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난 왼손잡이야” 차별 맞선 외침…우리 삶도 스펙트럼이니까

정혁준 기자 2024. 8. 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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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
‘왼손’으로 산다는 것
인류의 10% 왼손잡이는 비주류
어원 봐도 ‘오른’은 긍정, ‘왼’은 부정적
전쟁가설, 좌뇌발달설 등 다양한 설
프랑스혁명 거치며 정치적 의미까지
“누구나 언제든 소수자 될 수 있어”
왼손잡이인 김영원 ‘한겨레’ 기자가 유리창에 가수 이적의 노래 ‘왼손잡이’에 나오는 노랫말의 한 대목을 써 보이고 있다. 오는 8월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매년 8월13일이 어떤 날인지 대다수 사람은 알지 못한다. 이날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다. 오른손잡이 중심 사회에서 왼손잡이가 겪는 불편을 개선하고, 왼손을 쓰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날이다. 세계 최초로 국제왼손잡이협회를 창립한 미국인 딘 캠벨의 생일을 기념해 1976년 처음 제정됐다.

전세계적으로 왼손잡이 비율은 평균 10% 안팎으로 조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2002년 한국갤럽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4%가 왼손잡이였다. 한국갤럽은 11년이 지난 2013년 왼손잡이 비율을 다시 알아봤다. 왼손잡이 비율은 5%로 나왔다. 20대에서 8%, 30대와 40대에서 6%, 50대 3%, 60대 이상 2%였다.

우리나라의 20대 왼손잡이 비율 8%는 세계 평균에 근접한 수치다. 하지만 나이가 많을수록 왼손잡이 비율은 떨어졌다. 오른손잡이 위주 사회에 비주류로 살면서 오른손이나 양손잡이로 ‘전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왼손으로 식사하는 사람은 4%, 왼손으로 필기하는 사람은 이보다 적은 1%였다. 왼손잡이만 놓고 보면, 55%만이 왼손으로 밥을 먹고, 20%만이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자녀가 왼손잡이일 경우, 응답자의 77%는 ‘그대로 왼손을 쓰게 할 것’이라고 했고, 20%는 ‘오른손잡이로 바꾸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오른손잡이로 바꾸도록 할 것’이라는 의견은 2002년 38%에서 11년 만에 절반 수준인 20%로 줄었다.

미용사 가위, 왼손잡이는 2배 비싸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함께 나란히 앉아 식사하는 경우 서로의 손이 부딪칠 수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지난 5일 서울 마포의 한 가정식 식당에서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의 점심 회식이 열렸다. 이날 모인 사람은 6명이었다. 이 가운데 4명은 오른손잡이, 2명은 왼손잡이였다. 오른손잡이 가운데 1명은 딸이 왼손잡이였다. 우연히 이날 왼손잡이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왼손잡이 이아무개씨가 얘기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왼손으로 글을 썼는데,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글은 오른손으로 써야 한다고 해서 지금은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이씨는 밥 먹을 때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왼쪽 끝자리를 찾아 앉는 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왼손잡이는 개인적 불편함 차원을 넘어 차별받기까지 했다. 20세기 초반에야 오스트레일리아가 세계 최초로 학교에서 왼손 글쓰기를 허용했다. 미국은 1920년, 유럽에선 1950~60년대가 되어서였다.

딸이 왼손잡이인 노아무개씨가 얘기를 받았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허리에 부담되고 손목에도 부담된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부모로서 오른손으로 글을 썼으면 하는데…”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왼손잡이인 정아무개씨는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정씨는 왼손으로 밥을 먹다가 밥상머리에서 할아버지에게 “××같이 왼손으로 밥을 먹느냐”며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정씨 어머니에게도 “아이 교육 어떻게 한 거냐, 버릇없이 밥을 왼손으로 먹게 놔두냐”고 호통을 쳤다고 했다. 화제는 노씨가 다니는 미용실의 가위로 이어졌다. 그 미용실 주인이 왼손잡이란다. 미용사 가위는 꽤 비싼데, 보통 하나에 100만원가량 한다고 했다. 그런데 왼손잡이 가위는 찾기도 힘든데다 별도 제작을 주문해야 해서 가격이 2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오른손잡이에게 적합하게 오른쪽에 설치돼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스포츠에선 왼손잡이가 더 많은 활약을 한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야구에서 왼손잡이는 1루수를 뺀 내야수(2루수·3루수·유격수)를 하기 힘들다. 1루에 공을 송구하려면 뒤로 돌아 던져야 해서 이런 내야수 자리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선수가 아닌 일반인 역시 스포츠엔 제약을 받는다. 왼손잡이는 골프를 배우기 쉽지 않다. 왼손잡이 골프채가 흔하지 않은데다, 골프연습장 역시 왼손잡이 타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왼손잡이는 비주류였다. 왼손잡이를 정의하는 단어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라틴어에서 오른쪽을 뜻하는 ‘덱스테르’(dexter)는 ‘솜씨 좋은’이란 뜻이다. 반면 왼쪽을 가리키는 ‘시니스테르’(sinister)는 ‘불길한’, ‘사악한’이라는 의미다. 영어 역시 오른쪽은 라이트(right)로 ‘옳은’, ‘참된’에서 유래했지만, 왼쪽은 레프트(left)로 ‘약한’, ‘어리석은’이란 뜻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른손과 왼손은 순우리말이다. ‘오른’의 어원은 ‘옳다’, ‘바르다’에서 나왔다. 한때 오른손을 ‘바른손’으로 부르기도 했다. 반면 ‘왼’의 어원은 ‘그르다’, ‘어둡다’에서 나왔다.

