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섞인 OTT, 여전히 매력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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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의 성장으로 인한 전통 미디어산업의 붕괴 가속화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국과는 달리 중앙 집중 형태인 한국 방송산업은 아직은 OTT의 공세에 버틸 여력은 충분해 보인다.
원활한 공존을 위해서는 우선 공룡처럼 마구 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OTT 미디어의 힘을 조금 빼놓을 필요가 있다.
문제점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지금이야말로 OTT와 기존의 미디어·콘텐츠산업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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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한 온라인 DVD 대여 업체에서 시작된 혁명이 오늘날 전세계 미디어산업의 지형을 뒤바꿨다. 넷플릭스라는 이름의 이 신생기업은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괴적 혁신을 일으켰다. 월정액 무제한 대여라는 파격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단숨에 구독자들을 확보한 다음 2007년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나왔다. 단순히 새로운 서비스의 등장이 아닌 미디어 소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는 혁명의 시작이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불과 2년 만에 기존의 DVD 대여 서비스를 뛰어넘으며 넷플릭스의 주력 사업이 됐다. 넷플릭스의 등장이라는 변화의 물결이 미디어·콘텐츠산업을 덮치고 있었지만 레거시 미디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물결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 미디어 소비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고, 전통적인 미디어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 혁명적 변화는 미디어·콘텐츠산업을 대체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새로운 도전들도 분명 도사리고 있다.
콘텐츠 과잉과 품질 저하
OTT의 등장으로 현재 콘텐츠산업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점은 콘텐츠 과잉 생산과 품질 저하다. 2012년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한 이후, 각 OTT 플랫폼들은 구독자 확보를 위해 치열한 콘텐츠 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양적 팽창이 반드시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2022년 한 해 동안 넷플릭스를 비롯한 주요 OTT 플랫폼이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와 영화는 1700편이 넘는다. 하지만 이 중 실제로 주목받은 작품은 20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과도한 콘텐츠 생산은 제작 현장의 제작비 상승이나 인력 부족, 품질 관리 부실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콘텐츠 과잉 생산이 일부 제작사에만 제작이 집중되는 빈익빈부익부 현상과 함께 일어난다는 점이다. OTT 플랫폼들은 중소 제작사에 기회를 주기보다는 검증된 몇몇 스타 제작자와 일하기를 원한다. 스타 제작자의 몸값은 점점 올라가고 중소 제작사는 일거리가 없는 것이 최근 콘텐츠 제작 현장의 현실이다.
거기에 더해 창작자들의 권리침해와 보상 체계 왜곡도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OTT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가 창작자들의 협상력을 약화시킨다고 본다. 특히 넷플릭스의 ‘코스트 플러스'(cost-plus) 모델은 대부분의 제작비를 선지급하는 대신 저작권을 전면 양도받는 방식으로, 창작자들의 장기적인 2차 저작권 수익을 차단한다. 2023년 있었던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의 파업은 이러한 불공정 관행 개선을 요구하는 움직임이었다. WGA의 성명에 따르면 OTT 시대의 도래로 TV 작가들의 평균 연봉이 2014년 대비 23% 감소했다고 한다.
배우들 역시 한 작품에 출연하고 다른 방송국에 콘텐츠가 판매되는 형태를 통해 재방송될 경우 재방료를 받게 되는데, OTT 플랫폼의 콘텐츠에서는 재방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 조연으로 출연한 키미코 글렌이 초기 출연료를 제외하고 10년 넘게 해당 작품으로 받은 돈이 27달러(약 3만7천원)에 불과하다고 밝혀 충격을 준 사례도 있다. 이런 관행 등으로 인해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하지 못하게 되자 배우들의 출연료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문제는 조연급이나 단역 출연자들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번 올라간 몸값은 OTT가 아닌 다른 미디어에도 영향을 끼쳐, 전체적인 콘텐츠 제작비가 상승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핵심 창작자를 비롯해 완성도를 높이는 숨은 조력자들이 수익에서 소외되는 이러한 OTT 미디어들의 과열 경쟁은 콘텐츠의 질적 저하를 부르는 가장 큰 요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시장의 혼란을 부르며 과열 경쟁 양상을 보이는 OTT 플랫폼들이 앞으로 얼마나 이 상황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과도한 콘텐츠 투자와 가격 경쟁이 그들 스스로의 살을 깎아먹고 결국에는 장기적인 수익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디즈니플러스는 출시 3년 만에 누적 손실이 80억달러를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의 2023년 분석에 따르면, 주요 OTT 플랫폼들의 평균 손익분기점 도달 시기는 당초 예상보다 2~3년 더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서비스 품질 저하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대한 부담은 결국 소비자의 몫이 된다.
