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며 격정적이면서 서정적인…항해사의 '찐'바다

500톤급 선박 항해사 면허 보유한 미국 작가 카일리 매닝 韓 첫 개인전
황해 조수 차 9m, 추상의 밀당과 유사 '주목'…스페이스K서 11월10일까지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그가 그린 바다는 '찐'이다. 미술 교사이자 히피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유년기를 알래스카와 멕시코 해안에서 보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선원으로 일하며 거친 바다와 부딪힌 그는 500톤급 선박의 항해사 면허까지 취득했다. 인생 41년차 그에게 바다는 떼려야 땔 수 없는 자연인 셈이다. 미국 출신인 그가 이번에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서해바다 '황해'에 주목했다. 전시명은 그렇게 '황해'로 결정됐다.

미국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카일리 매닝(Kylie Manning)의 개인전이 오는 11월 10일까지 서울 강서구에 있는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린다.

황해는 민물의 토사 유입으로 바다에서 색의 경계가 뚜렷하다. 다만 만조와 간조의 차가 최대 9m에 달해 시간에 따라 색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매닝은 황해의 조석 작용이 구상과 추상의 밀고 당김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다.

매닝은 거침없는 붓놀림으로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가는 작가로 주목받았다. 캔버스 안에서 그는 인물의 모습을 강조하기도 하고 반대로 축소하기도 한다. 네덜란드 바로크 회화 기법을 차용하면서 엷게 채색한 층을 여러 겹 쌓고 각 층의 유분으로 빛을 굴절시켜 작품 스스로 발광하는 효과도 낸다. 이 때문에 화면은 윤택한 질감과 섬세한 색채의 균형이 돋보인다.

'자연의 자연'은 매닝의 첫 세폭화 작품이다. 거침없는 붓 터치로 쌓아 올린 풍경과 인물로 가득 찬 세 개의 화면 구성은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통합된 하나의 화면을 이룬다. '머들'(돌무더기)은 고동색과 푸른색의 대비가 제주도의 겨울 풍경을 닮은 작품이다. 매닝은 황해와 맞닿아 있는 제주의 지리적 환경과 문화를 탐구하며 그곳의 돌 문화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색채를 구현했고, 제목에 이를 반영해 제주 방언인 '머들'로 표기했다.

'격변'에서는 조수가 완전히 뒤바뀐 순간을 포착했다. 사회적 변화의 거대한 흐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파도와 인물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처리하면서 풍부한 유동성과 격렬한 내면을 암시한다. 몰아치는 흐름 안에서 인물들은 오히려 서정적으로 묘사해 여유로움을 공존시킨다.

매닝은 특별히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대형 회화 3점을 전시장 가운데 매다는 신작을 선보인다. 얇은 실크에 그려진 7m 크기의 회화는 전시장 중앙 세 곳에 설치되어 마치 극의 무대처럼 보이게 한다.

작품은 몰아치는 파도의 이미지가 필름처럼 나뉘어 색이 전하는 시간성을 더해 관객의 기억 속 풍경을 소환한다. 흩날리는 천 사이를 오갈 때는 마치 주인공처럼 '카일리 매닝'의 작품 세계에 깊이 다가선다. 유료 관람.

카일리 매닝, 자연의 자연_The Nature of Nature_2024_Oil on linen_243.8 x 609.6 cm. 스페이스K 제공.

ic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