 예술가만 고귀한 것이 아니야. 예술을 포함한 모든 노동은 신성하고 고귀해. 전업 예술가가 아닌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고 있는 예술가라면 결코 자책감에 빠지지 않기를 부탁해. 오히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저녁에 배달기사와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양한 사이드잡을 뛰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 청년 예술가들이 눈을 크게 뜨고 보기를 바랄 뿐이야.
예술가들을 위한 국제저널에서는 예술가가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강점이 있다고 이야기해. 재정적 안정, 판매의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 활동, 구조화된 일정관리가 가능, 예술계 버블 대신 외부사람들과의 연결.
내가 스스로 벌어 내 생계와 작품 활동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대는 오롯이 한 명의 어른으로 독립하였음을, 본격적인 프로 직업 예술가의 길에 들어섰음을 축하해주고 싶어. 예술 강사를 겸하든 카페 알바를 겸하든 그대의 모든 정직한 노동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해. 그러니 자책도 뒤처지는 느낌도 모두 내려놓고 오늘에 충실하자"
김 소장은 이외에도 책에서 예술가들이 가지는 섭식과 수면 장애 등 신체적 질환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이 책은 꼭 '젊은 예술가'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의 경쟁 사회 중 하나로 간주되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젊은 예술가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소장의 아래 조언도 엄혹한 경쟁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이 사회의 사람들에게 나름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이라는 먼 길을 떠나기에 앞서 막연하게 '성공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는 뜬구름 같은 생각은 내려놓자고. 그리고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목표 위에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성공을 얹고 어느 모서리 하나 너무 뾰족해지거나 무뎌지지 않도록 노력해보는 거야. 그러할 때 그대들의 미래에 '목적하는 바를 이룬다'는 뜻의 '성공'이 훨씬 가까이 도달해 있을 테니 말이야."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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