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북한,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항미(抗美)의 전초기지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42회>
“중국”의 두 의미: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 문명권
“슬픈 중국”이란 제목을 걸고서 왜 조선(朝鮮, 1392-1897) 성리학과 노비제도, 북한의 “어버이 수령” 김일성, 남한의 친중 세력과 주사파 이야기까지 이어가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정당한 질문인 만큼 해명이 필요할 듯하다.
2020년에서 2023년 사이 이미 출간된 “슬픈 중국” 시리즈 1, 2, 3권은 중국 현대사에 관한 책이다. 이때의 중국은 1949년 세워진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한다. 반면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에서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화(中華) 문명권”을 가리킨다.
왜 다시 “슬픈 중국”인가? “이씨(李氏) 조선”에서 “김씨(金氏) 조선”으로 중화 문명권에 흡입된 한반도의 역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성리(性理)”에서 “주체(主體)”로 “변방의 중국몽”이 지금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해양 문명의 경제 허브 vs. 대륙 문명의 전초기지
조선은 역사적으로 중화 문명권에 속해 있었다.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 지식인들은 자발적으로 중화 문명의 울타리(藩國)가 되기를 희망했고, 전통 시대 중화 제국의 역대 정권들 역시 한반도의 역대 왕조를 천하(天下)의 일부라 여겼다.
1945년 일제 패망 후 한반도의 38선 이남에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생겨나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었다. 미·소 냉전 시기 40년 넘게 대한민국은 중국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바다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 “해양 문명의 경제 허브”로 새롭게 발돋움하는 역사를 썼다.
이와 달리 38선 이북에는 소련군의 지도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중국이 국공내전의 폭풍(爆風)에 휩싸여 있을 때 북한은 중국공산당에 무기를 지원했을뿐더러 압록강 이남 지역을 후방 기지로 내줬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중국공산당은 1949년에서 1950년 인민해방군 소속의 한인 부대 3개 사단을 북한에 돌려보냈다. 북한의 병력 증강을 돕는다는 명분이었는데, 어찌 보면 그 조치가 한반도 이북이 다시금 중화 문명권에 빨려드는 첫 신호였다.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 유엔군에 밀려서 만주로 패주하던 그해 10월 말부터 중국은 대규모 “인민 지원병”을 파병했다. 중국은 유엔군을 한강 이남으로 밀쳐내며 김일성 정권에 이전의 영토를 되찾아주었다. 그때부터 북한은 확실하게 중화 문명권에 재편입되었다. 중국은 실로 어마어마한 군사 지원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망해버렸던 북한 정권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1950년에서 1953년까지 중국은 무려 24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북한 땅에 투입했다. 공군 12개 사단도 참전했는데, 672명의 비행기 조종사와 5만9000 명의 서비스 인력이 포함돼 있었다. 게다가 60여만 명의 중국 민간인들이 군수품 보급, 지원 서비스, 철도·도로 건설 등 여러 방면에서 노동력을 제공했다. 모두 310만여 명의 “지원병”이 참전한 셈이었다. (Li, Xiaobing. “Conclusion: What China Learned.” In China’s Battle for Korea: The 1951 Spring Offensive, 238–50. Indiana University Press, 2014).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 당시 파병된 명군(明軍)의 총수는 대략 5만에서 10만 정도로 추정된다. 당시로서는 상당 규모의 군사 지원을 받았기에 조선 왕실과 유생들은 구한말까지도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베풀어준 천조(天朝)”라며 명나라에 머리를 조아렸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은 무려 310만여 명을 보내서 최소 39만여(중국 집계) 명에서 최대 131만여(한·미 집계)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국땅에서 치러진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북한의 김일성 정권으로선 중국의 마오쩌둥에 되갚을 수 없는 커다란 은혜를 입었음이 분명하다. 중국은 그렇게 북한을 살려줬다. 그 결과 북한은 지금도 “대륙 문명의 전초기지”로 남아 있다.
갈수록 커지는 북한의 대중 의존도
오늘날의 북한도 중국의 절대적 영향 아래 놓여있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성은 갈수록 깊어지는 추세다.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00년까지만 해도 24.8%에 머물렀지만 2010년엔 83%에 이르렀고, 2023년에는 95%를 넘어섰다(Jangho Choi and Yoojeong Choi, “North Korea’s 2023 Trade with China: Analysis and Forecasts,” World Economy Brief, Vol. 14 No. 09, pp.1-7). 1961년 처음 체결되어 20년마다 갱신되는 “조·중 우호 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이하 북·중 동맹)”은 2021년 다시 연장되어 2024년 현재 64년을 맞이하고 있다. 북한의 대중 의존도가 최고조로 치닫는 현실에서 북한이 동북 3성인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이어 ‘제4성’이 된다는 전망도 심심찮게 나온다.
물론 양국은 경제 체제나 개방의 정도에서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개혁·개방을 거쳐 GDP 규모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과 고립주의 쇄국 노선으로 세계 최빈국으로 남아 있는 북한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북·중은 모두 공산주의를 내걸고서 일당독재 및 일인 지배로 돌아가는 반자유적, 반민주적, 반인류적 전체주의 정권이란 점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개혁개방 50주년을 4~5년 남겨둔 중국과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양국 사이의 이념적 유사성, 제도적 친연성, 정치적 공통성은 자명해 보인다. 시진핑 정권의 정치적 탄압과 대민 감시가 강화되면서 양국은 더욱 서로를 닮아가는 듯하다. 그런 이유로 중국 네티즌들은 시진핑 치하의 중국이 북한 서쪽에 놓인 “시(西)조선”이라 조롱하기도 한다.
