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도안으로 차르르…인테리어 소품에서 ‘별다꾸’까지 [ESC]

한겨레 2024. 8. 1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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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비즈발 공예
줄에 구슬 꿰어 만든 발…빛 가리는 기능보다 책장·벽 등 디자인용으로
레트로 유행 속 엠제트 사이에서 인기…“쉽게 시작, 완성도 높은 공예”
온·오프 발품 팔면, DIY키트보다 저렴…핀터레스트 도안 검색부터 시작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 비즈발 공방에서 열린 일일 수업에서 유해강 필자가 비즈줄을 족자봉에 끼우며 비즈발 만들기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실장

바지런히 꿰어 여기저기 드리운다. 창틀에 걸면 햇볕을 가려주고, 문틀에 걸면 공간을 나눠주는 비즈발(주렴)이 최근 엠제트(MZ) 세대의 ‘꾸미기 필수템’으로 떠올랐다. 비즈(beads)는 여성복, 수예품, 실내 장식 따위에 쓰는 구멍 뚫린 작은 구슬이다.

“옛날 비즈발을 보면 새나 산 같은 자연물을 담아낸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나 그림으로 직접 만드는 게 대세예요. 특히 비즈발을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 엽서나 포스터처럼 벽이나 수납장에 걸어두는 분들이 많아요.”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 공방에서 만난 비즈발 브랜드 ‘마이뭄’의 대표 진현주(24)씨가 말했다. 이날 진행된 ‘비즈발 만들기’ 일일 수업에 앞서 일주일 전, 나는 이틀 꼬박 온라인을 뒤적여 엄선한 그림을 진씨에게 보냈다. 나의 선택은 이파리 하나가 분홍색인 네잎클로버. 하반기에는 부디 ‘핑크빛’ 요행이 일어나길 바라는 사심을 담았다. 몇시간 뒤 도안을 만들어 보내온 진씨에게 나는 “혹시 배경 하얗게 될까요?”라고 물었다가 수정본을 보고는 “죄송한데 처음 게 더 나은 것 같아요”라는 ‘디자인계 빌런’의 대사도 한번 뱉었다. 그렇게 도안이 확정됐다. 20㎝×20㎝ 비즈발에 필요한 8㎜ 구슬은 가로세로 25개씩 총 625개였고 색깔은 모두 다섯 종류가 쓰였다. 이날 수업에서 내 앞에 연두, 초록, 하양, 연분홍, 분홍색 구슬이 그릇에 가득 담겼다.

비즈 반지·팔찌에 이은 후발주자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 비즈발 공방에서 열린 일일 수업에서 참석자들이 순서에 맞춰 비즈를 줄에 꿰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실장

“비즈발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똑같은 줄을 두번 만드는 거예요. 도안을 꼼꼼히 보는 게 중요하죠.” 진씨가 말했다. 나는 아이패드에 띄워진 도안을 보고, 필요한 비즈의 색과 개수를 확인해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네모 칸 하나당 구슬 하나. 반으로 접은 40㎝가량 면실에 첫번째 ‘시작 비즈’를 끼우고, 실의 양 끝을 모아 가운데가 벌어지는 얇은 대바늘 틈에 끼웠다. 대바늘을 통해 비즈를 끼우면 제작 시간이 대폭 줄기 때문이다. 25개의 비즈와 마감 비즈 1개, 그리고 누름돌을 끼운 뒤에는 펜치로 세게 눌러 비즈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진씨는 “누름돌을 너무 바짝 붙이면 줄이 팽팽해져 ‘차르르’한 느낌이 없다”며 손톱만한 틈을 줄 것을 권했다. 누름돌 위로 매듭 묶기를 두번 해주면 한 줄이 완성된다. “만든 줄은 도안에서 지워주면 덜 헷갈려요.” 진씨가 말했다. 그렇게 25개 줄을 만들고 차례로 족자봉에 끼우니 네잎클로버가 ‘차르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완성까지 1시간 반이 걸렸는데, 진씨와 함께 만들지 않았더라면 5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비즈발’은 구슬을 줄에 꿰어 만든 발이다. 대나무발, 갈대발과 같이 햇빛 가리기, 통풍, 공간 분리가 기본 용도다. 그러나 최근 인기인 비즈발은 개인이 선호하는 디자인적 측면이 기능적 특성에 앞선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 비즈발 브랜드 ‘이낭룽’ 대표 황인아(31)씨는 “이전에는 문을 닫지 않으면서 시야를 가리는 용도로 비즈발을 많이 썼는데, 이제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많이 쓴다”며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책장, 벽 등에도 드리운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꾸미기에는 몸집이 작을수록 유리한 법. 옷핀을 활용한 초소형 버전까지 등장했다.