글로벌 지향도 좋지만…
이런 내부적 문제 외에도 외부적 문제도 많다. 특히 글로벌 OTT 플랫폼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각국의 지역 문화산업에의 위협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넷플릭스와 같은 국외 OTT 서비스의 시장점유율 증가로 프랑스 영화산업의 연간 투자액이 10년 전 대비 15% 감소했다고 한다. 최근 한국 독립영화계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프랑스 정부를 비롯 많은 국가들이 국외 OTT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자국 콘텐츠 쿼터제를 도입하는 등 문화적 다양성 보존과 자국 미디어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지만 OTT 미디어의 매서운 공세에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는 의문이다.
OTT의 성장으로 인한 전통 미디어산업의 붕괴 가속화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국 케이블TV협회(NCTA)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미국 내 케이블TV 가입자가 600만 명 이상 감소했다. 이는 단순한 산업 구조 변화를 넘어, 지역사회의 정보 전달 채널 축소와 미디어 다양성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 케이블TV는 지역 뉴스미디어도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역 뉴스의 쇠퇴가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비단 OTT로 인한 직접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지난 15년간 미국 내 지역 신문사의 25%가 폐간됐으며, 이는 지역 케이블TV의 쇠퇴와 맞물려 지역사회의 정보격차를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미국과는 달리 중앙 집중 형태인 한국 방송산업은 아직은 OTT의 공세에 버틸 여력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이나 종편을 불문하고 매년 영업이익 감소 추세에, 이미 적자로 전환된 몇몇 채널들의 현 상황을 보면 절대로 남의 일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OTT 플랫폼의 알고리즘 기반 추천 시스템 역시 콘텐츠 편중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에게 다양한 장르와 문화에 대한 노출을 제한하고, 장기적으로는 문화적 획일화를 초래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자체 발표에 따르면, 추천 시스템에 의한 시청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알고리즘 기반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정보 다양성을 감소시키며 결국 콘텐츠 제작자들이 다양성을 포기하고 대중성에만 집착하게 만든다. 콘텐츠 산업은 대중들이 다양함을 통해 콘텐츠 소비 스펙트럼을 늘려가야만 성장할 수 있다. 매번 보는 것만 보게 되는 현 알고리즘 추천 기반 시스템은 결국 콘텐츠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다양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공존을 위한 방향들
OTT 서비스가 가져온 혁명적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는 이상 이제는 공존을 고민해야 할 때다. 원활한 공존을 위해서는 우선 공룡처럼 마구 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OTT 미디어의 힘을 조금 빼놓을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의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지침'(AVMSD)은 OTT 플랫폼에 대한 규제의 좋은 예시다. 이 지침은 OTT 서비스에 유럽 작품 30% 쿼터제를 도입하고, 자국 콘텐츠 제작 투자를 의무화하는 등 공정 경쟁과 문화적 다양성 보장을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OTT 혁명은 미디어·콘텐츠산업에 양면적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편의성 증대와 콘텐츠 다양화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산업 생태계 교란과 사회문화적 부작용이라는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향후 OTT 플랫폼의 발전 방향은 이러한 양면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업계, 소비자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협력적 접근이 필요하다. 캐나다의 ‘온라인 스트리밍법’이 좋은 예다. 이 법은 글로벌 OTT가 서비스하는 지역의 콘텐츠 제작자를 위한 기금을 내도록 강제한다. 실효성과 적법성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이런 식의 OTT 서비스에 대한 규제와 자국 콘텐츠 보호의 균형을 추구하는 방향은 옳다고 본다.
공존에 대한 노력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지속적인 연구와 토론,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력이 요구된다. 문제점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지금이야말로 OTT와 기존의 미디어·콘텐츠산업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아닐까 한다.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발전이 아닌 궁극적으로 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지혜와 노력을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rabike04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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