중국,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하나, 방조하나?
국제 제재가 계속 강화되고 있음에도 북한이 보란 듯이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 탄도탄을 쏘아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다. 유엔안보리의 제재에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1416킬로미터 늘어진 북·중 국경선에는 유엔 제재를 피해 가는 무수한 구멍이 뚫려 있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현상 유지를 실질적으로 도와 왔다. 특히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악당 정권(rogue regime)” 북한을 지금 이대로 동북아 반미(反美)의 최후 보루이자 항미(抗美)의 전초기지로 남겨두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을 지금 이대로 살려주려는 중국의 노력은 노골적이다. BBC를 포함한 여러 외신에 따르면, 중국 동북 지역의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는 10만에 달하는 북한의 노동자들이 북한 정권에 달러를 제공하기 위해 노예 노역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의 금융기관이 북한의 해커들이 탈취한 암호화폐를 세탁해 주고 있음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례로 2020년 3월 2일 미국 정부는 북한 해커집단이 사이버 공격으로 탈취한 암호화폐 1억 달러를 세탁해 준 혐의로 중국 국적의 브로커들을 미 법원에 고소한 바 있다. 중국 선박은 제재 항목인 북한 상품을 중국의 항구로 실어 나르고 있으며, 심지어는 북한 미술가들이 노예 노동으로 생산하는 미술품들은 베이징의 갤러리에 전시되어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이다.
중국도 표면상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유엔 제재를 무력화해 북한을 살려주는 이중 전술을 펼쳐왔다. 중국 정부는 북한 정권이 급격히 무너지면 난민들이 대거 중국으로 몰려올 수 있다며 한반도의 비핵화와 안정화를 동시에 부르짖어 왔으나 설득력이 없다. 항미의 전초기지로서 북한은 휴전선 이북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북한을 딱 지금 이대로 유지·관리하려 한다. 만약 북한에 새로운 지도층이 형성되어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한다면, 휴전선 이북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마구 추진하던 1979년 2~3월 이미 베트남을 침공하여 쌍방의 수만 명이 전사하는 큰 전쟁까지 불사했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은 북한의 베트남화를 방치할 수가 없다. 중국으로서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의 길로 못 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도는 “김일성 주체사상”과 “수령유일주의”로 돌아가는 북한의 기괴한 신정체제를 그대로 살려두는 것이다. 그 체제가 유지되려면 자본주의적 개방의 물결을 막아야만 하고, 그 물결을 막으려면 북한의 핵무장을 도와야만 한다. 지난 20여 년 중국이 핵무장에 혈안이 된 김씨 왕조를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갖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계속 연명시켜 준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간다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비유 그대로 중국의 이를 가린 북한이란 입술이 잘려 나가게 된다. 핵무장을 강화할수록 북한은 국제적으로 더더욱 고립되고, 북한이 고립될수록 중국은 북한에 대해 더욱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있다. 중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현 상황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 중국에 비해 북한은 한없이 자그맣고 가난한 나라일뿐더러 이념적 동반자이자 군사동맹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중국에 핵 위협을 가할 가능성은 미국이 캐나다에 핵 공격을 가할 확률만큼이나 희박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마치 중국도 북한의 비핵화를 희망함에도 북한이 너무나 막무가내라서 중국의 영향력(leverage)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식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재래식 한계를 넘어서는 중국의 정치전(政治戰)을 전혀 모르는 백면서생의 천진난만한 관전평이 아닐까? 진정 왜 북한엔 아직도 반인류적 “악당 정권(rogue regime)”이 존속되고 있는가? 어떻게든 한반도에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중국의 대외전략 때문이다. 95%의 무역을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은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항미의 전초기지이다. 중국이 바로 그 전초기지에 핵무기를 심어놨다면 무리한 해석인가?
참혹했던 625전쟁의 결과 대한민국은 중화 대륙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있었고, 두 세대에 걸친 관민 합작의 노력 끝에 대한민국은 해양 문명의 경제 허브로 웅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중국을 칭송하면서 중화 문명권에 자발적으로 투항하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듯하다. 동시에 그들은 대개 중화-중심적(Sino-centric) 전통 질서를 뿌리째 흔들었던 해양 세력에 대해서는 극도의 경계심과 혐오감을 드러내기 일쑤다. 20세기~21세기 북한과 대한민국의 친중주의(親中主義)는 반미주의(反美主義)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음을 보여준다. 지금이야 전 세계적으로 반중(反中) 정서가 고조되어 그들은 스스로 함구하고 있지만, 정계, 학계, 언론계, 심지어 재계에까지 반미·친중 노선의 인물들이 적잖은 듯하다.
그렇게 21세기 한반도에는 중화 문명의 짙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북한 김씨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노동당의 선전·선동에 넘어간 시대착오적 주사파와 친중 세력의 부조리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은 불현듯 출현한 한국사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문화적 DNA의 발현일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에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분석하기 위해선 중화 문명권으로서의 “중국” 개념이 여전히 유용하다.
74년 전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의 기치를 들고 북한의 김일성 정권을 보위했다. 74년이 지난 지금 김일성의 손자는 명나라의 재조지은(再造之恩)에 보답하려 했던 조선 국왕들처럼 2천600만 인구의 북한을 오롯이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항미의 전초기지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이란 제목을 내걸고서 한반도에 깊게 드리운 중화 문명권의 그림자를 지금껏 파헤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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