진현주씨 공방에 걸려 있는 비즈발 ‘빈티지 토마토’(26.5×32㎝)와 ‘빙’(氷, 26.5×36㎝).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실장

비즈발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씨와 황씨는 무엇보다 ‘각 줄 사이의 길이 차이를 줄이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길이가 들쭉날쭉하면 끝부분이 우글거릴뿐더러 그림도 흐트러져 보이는 탓이다. 누름돌 또는 매듭의 위치를 일정하게 잡아야 길이 차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 진씨는 “줄은 면실을 쓰는 게 좋다”고 추천했다. 낚싯줄은 끝이 휘고, 우레탄은 시간이 지나면 줄이 약해지고 끊어질 수 있어서다. “보관할 때에는 뜨거운 곳만 피해주시고, 줄을 당기지 말아주세요.” 진씨의 당부다.

올여름, 비즈발에 열광하는 건 레트로 열풍에 빠진 엠제트 세대다. 지난해 비즈 반지, 비즈 팔찌 등 ‘옛날 감성’ 액세서리가 먼저 유행했고, 비즈발이 후발주자로 부상했다. 진씨와 황씨 모두 올해 초 비즈발 수업·판매를 시작해 인스타그램으로 홍보했는데, “4월부터 인기를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키워드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를 봐도 네이버의 ‘비즈발’ 검색량은 올해 1월까지 1천대를 맴돌다가 2월 4천번을 넘어서며 상승세를 나타냈다. 검색자의 90%는 10~30대. 6월과 7월에는 평균 4만번가량 검색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무렵 오프라인에도 비즈발 붐이 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5층 액세서리 상가에 있는 ‘솔로몬’은 비즈발 재료 ‘성지’ 중 한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대표 김태인씨는 원래 단추와 슬라임 등을 팔았는데 수입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일본에서 비즈발이 유행이라는 걸 전해 들었다. “올해 5월 비즈를 팔기 시작하면서 손님이 많이 늘었어요.”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비즈발 성지 ‘보석상자’의 대표 정해주씨는 “올해 6월부터 비즈발 재료 구매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손님은 주로 10~30대 여성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비즈발 유행에 대해 “엠제트 세대는 꾸미기와 개성 표출을 중요시한다. 나만의 도안으로 비즈발을 만들어 공간을 꾸미고, 이를 찍어 에스엔에스에 올리며 만족감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옷핀 비즈발은 키링·벨트고리로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5층 액세서리 가게 ‘보석상자’에서 손님들이 비즈를 고르고 있다. 유해강 제공

지난달 27일, 동대문종합시장 5층은 젊은 손님들로 북적여 에어컨 바람이 무색하게 후덥지근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최지인(25)씨는 이날 서너곳의 가게를 돌아다니며 크림색, 녹색 비즈 등을 차례로 모았다. 필요한 비즈가 한 가게에 모여 있는 경우는 드물뿐더러 미묘한 색깔 차이, 가격 차이 때문에 여러 곳을 돌게 되는 것. “비즈발을 만들어 수납장의 안 예쁜 부분을 가리려 해요. 직접 그린 도안으로 소품을 만드는 거라 더 뿌듯할 거 같아요.” 최씨가 말했다. 동대문종합시장까지 온 이유에 대해서는 “일단 가격이 더 싸고, 온라인으로 비즈를 사면 화면상 색과 실제 색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지인씨가 만들려는 비즈발 크기는 가로세로 약 30㎝. “재료비로 총 2만원 정도 썼다”고 했다. 비슷한 크기의 비즈발 디아이와이(DIY) 키트 가격은 3만원 초반, 완제품 가격은 5만원 정도다.

유혜원씨가 자신의 일러스트 작품을 토대로 만든 비즈발(37×22㎝). 나팔꽃을 배경으로 새가 빛을 물고 나는 장면을 연출했다. 유혜원 제공

도안과 재료에 따라 ‘작품급’ 비즈발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날 같은 곳에서 ‘비즈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시각디자인 전공생 유혜원(26)씨를 만났다. “동대문시장에서 유행한 취미는 거의 다 해봤다”는 유씨는 자신의 일러스트 작업물을 토대로 도안을 만들어 비즈발 제작에 나섰다. “평소 ‘픽셀 아트’ 작업물을 많이 만드는데, 비즈발은 그걸 입체화하는 것 같아 매력을 느꼈어요.” 유씨는 대개 많이 쓰는 8㎜ 대신 6㎜ 비즈를 택했다. “더 디테일한 작업을 하고 싶어서”다. 같은 면적을 채우는 구슬 수가 많아진 만큼 그림의 해상도도 높아진 셈. 재료에도 차별점을 뒀다. 일반적으로 쓰는 아크릴 불투명 비즈를 기본으로 하되 여기에 아크릴 반투명·투명, 원석 등 특수 비즈를 더해 포인트를 줬다. “픽셀 도안이라 음영 단계가 부족해 보이는 게 아쉬워 재질감을 다르게 해보고자 했어요.” 작품의 크기는 가로 37㎝, 세로 22㎝. 재료비로는 총 6만~7만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아크릴 불투명 비즈 가격은 100개에 1천원대지만, 특수 비즈는 그보다 비싸기 때문에 가격이 뛰었다. 유씨는 “특별한 기술 없이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결과물도 완성도 있게 나오는 공예”라고 덧붙였다. 완성작은 네트망 또는 벽에 걸어 둘 예정이라고.

