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머니가 ‘불행머니’ 됐다…상품권 시장 ‘충격’

조유빈 기자 2024. 8.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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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사용처 모두 ‘셧다운’…기보유자도 피해 입어
환불 여력 없는 자본잠식 상태…발행 늘린 배경으로 ‘낙전수입’도 주목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티몬·위메프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의 파장이 상품권 시장까지 전달됐다. 특히 티몬·위메프에서 7% 이상의 높은 할인율로 판매된 해피머니 상품권(이하 해피머니) 사용이 중단되면서 피해자들의 환불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피머니를 비롯한 상품권 시장의 허약한 재무 구조까지 조명되고 있다.

25년간 도서, 문화, 교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돼온 해피머니. 10대 청소년 등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됐던 해피머니가 환불 여력조차 없는 기업에서 무분별하게 발행한 상품권이었다는 점이 드러나자 소비자들의 충격은 컸다. 다른 경로로 해피머니를 구입해 사용해 오던 이들에게까지 파장이 미치면서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용도, 환불도 막히면서 해피머니가 '불행머니' '데스(Death)머니'가 됐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8월2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해피머니 상품권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환불 및 구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석 달간 3000억 풀려…'머지 악몽' 때보다 심각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해결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분쟁조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해피머니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구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 5일 해피머니 피해자들은 국회에서 열린 피해자 간담회에서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전액 환불'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서민들에게 그 돈은 아이들 책값이자, 가족 외식비이자, 한 달 월급"이라며 "사용처는 현재 단 한 곳도 없고, 지금까지 어떤 환불도 이뤄지지 않았다. 환불의 정상화, 사용처의 정상화, 관리의 정상화를 요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시중에 풀린 해피머니 규모는 약 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특히 최근 티몬이 '상품권 타임 딜'을 통해 최대 10% 할인된 가격으로 해피머니를 판매하면서 피해는 더 커졌다. 2021년 소비자들에게 1000억원대 피해를 남긴 '머지포인트 사태'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당시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는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머지머니를 '돌려막기' 식으로 판매해 사태를 키웠다.

머지 사태 당시 선불충전금 형태의 상품권에 대한 경각심이 생겼음에도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해피머니를 구매하고 이용해온 배경에는 해피머니의 역사와 광범위한 사용처가 있다. 해피머니는 2000년 4월 출시된 국내 최초의 온·오프라인 통합 문화상품권이다. 서점과 영화관, 쇼핑몰, 외식업체 등 오프라인 사용처와 쇼핑, 음악, 웹툰, 게임 등 온라인 사용처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3월 기준 해피머니 사용처는 4만 곳이 넘는다. 도서를 구매하거나 게임을 이용하는 청소년들, 외식비나 문화생활 비용을 아끼려는 가족들, 각종 페이로 전환해 아파트 관리비를 결제하는 방식으로 생활비를 아끼려는 주부들까지 해피머니를 다양하게 활용해 왔다.

그렇게 많던 사용처가 미정산을 우려해 한꺼번에 '사용 중단'을 선언하자, 해피머니는 한순간에 종이 조각으로 전락했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빕스, 매드포갈릭 등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기한을 정하지 않고 해피머니 결제를 중단했다. 치킨·피자, 카페·빵 프랜차이즈도 해피머니를 받지 않기로 했다.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크래프톤 등 게임사와 웹툰 서비스를 운영하는 카카오·네이버까지 해피머니와 절연을 선언했다.

사용처가 모두 사라졌지만, 자체 보상은 어려운 상황이다. 해피머니 발행사인 해피머니아이엔씨는 티몬에서 판매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해피머니아이엔씨는 수년째 부채 총계가 자산 총계보다 큰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말 기준 해피머니아이엔씨의 부채는 2961억원으로 자산(2407억원)을 훌쩍 넘는다. 자본잠식 상태임에도 지급보증보험조차 들지 않고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었던 것은 상품권법 폐지로 인해 규제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피머니 이용약관에서도 무방비한 구조가 드러난다. 약관에는 "본 상품권은 별도의 지급보증 및 피해보상보험계약 없이 발행자의 신용으로 발행됐다"고 기재돼 있다. 선불충전금 발행 잔액 규모도 공시되지 않았다.

해피머니의 재무 구조도 주목된다. 지난해 해피머니아이엔씨의 영업손실은 30억원 이상이었지만, 당기순이익은 19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배경에는 '상품권 경과이익'이 있다. 유효기간이 지나 소비자가 사용하지 못해 발생한 수입으로, '낙전수입'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낙전수입은 41억원에 달했다. 영업외 수익으로 손익을 보전하는 기형적 구조가 상품권 할인 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셈이다. 상품권 발행사가 낙전수입을 고려해 발행을 무분별하게 늘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의 여파로 상품권 사용이 정지된 해피머니 피해자들이 지난 5일 오전 열린 간담회에서 환불 등 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사 휘청거려도 상품권 계속 찍었다

9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해피머니는 선불업 등록 의무를 갖게 된다. 다만 선불충전금 발행잔액이 30억원 이상이거나 연간 총 발행액 500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등록 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에, 모든 상품권 발행사를 규율할 수는 없다.

해피머니 피해자들은 해피머니아이엔씨의 재무 구조와 유통 구조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해피머니의 자금 융통 여부가 환불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는 만큼, 피해자 구제책과 함께 해피머니의 자회사 미수금 등에 대한 정보 공개도 요청하고 있다. 또 류승선 해피머니아이엔씨 대표로부터 환불 신청 건에 대한 전액 환불 및 해피머니 정상화 노력에 대한 약속을 받아 달라고도 촉구했다. 일부 피해자는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류 대표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해피머니아이엔씨는 "자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치금으로 환불을 진행하겠다"는 공지를 띄웠지만, 피해자들의 개별 문의에는 "큐텐 계열을 통해 판매된 미정산 부분을 제외한 고객부터 환불 처리가 가능할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안내해 논란이 이어졌다. PG사들도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피해 구제는 요원한 상황이다. PG사는 상품권의 핀(PIN) 번호가 전송되면 소비자가 상품권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판매 절차가 완료됐기 때문에 발행사에 환불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공기관도 기업도 '해피머니' 여파 받아

해피머니 가맹점들이 일제히 사용 중단을 선언하면서 그 여파도 다방면으로 미치고 있다. 무려 25년간 운영되면서 이용자와 가맹점 수를 대폭 늘려왔기에,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도 해피머니를 기념품이나 사은품 명목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헌혈자에게 해피머니 상품권을 제공해 왔던 대한적십자사의 경우 무려 33억원어치를 선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혈자들이 이미 받아둔 상품권도 사용처를 잃었다. 적십자사는 헌혈 후 받은 해피머니 상품권에 한해, 헌혈 이력을 확인한 후 다른 기념품으로 교환해 주고 있다. 현재 적십자사는 해피머니에 대한 법적 조처를 검토 중이다.

불똥은 고객들에게 증정하기 위해 해피머니 상품권을 구매해온 기업에까지 튀었다. 해피머니 상품권 증정 행사는 다른 상품권 증정 행사로 대체해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베스트 리뷰' 작성자에게 지급하는 해피머니 상품권을 올리브영 기프트 카드로 교체해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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