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전자제품 단순조립 넘어 부품·소재 강국 꿈꾼다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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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아직도 우리에게 다소 낯선 나라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더는 그렇지 않다. 인도는 2023년 한국의 8위 수출국가(179억달러)이며, 교역 기준으로는 12위(247억달러), 무역흑자 기준으로는 4위(112억달러) 국가다. 2024년 상반기 대 인도 수출도 전년대비 8% 증가했다.
인도에 진출한 대표 기업인 현대자동차는 첸나이에 연산 82만 대 규모의 공장을 보유하고, 신규로 푸네에 2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인도 증권거래위원회에 기업공개(IPO)를 신청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으며, 롯데는 초코파이 공장설비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현지 아이스크림 업체도 인수하는 등 몸집을 불리고 있다. 지금도 첸나이 무역관에는 자동차 부품, 화학, 전기전자, 방산, 금융, 소비재 등 다양한 한국 기업들의 현지 진출 관련 문의가 이어진다.
인도 인구는 14억 명으로 세계 최대이며, 특히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살 미만인 젊은 국가다. 인도공과대학(IIT), 국립공과대학(NIT)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과대학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이비엠(IBM), 어도비 등 미국 주요 정보통신(IT)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인도 출신이다. 또한 2024년 7월 인도 증시에는 시가총액 상위 기준으로 타타컨설턴시서비스(Tata Consultancy Services)(2위·1853억달러), 인포시스(7위·899억달러) 등 세계적인 IT기업이 존재한다.
인도는 ‘세계의 연구소’
인도에는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센터가 모여 있는데, 삼성전자의 경우 노이다에 2천 명의 모바일 단말기 및 서비스 기능 개발 인력들이 상주한다. 벵갈루루에 있는 연구소 시소(SISO, Samsung India Software Operation)에는 인도인 엔지니어 3천 명이 프리미엄 모바일 칩셋, 인공지능(AI) 개발 등을 수행하고 있다. 현대오토에버의 인도법인에도 400명의 인도인 엔지니어들이 현대차그룹의 애플리케이션, 인프라, 네트워크, 보안시스템 운영을 맡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와 풍부하고 경쟁력 있는 인력풀이 이를 가능케 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면, 인도는 ‘세계의 연구소’라는 말이 실감 나는 상황이다.
실제로 인도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RBI)의 2024년 4월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서비스 수출은 지난 30년간(1993~2022) 14%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이는 상품 수출 증가율 10.7%에 견줘 훨씬 높은 수치였다. 특히 인도의 IT서비스(통신·컴퓨터·정보서비스 등) 수출은 세계 2위 수준이며, 내부적으로는 2022~2023년 동안 인도 총 서비스 수출의 47%를 차지했다.
이처럼 인도는 분명 IT‘서비스’ 강국이고, 우수하고 풍부한 소프트웨어 인력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 정부의 고민은 따로 있다. 고용 효과가 큰 전자부품 제조산업은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도 경제성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서비스업 중심의 성장이다. 인도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이미 2000년대 초 서비스업 비중이 50%를 넘어 이른바 서비스경제로 진입한 독특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이때 인도의 1인당 GDP는 1천달러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IT서비스 부문은 부가가치는 높지만 전후방효과가 낮다. 특별한 원부자재나 반제품의 투입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도의 전자산업은 휴대전화와 스마트워치 등의 활발한 국내수요에 기반해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 인도산업연합의 2024년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전자제품 생산은 2018년 600억달러 수준이었으나, 2023년에는 102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2030년에는 5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자제품 수출도 2023년 기준 236억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무려 50.5% 증가했다. 2020년에는 인도의 수출품목군 중 전자제품 순위가 9위였으나, 2023년에는 5위로 뛰어올랐다.
지난 몇 년간 휴대전화 등 모바일 제품, 자동차산업, 통신산업이 발달하면서 인도의 전자산업은 EMS(전자제품 위탁생산 서비스) 형태의 제품 조립 활동에 주력했다. 그러나 인도의 전자산업 규모가 커질수록, 최대 적자국인 동시에 정치적으로 긴장 관계인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더욱 크게 늘어난다는 데 당국의 고민이 있다. 현재 인도 전자부품 수입의 62%를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지만, 인도에는 전자부품 생산 관련 생태계가 거의 구축돼 있지 않다.