서울시내 한 은행의 왼쪽은 고정문으로 오른쪽 문만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왼쪽은 소수와 비주류로 차별받아왔다.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자를 보면, ‘오른 우’(右)는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 모습을 상징하고, ‘왼 좌’(左)는 오른손으로 일할 때 왼손이 보조로 잡아주는 모습을 상징하는 데서 나왔다. 강등이나 외직으로 나간다는 것을 뜻하는 ‘좌천’(左遷) 역시 왼쪽이 들어간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서 유래한 이 말은 ‘왼쪽으로 옮긴다’는 뜻이지만, 왼쪽을 낮게 본 중국인에게 왼쪽은 불리한 곳으로 가야 한다는 뜻으로 변형돼 쓰였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여러 문명권에서 인류는 한쪽 손으로 밥을 먹고, 다른 쪽 손은 배변을 처리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밥을 먹는 손은 긍정적으로 여겼지만, 그 반대 손은 부정적으로 여겼다. 대개 밥 먹는 손은 오른손이었다. 확률적으로 보면,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비율은 반반인 게 맞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왼손잡이 비율은 10% 안팎의 소수자들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방패로 왼쪽 심장 막으려 오른손 진화”

오른손으로 카드를 찍도록 만든 서울 지하철 개찰구에서 한 시민이 왼손으로 카드를 단말기에 대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19세기 의사 필립 헨리 파이스미스는 ‘전쟁 가설’로 이를 설명했다. 고대인들이 전투를 벌일 때 한쪽 손엔 칼을 들고, 다른 손엔 방패를 쥐었다. 이때 왼손잡이는 칼을 왼손에 쥐는데, 이 경우 심장이 노출돼 전투에서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런 전투가 이어지면서 왼손잡이들은 소수자로 전락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방패가 발명되기 전부터 인류는 오른손잡이가 많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심지어 30만년 전에 처음 출현한 호모사피엔스 이전인 구석기시대(260만~300만년 전)에도 오른손잡이가 많았다는 것이다.

2011년 미국 캔자스주립대 연구진이 영국 학술지 ‘래터랠리티’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50만년 전 인류도 오른손잡이가 주류였다. 연구진은 스페인의 유적지에서 발굴한 고대 인류의 앞니에 난 자국을 분석했다. 앞니 27개 가운데 25개에서 오른손잡이로 추정되는 빗금이 나왔다. 이 빗금은 오른손잡이들이 고기를 입에 물고 오른손으로 돌칼을 내려칠 때 치아와 부딪히면서 난 것이다. 오른손잡이가 내려친 석기와 왼손잡이가 내려친 석기는 떨어져 나간 부위가 다르다. 고고학자 니컬러스 토스는 180만년 전 돌조각을 분석한 결과 오른손으로 내려쳤을 때 생긴 패턴이 대부분이란 사실을 찾아냈다.

