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전기차 포비아, 정부의 불구경과 사라진 법안들 [추적+]
전기차 공포의 시대 2편
조례로 안전 설비 갖춘 지자체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안 해
여야 가릴 것 없이 개정안 발의
21대 국회서 모두 임기만료 폐기
22대 국회선 달라질 수 있을까
# 우리는 심층취재 추적+ '전기차 공포의 시대' 1편에서 '전기차 포비아'의 진실과 몇가지 오해를 짚었습니다. 역사가 100년이 넘은 내연기관차도 한계를 갖고 있는 만큼 전기차 역시 완전무결할 수 없다는 점, 이번 인천 전기차 화재사고와 지하주차장ㆍ충전시설 문제를 별개로 볼 수 없다는 점 등입니다.
# 아울러 '전기차 포비아'를 줄이는 해법도 제시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전기차 충전시설에 안전 설비를 갖추는 겁니다. 문제는 이를 규정한 법이 전무하단 점입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전기차 공포의 시대 2편입니다.
전기차 공포의 핵심을 한번 더 정리해 볼까요? '전기차 공포의 시대' 1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기차가 유난히 내연기관차보다 위험한 건 아닙니다. 다만, 전기차는 특성상 진화하는 데 한계가 적지 않기 때문에 내연기관차와는 다른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충전율 90%를 넘은 전기차의 지하주차장행行'을 막은 서울시처럼 전기차를 지상으로 보낸다고 한계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별도의 지상주차장이 없는 곳들도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건 안전 설비입니다. 특히 충전시설에서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 만큼 충전시설만이라도 안전 설비를 잘 구축하면 전기차 화재사고로 인한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공포도 감소하겠죠.
그럼 안전 설비 구축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뭘까요? 다름 아닌 법과 제도입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관련 조례를 마련해 전기차 충전시설에 차수판(수조 형태로 만들어 물을 채울 수 있는 장치)이나 전용 급수시설, 전용 소화기 등 안전 설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례만 있을 뿐 정작 '관련 법률'은 없습니다. 여야 금배지들이 여야 금배지들이 전기차 충전시설에 안전 설비를 갖추는 법안을 발의하지도 않은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엔 정부의 무관심과 불구경이 숨어 있습니다.
■ 관점➎ 법안 폐기와 빈말 = 사실 정치인들은 전기차 충전시설 화재사고를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이거나, 화재사고 후 조치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법안들을 적지 않게 발의했습니다.
사례를 볼까요?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하 당시 직함)은 2022년 8월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한 자가 해당 충전시설을 월 1회 이상 정기 점검하도록 의무화'하는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같은해 9월에는 '전기차 전용주차구역에 충전시설을 설치할 경우 소방시설도 함께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2023년 3월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기차 충전시설에서 화재나 폭발이 발생한 경우, 충전시설 운영자에게 과실이 없더라도 사고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전기안전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사업자의 과실 여부를 다투느라 피해자가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였죠. 주유소와 같은 곳은 배상책임보험을 의무가입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전기차 충전소는 예외여서 형평성을 확보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같은해 4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공동주택 등의 옥내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할 경우, 방화셔터와 소화수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소방설비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앞서 정찬민 의원이 내놓은 법안보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9월엔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기차 충전시설 신고제'를 담은 전기안전관리법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단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이를 개선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한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습니다.[※참고: 21대 국회에서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 중 본회의를 통과한 건은 단 한건으로 전기차 시장 육성 지원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전기안전관리법은 두건이 본회의 문턱을 넘었는데, 전기점검기관의 일원화와 원격점검 관련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기차 관련 법안들이 폐기된 건 공감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일례로 정찬민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은 검토 당시 "전기차 충전시설에 화재 진압용 소방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면 전기차 화재 대응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소방시설 설치 의무 부여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전기차 충전시설의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전기안전관리법에 따른 전기설비기술기준 개정 등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시설에 전용 소화시설 설치, 상시 전기안전관리 체계 도입, 방수ㆍ방진 안전기준, 급속충전시설 비상정지장치 설치 등 안전관리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다."
쉽게 말해 제도를 손보는 중이라는 거였죠. 그해 11월 '전기차 충전설비 전주기 안전관리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전기차 충전시설에 전용 소화기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공허한 약속이었던 셈입니다.
대형 화재사건이 터지기 직전, 공교롭게도 여야 금배지들은 22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들을 속속 발의했습니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자에게 화재 예방과 안전관리를 위한 조치를 하도록 하는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을, 이훈기ㆍ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충전시설을 소유ㆍ관리ㆍ점유하는 자에게 책임보험과 공제가입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전기안전관리법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충전 중인 전기차에 불이 나든, 주차 중인 전기차에서 불이 나든 전기차 충전시설의 안전을 강화하면 그만큼 전기차 화재사고의 피해를 더 줄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과연 이번엔 제대로 된 전기차 충전시설의 안전을 담보할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