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목표 이루고 또 다른 성장통 겪는 안세영
“스포츠는 개인보다 팀” 지적 속 “시스템·훈련 방식 점검 필요” 목소리도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방수현 이후 처음'. 이제 이 문구는 사라진다. '안세영 이후 처음'으로 바뀐다. 안세영(22)은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움켜쥐었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 방수현 이후 28년 만의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이다. 어릴 적부터 '셔틀콕 신동'으로 불렸던 이의 세계 정복이다. 한국 배드민턴은 파리 대회 이전까지 복식에서 5개의 금메달을 딴 반면, 단식에서는 1개밖에 올림픽 금메달을 못 땄었다.
드라마 모티브 된 천재 라켓 소녀
안세영은 어릴 적부터 돋보였다. 6세 때 복싱선수 출신이자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이었던 아버지(안정현씨)를 따라다니다가 라켓을 처음 잡았다. 배드민턴부가 있는 풍암초등학교에 입학해 배드민턴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만 15세 때 참가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대학교와 실업팀 언니들을 상대로 전승을 거두면서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최연소 국가대표(2017년 12월)가 됐다. 2021년 방영된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에는 중학생 배드민턴 국가대표 한세윤이 나오는데 안세영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었다. 한세윤은 우승한 후 안세영이 고등학교 때 했던 세리머니를 똑같이 재현했다.
어린 나이에 대표선수가 된 터라 선수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휴대폰 보는 것을 즐기지 않아서 외로움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달랬다. 안세영 또한 별이 되고 싶었다. 16세 때 참가한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2018년) 때는 첫 경기에서 0대2로 완패하며 조기 탈락했다. 상대는 천위페이(중국)였다. 당시 안세영은 "하루도 안 쉬고 (도쿄올림픽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고 진짜 그렇게 했다. 하지만 피땀, 눈물에도 1년 늦게 치러진 도쿄올림픽(2021년) 단식 8강전에서 천위페이를 만나 또다시 0대2로 졌다. 경기 후 안세영은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쉬는 날 없이 계속 훈련한 결과가 '8강 탈락'이라는 게 너무나도 분했다.
안세영은 다시 신발끈을 꽉 조여 맸다. 단점이던 공격력을 보완했다. 강점이던 수비는 극대화했다. 기나긴 랠리에서 절대 밀리지 않게 체력 또한 보강했다. 이제 안세영과 마주한 상대는 거의 벽과 싸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됐다. 그리고 2023년 7월말 기어이 세계 1위로 올라섰다. 1996년 9월 방수현 이후 27년 만이었다. 2018년 2월에 기록됐던 그의 첫 세계랭킹(1335위)을 고려하면 5년5개월 만에 정상으로 솟구쳐 오른 셈이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때는 천적인 천위페이를 결승에서 꺾었다. 경기 중간에 무릎 부상을 당했는데도 코트 위에서 버텨냈다. 그런 안세영이 안쓰러워서 관중석의 엄마는 경기 포기를 종용하기도 했으나 안세영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천위페이를 상대로 복수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해피엔딩' 복수혈전이었다. 안세영은 당시에 대해 "이전 아시안게임(2018년)에서 1회전 탈락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해봤고, 그때 상대했던 선수와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 경기를 다시 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면서 "천위페이와 대결해 승리하는 것이 너무나도 큰 과제였는데 그것을 넘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돌아본다.
하지만 항저우아시안게임은 그에게 금메달과 함께 크나큰 시련도 줬다. 무릎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무릎 통증이 계속 그를 괴롭히면서 암흑 속에서 2023년을 마쳤다. 부상 탓인지 2024 시즌 초반에는 국제대회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다. 허벅지 근육 부상까지 당했다. 올림픽은 다가오고 좀처럼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으니 조급해졌다. 올림픽 전에 완쾌되지 않는다는 재검진 결과도 나왔다.
그래도 안세영의 정신력은 강했다. 2주 연속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며 올림픽 채비를 마쳤다. 안세영은 지난 7월 미디어데이 때 "파리에서 낭만 있게"라는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파리올림픽에서 보란 듯이 금메달을 따냈다. 8강전, 4강전 때는 상대에게 먼저 1세트를 뺏기고도 2·3세트를 내리 따내면서 역전승하는 괴력도 선보였다. 오히려 결승전이 더 싱거워 보일 정도로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써냈다. 여자 배드민턴은 이제 '안세영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최고 스타들이 겪는 협회와의 갈등
안세영은 올림픽 금메달에 도취하지 않고 곧바로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직격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노를 자양분 삼아 하루하루를 버텨왔다고 했다. 배드민턴협회의 선수 부상 관리 등에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단식 선수인 자신을 소외시키는 복식 위주의 대표팀 훈련에도 실망감을 내비쳤다. 이후 배드민턴협회는 "부상 중 경기 출전은 선수가 원했다"고 밝혔다.
천위페이 등이 전담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안세영 또한 배드민턴협회가 지난 2월부터 안세영만을 담당하는 전담 트레이너를 배치했으나 파리올림픽 직전에 계약이 종료돼 함께하지 못했다. 해당 트레이너가 안세영의 멘털 코치도 되어줬다는 점에서 많은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세영은 급기야 대표팀을 떠날 생각마저 내비쳤다. 은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팀을 벗어나 자유롭게 국제대회를 다니다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직전에 대표팀에 합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들은 올림픽 직전 해에는 바깥 외출이 거의 어렵다. 황선우(수영)도 대회를 앞두고 선수촌에서 거의 300여 일을 있었다고 했고, 무표정한 사격 자세로 글로벌 스타로 거듭난 김예지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5세 딸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어찌 됐든 과거의 훈련 방식이나 시스템은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안세영의 직격 비판은 일견 한국 수영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박태환이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 이용대와 닮아있다. 이들도 최고의 성적을 낸 후 한동안 해당 연맹, 협회와 갈등을 빚었다. 개인 후원 등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더불어 대한체육회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올림픽 후 안세영과 협회의 갈등 문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겠으나 벽 앞에서 물러섬이 없던 안세영의 또 다른 성장통이 될 전망이다.
'스타 이즈 본(A Star Is Born)'. 안세영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수식어다. 최연소 국가대표였던 그는 성장 드라마를 쓰면서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연이어 제패했다. "패한 경험이 많아서 독하게 준비한다"고 말하던 안세영. 독하게 해서 금메달리스트가 됐고, 독하게 부당하다고 느끼는 점을 토해 냈다.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일각에선 팀이 중요한 스포츠에서 너무 개인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아쉬움도 나온다. 그 파장 또한 안세영이 오롯이 감내해야 할 몫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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