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버스기사들 많이 보이죠? 그 친구들이 실속파예요” [강홍민의 굿잡]
서울교통빅데이터플랫폼(TData)에 따르면 지난 4일 하루 기준 서울시 시내버스를 이용한 승객 수가 300만명에 달한다. 버스는 매일 일터로, 학교로 나가는 시민들의 발이자 때론 잠깐의 쪽잠을 선사하는 안식처다. 30여 년간 베테랑 버스기사로 운전대에 청춘을 바친 강효성(다모아자동차)씨의 601번 버스는 오늘도 달린다. 무사고 버스기사로 내년 정년을 앞두고 있는 그를 만나 ‘버스기사의 세계’를 들어봤다.
운전대를 잡은 지 얼마나 되셨나요.
“1991년부터 버스를 시작했어요. 중간에 한 10년 정도 개인택시도 했었죠. 한 8년 전쯤 이 회사(다모아자동차)로 오게 됐는데 벌써 정년이 다 돼 가네요.(웃음)”
버스에서 개인택시, 다시 버스로 돌아온 이유가 있을까요.
“평생 운전을 했어요. 택시를 한 10년 하다가 너무 힘들어 이제 운전 안하기로 마음먹고 귀농을 준비했었어요. 근데 그 귀농도 쉽지가 않더군요. 그 무렵 친구가 이 회사에 추천 공고가 떴으니지원해보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자신이 없었어요.”
베테랑 운전수가 왜 자신이 없으셨답니까.(웃음)
“당시만 해도 여기 경쟁률이 엄청 치열했거든요. 그래서 지원한다고 해도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었죠. 근데 운 좋게도 지금까지 일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웃음)”
일반적으로 버스회사에 지원을 하려면 뭐가 필요한가요.
“버스기사들은 1종 대형 운전면허, 버스운전자격증이 필요합니다. 서울 버스는 시에서 운영하는 운전 필기시험도 통과해야 하고요. 그 자격이 갖춰지면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서류전형-면접을 거치죠. 그리고 운행테스트 격인 실습 연수 교육을 받아요. 한 달 간 선배 기사를 따라다니면서 노선을 외우고, 직접 실습도 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1종 대형 운전면허, 버스운전자격증, 시 운영 필기시험 통과도 필수···보조기사 경력이 쌓이면 고정기사로 승급될 수 있어"
경력이 없어도 실습만 통과하면 바로 버스를 운행할 수 있군요.
“예전에는 경기도에서 1~2년 정도 무사고 경력을 쌓고 서울버스회사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왜냐하면 서울은 준공영제라 다른 지역보다 월급이 좀 높아요. 근데 이제 경기도도 준공영제로 운영해서 경기도로도 많이 지원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 과정을 거치면 바로 운행할 수 있나요.
“그럼 보조기사로 근무하게 됩니다. 보조기사는 버스회사에 있는 노선에 모두 투입될 수 있는 말 그대로 보조역할을 하는 버스기사예요. 갑자기 근무인 기사가 사정이 생겼을 때나 추가로 들어가야 할 때 투입되는 역할인 거죠.”
그럼 보조기사는 모든 노선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겠네요.
“그럼요. 모든 버스기사들은 자신의 회사 노선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저도 제가 맡은 601번 말고도 다른 버스 노선을 다 알고 있어요. 회사에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다 외워야 합니다. 처음엔 보조기사로 일 하다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고정으로 맡게 되죠.”
버스 노선은 어떻게 정해지나요.
“대부분 회사가 지정해줍니다.”
서울시내버스는 파란색, 초록색으로 나뉘잖아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파란버스는 간선, 초록버스는 지선버스예요. 간선은 버스전용차로로 많이 다니고 지선은 좁은 길이나 골목을 많이 다녀서 아무래도 간선이 운행하기는 더 편하죠. 예전에 비하면 버스전용차로가 생겨 운전하기 얼마나 수월해졌는지 몰라요. 제가 처음 운전할 때만 해도 버스에 에어컨이 없어서 메리야스(속옷)만 입고 운행 나가기도 했는데 요즘 버스는 냉난방이 아주 잘돼 있잖아요.(웃음)”
버스운행 시간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첫차가 새벽 4시부터 시작하는데, 제가 맡은 601번 버스는 차고지까지 왕복 3시간 정도 걸려요. 버스 한 대당 보통 기사 2명이 한 팀이에요. 한 주는 오전을 했으면 그 다음주는 오후 운행을 하는 식이에요. 오전근무는 2회, 오후는 3회 이렇게 운행을 하고, 주말은 쉬니까 주 5일제 근무예요.”
첫 차를 배차 받을 땐 새벽같이 나와야겠네요.
“첫 차 땐 새벽 3시 전에 나와야죠. 근데 그 다음차도 비슷해요. 오전조엔 무조건 새벽에 출근합니다.”