부품소재 수준 낮아
이에 따라 인도 전자산업계는 기존 ‘부품 수입 의존형 완제품 조립 제조’의 산업 형태를, 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꿈꾼다. 실제로 필자가 2024년 1월 첸나이 전자부품 전시회(Source India) 내 콘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인도의 관련 산업 전문가들은 ‘인도는 국내에서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대부분을 자국에서 생산하는 등 많은 발전을 이뤘으나, 부품소재 수준이 낮아 신속히 관련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인도에는 약 100여 개의 인쇄회로기판(PCB) 생산업체가 있음에도 품질 문제로 약 70%의 PCB를 수입하고 있으며, 센서의 경우 국외에서 전량 수입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등의 자성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인도 산업계는 수동부품(저항기, 콘덴서, 인덕터,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등)과 서브어셈블리가 전자제품 생산단가의 70~80%를 차지하고 상대적으로 투자가 용이해 우선 집중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2023년 인도의 휴대전화, 태블릿, 노트북, 데스크톱, 모니터, 웨어러블 제품 등 생산액은 417억달러에 이르렀다. 2030년에는 2551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인도 내수에서 소비되는 수량만 고려해도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인도 전자정보기술부는 2천억루피(3조2천억원) 규모의 전자부품 PLI(Production Linked Incentive, 인도 제조업 육성을 위한 생산 연계 인센티브 제도)를 추진하기 위해 관련 업계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어떤 부품 생산에 인센티브를 줄지는 인도전자산업협회가 정부를 대신해 회원사들에 지속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다.
또한 일반 전자부품과는 별도로, 인도 정부는 ‘인도 반도체 미션’(Indian Semiconductor Mission)을 통해 반도체 공장을 유치 중이다. 실제로 2024년 4월 테슬라가 반도체칩 조달을 위해 인도 타타일렉트로닉스와 전략적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2023년 9월 미국 마이크론이 구자라트에 28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착공했으며, 타타일렉트로닉스와 대만 피에스엠시(PSMC) 간 웨이퍼 생산 검토 등 다국적 대기업의 인도 반도체 생산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도 인도 전자부품·반도체산업 투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도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전장모듈 제조기업은 정부로부터 생산 연계 인센티브를 받으려면 최소 50% 이상의 로컬화를 이뤄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인도 내 생산 제품을 구할 수가 없어 애를 먹는 상황이라 향후 수요는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인도에서는 폭스콘, 페가트론, 위스트론(2023년 타타그룹에 매각) 등이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는데, 폭스콘의 경우 단순조립에서 벗어나 직접 부품 생산 투자(5억달러 규모) 계획을 발표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다만 인도 내 전자부품 생산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인도는 용수, 전기, 도로 등의 인프라가 아직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다. 실제로 첸나이에 진출한 어느 한국 기업은, 정전이 이어지는 날에는 불량품이 크게 늘고 예민한 생산기계의 성능에도 영향을 미쳐 고민이 많다고 했다. 또한 인도는 전자부품 공급 기반이 거의 없는 만큼 중간모듈 등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외국으로부터 일부 부품 수입이 불가피한데, 전자부품 수입코드의 절반 이상(52.8%)에 10%가 넘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생산원가 측면에서 불리하다.
정책 리스크도 존재
인도의 피시(PC)·노트북 컴퓨터 제조 활성화를 위한 PLI 제도에 글로벌 업체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2023년 8월에는 인도 정부가 갑자기 컴퓨터 수입 제한 조치를 발표해 관련 업계와 외국 정부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도 있다. 발표 하루만에 동 정책을 유예하는 해프닝이 발생하는 등 정책상의 리스크도 존재한다. 전자부품 개발·생산에 특성화된 전문인력도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인도 전자부품산업의 성장은 지속될 것이다. 인도 정부의 큰 고민인 높은 실업률(2024년 3월 기준 7.6%)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조업 활성화를 통한 고용 창출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자동차산업에 이어 대규모 인원 채용 효과가 있는 전자부품산업의 육성·지원은 불가피하다. 2024년 4~6월까지 실시된 총선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은 당초 기대한 의석수에 훨씬 못 미쳤지만, 연정을 통해 과반수 확보를 유지하게 됐다. 재무부나 산업부 장관 등 경제라인도 유임돼 기존 경제정책이 변함없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외 투자 다변화를 고민하는 전자부품 기업이라면 인도 시장의 성장에 관심이 필요한 때다.
은지환 KOTRA 첸나이 무역관 관장 stern@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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