유혜원씨가 만든 네잎클로버 옷핀 비즈발. 유혜원 제공

가게를 돌며 발품을 팔거나 수백, 수천개의 구슬을 꿰지 않고도 만들 수 있는 초소형 비즈발이 있다. 옷핀 비즈발이다. 옷핀 10여개와 2㎜ 비즈만 좀 있으면 된다. 유씨도 입문은 옷핀 비즈발로 했다. “큰 비즈발을 시도하기 전 시험 삼아 만들어봤는데, 단순한 도안으로 금방 만들 수 있어 좋았어요.” 실 대신 옷핀에 비즈를 꿰고, 그 옷핀들을 모아 족자봉 역할을 하는 옷핀에 거는 식이다. 유씨가 다이소에서 산 재료로 레몬, 클로버 도안의 옷핀 비즈발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10~20분. 다 만든 비즈발은 청바지를 꾸미는 용도로 썼다. “재료가 옷핀이다 보니 옷에 거는 게 귀여울 거 같아 벨트 고리에 걸어주었어요.” 단, 옷핀이 풀리면 비즈가 쏟아질 수 있어 눌리지 않게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이처럼 옷핀 비즈발을 만들어 가방, 옷 등에 키링처럼 거는 것에 대해 이은희 교수는 “엠제트 사이에서 유행인 ‘별다꾸’(별걸 다 꾸민다) 열풍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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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반려묘 주인공으로 만들어 선물”

진현주씨가 판매하는 비즈발 ‘큰 금붕군’(35×32㎝). 물풀 사이를 헤엄치는 금붕어를 담았다. 진현주 제공

비즈발 만들기도 다른 취미와 마찬가지로 유튜브, 블로그 등에 자세한 방법이 공개돼 있다. 그러나 첫 제작만큼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과정을 찬찬히 익힐 것을 추천한다. ‘실에 구슬 꿰기’라는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인상 뒤로 재료 구하기, 일정한 간격으로 매듭 묶기, 검수 등 뜻밖의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기준으로는 진씨가 꾸준히 비즈발 만들기 수업을 진행해왔고, 황씨는 오는 3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케이티앤지(KT&G) 상상마당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열 예정이다. 원하는 이미지는 확실한데 재료 구매만 걱정이라면 ‘은센 비즈발 스토어’에 의뢰해 재료 키트를 받아 직접 만드는 방법도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디아이와이를 고수하겠다면 도안부터 정해야 한다. 이미지 공유 소셜미디어 핀터레스트를 통해 찾는 게 정석이다. ‘비즈발 도안’, ‘픽셀 아트’, ‘십자수 도안’ 등으로 검색한다. ‘꽃’, ‘새’ 등 원하는 키워드를 검색어에 추가해 주제를 좁힐 수도 있다. 직접 도안을 만드는 경우 엑셀이나 ‘스티치 피들’(stitch fiddle) 등 십자수 도안 제작 사이트를 활용하면 된다. 도안을 정하면 색깔별로 필요한 구슬 종류, 크기, 개수를 추린다.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거나 동대문종합시장으로 간다. 오프라인 ‘사냥’에 나설 때 정확한 색상 비교를 위해 도안 지참은 필수다.

동대문종합시장 5층 ‘솔로몬’은 도안을 보여주면 필요한 비즈 색과 수량을 맞춰줘 시장 구매가 낯선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하비마켓’은 다양한 원석 비즈와 여러 크기의 비즈들을 골고루 갖췄으며, ‘가성비’ 좋기로 유명하다. ‘보석상자’는 하트 모양 통에 비즈들을 소분해 두는 걸로 유명하며 특이한 비즈가 많다. ‘안공사’도 소분된 비즈를 다수 취급하는데, 펜치와 줄 등 부자재도 함께 판다.

비즈 줄을 걸 족자봉의 길이는 비즈 크기(㎝ 기준)×가로 개수로 계산한다. 가령 8㎜ 비즈로 가로 20칸짜리 비즈발을 만들 경우 길이가 ‘0.8㎝×20=16㎝’인 족자봉을 구매하면 된다. 완성한 비즈발은 ‘방꾸’(방 꾸미기), ‘집꾸템’(집 꾸미기 아이템)으로 벽·책장·수납장·천장 등에 드리운다. 때때로 건드려 ‘차르륵’ 소리를 듣는다. 혹은 이 세상 하나뿐인 맞춤형 선물로 활용한다. 진현주씨는 “한 수강생은 지인이 키우는 반려묘 세 마리를 주인공으로 비즈발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고 했다.

유해강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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