어릴 적 버스기사님들이 반대편 버스와 손 인사 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져 보였거든요. 요즘엔 그 모습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아휴 요즘엔 하면 안돼요. 예전에 인사하다가 몇 번 사고가 나서 회사에서 인사 못하게 예방교육을 해요. 그런데도 하는 사람들은 꼭 해요. 도로에서 보면 반갑긴 하거든.(웃음)”
"길 미끄러운 겨울이 운행하기 가장 힘들어, 시에서 뿌린 염화칼슘 덕분에 요즘엔 운행 수월···오전 3회에서 2회로 조정된 후 배차 간격 여유 생겨"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철 아니면 눈이 많이 오는 겨울, 또는 바람 살랑살랑 부는 봄·가을 중 언제가 가장 운행하기 어려우세요.
“아무래도 겨울이죠. 눈이 많이 오면 미끄럽거든요. 금화터널 같은 고바위에 눈이 얼어버리면 정말 난감합니다. 근데 요즘에는 서울시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염화칼슘을 뿌려서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늘 궁금했던 건데, 운행 중에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면 어떻게 하세요. 요즘엔 버스전용차로로 돼 있어서 갓길에 세우기도 애매해 보이거든요.
“우리는 혜화동에 화장실이 있어요. 거기서 해결합니다. 오전에 세 번 운행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니까요. 화장실에 뛰어가서 지퍼를 올리면서 버스에 탄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버스기사들이 너무 피곤한 거예요. 시에서 이건 안 된다고 해서 지금처럼 바뀐 거예요.”
지금은 한 번 운행하고 얼마나 쉬세요.
“보통 40분에서 1시간 정도 휴식시간이 있어요. 그러니까 화장실도 충분히 갔다가 커피도 한 잔하고 여유가 있어졌죠. 여기 버스기사들이 얼마나 재밌다고요. 잠깐 얘기하다 웃다보면 그새 시간이 지나가버려요. 제가 여기 다니지만 분위기가 참 좋아요.(웃음)”
요즘 버스를 타보면 20대, 30대 젊은 기사님들도 자주 보여요.
“20대 기사들도 많아요. 전 그 친구들이 아주 실속있다고 봐요. 서울 버스기사 초봉이 높거든요. 어디 가서 6천만원을 받겠어요. 최소 5,500만원 정도 되니 얼마나 괜찮은 직업이에요.”
자격증 외 버스기사가 갖춰야할 덕목이 있다면 뭔가요.
“가장 중요한 건 인간성이에요. 운전도 운전이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거든요. 간혹 욱하는 기사들은 손님이랑 멱살잡이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안 되거든요. 버스기사는 속을 다 내려놔야해요.”
승객들 중에서도 선을 넘는 분들이 간혹 있긴 하죠.
“그럼요. 술 먹고 버스타서 주정하는 사람이나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대거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내가 그 사람이 누군 줄 어떻게 아느냐고 참···(웃음) 그래도 그냥 넘어가야 돼요. 왜냐하면 다른 승객들이 있으니까요.”
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뭔가요.
“이거 캠페인 좀 했으면 좋겠는데, 버스 타고 내릴 때 휴대폰을 보는 거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 휴대폰을 보고 내리다가 계단을 헛디뎌서 넘어지는 게 한 두 번이 아녜요. 정말 위험하거든요. 자칫 크게 다칠 수 있어서 버스 타고 내릴 때만이라도 휴대폰은 안 보셨으면 해요.”
직업병도 있을 것 같아요.
“버스기사들은 늘 잔병을 안고 살죠. 오래 앉아 있다 보니 허리나 어깨는 늘 아프고요. 무릎이 안 좋은 기사들도 많죠. 그래도 예전에 비해 버스가 많이 좋아져서 직업병도 조금 사라진 듯해요.”
얼마 전 성산대교에서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당시 성산대교가 공사 중이었는데, 제 앞을 지나던 오토바이가 배수로 구멍에 걸려 넘어진 거예요. 굉장히 큰 오토바이라 운전자 혼자 세우지 못하고 깔려 있었던 거죠. 그걸 목격하곤 버스를 세우고 바로 뛰어나갔어요. 오토바이를 세우면서 괜찮냐고 묻곤 바로 버스로 돌아왔죠. 뭔 정신이었는지 몰라요.(웃음)”
버스에 탄 승객분들도 놀랐겠어요.
“아마 그러셨을 거예요. 다만 아쉬운 게 당시에 저도 너무 놀라서 승객분들에게 죄송하단 말씀을 못 드렸다는 거예요. 다행히도 별 말없이 이해해 주셔서 감사했죠. 참, 그때 승객 중 한 분이 기자셨는데, 그 분께서 SNS 사진을 올리고 회사에 연락을 하셔서 알려지게 된 거더라고요.”
주변에선 뭐라고 하시던가요.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 부끄럽죠.(웃음) 누구라도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저처럼 했을겁니다.”
이 직업, 만족하시나요.
“그럼요. 이 일 안했으면 뭘 했을까 싶어요. 버스기사하면서 집도 사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생겼어요. 내년이 정년이지만 건강이 허락한다면 2~3년 더 일 하고 싶어요.(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이지윤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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