이런 발견을 바탕으로 인류학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좌뇌와 우뇌의 발달에 따라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비율이 달라졌다는 가설이다. 오른손잡이는 언어·분석·수학 능력이 뛰어난 좌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반면 왼손잡이는 예술·직관 능력이 뛰어난 우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200만~300만년 전 인류의 뇌가 급격히 커질 때 생존을 위해 필요한 건 사냥 능력이었다. 사냥을 잘하는 데 필요한 건 협력이었고, 협력을 위해 필요한 건 소통이었다. 소통은 바로 언어능력과 직결됐다. 결국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에 견줘 언어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이런 분석은 설득력을 얻고 있긴 하다. 하지만 모든 가설이 그렇듯 또 다른 가설이 나와 ‘좌·우뇌 가설’은 뒤집힐 수도 있다. 마치 ‘전쟁 가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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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빨갱이’ 프레임의 진부함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나흘 앞둔 3월17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이주인권연대 주관으로 서울역 앞에서 ‘2024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차별 혐오정치는 그만! 이주민에게 자유와 평등을!’ 집회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들이 인종차별과 각종 차별제도를 상징하는 대형 천을 찢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인류는 역사적으로 진보하면서 오른쪽과 왼쪽을 또 다른 개념으로 변형한다. 구체제(앙시앵레짐)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일어난 프랑스혁명 당시 공화파는 왕당파를 타도하고 1792년 국민공회를 꾸렸다. 국민공회에서 왼쪽에 급진적인 자코뱅파 의원들이 앉았고, 오른쪽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지롱드파 의원들이 자리했다. 여기서 좌파와 우파가 기원한다.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는 해방공간에서 많이 쓰였다. 특히 한국에서 좌파는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으로 우파에 의해 ‘좌파는 빨갱이’라고 오랫동안 규정지어져왔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경제에서 남한이 북한에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면서 ‘좌파는 빨갱이’라는 규정은 희석됐지만, 지금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쓰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라거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공개적으로 추모한 연예인들에게 ‘좌파’ 딱지를 붙이는 경우 등이다.

낙인을 찍으며 ‘좌파몰이’를 하는 사람들에겐 이러다가 ‘왼쪽’이 대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스며 있다. “좌파영화가 우파영화보다 많다” “연예계도 좌파 편중이다”라는 주장(2022년 자유민주당 유튜브 채널)을 펼쳤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발언에는 오랫동안 다수로 살아오며 누려왔던 ‘오른쪽’의 기득권을 ‘왼쪽’에 내줘선 안 된다는 강박이 깔려 있다. 좌파가 ‘우점종’이 될 날이 올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세상이 칼로 무 베듯 좌-우로 확연히 구분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왼손으로 밥 먹고, 오른손으로 글 쓰는 왼손잡이도 있듯, 우리의 삶은 결국 스펙트럼이니까.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사회적 왼손잡이’가 말하는 소수자와의 공존법

허승규 “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도록”
이나영 “죄책감이 책임감으로 변했죠”
임태훈 “진보도 젠더 감수성 키워야”
홍기빈 “누구나 소수자 될 수 있어”

(왼쪽 사진부터) 허승규 녹색당 전 부대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모두 오른손잡이다. 신소영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오른손잡이가 주류인 사회에서 왼손잡이는 소수다. 한국에서 좌파는 오랫동안 소수자였다. 마치 오른손잡이가 주류인 사회에서 왼손잡이로 사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생물학적으로 오른손잡이지만 정치적 사회적 소수를 대변하며 살아온 ‘사회적 왼손잡이’를 만났다. 원외 정당의 설움을 감수하며 환경과 생태의 가치를 정치적으로 확장해온 허승규 녹색당 전 부대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아온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군대 안 폭력과 인권 문제를 공론화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해온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다. 이들에게 소수와 비주류가 우리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데 필요한 점을 물어봤다.

먼저 이들이 소수자와 비주류를 위해 일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대표로 있는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의 슬로건은 ‘주어진 대로 살기보다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은 우리’입니다. 저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보수적인 지역사회에서 자라면서 ‘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고, 다양한 삶이 존중받는 지역사회를 꿈꿔왔습니다.”(허승규 전 부대표)

“저는 성소수자로 태어나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놓고 고민했어요. 그러면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게 됐고, 특히 인권 문제가 논란이 된 군 인권 문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된 것이죠. 제가 소수자여서 주류인 보통 사람이 그냥 넘기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임태훈 소장)

“죄책감 때문이었죠. 전 1980년대 후반 학번이었는데, 일상적인 시위는 참가했지만 민주화 운동에는 많은 기여를 못 했어요. 아버지가 경찰 출신이셨고 집안도 보수적이었으니까요. 이후 페미니즘을 전공하게 되면서 성평등 이슈를 중심으로 고민하고 활동하게 됐죠. 미군 기지촌 등을 연구하면서 역사를 보게 됐고요. 식민지·분단·냉전체제로 희생당한 분들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죠. 그렇게 여성·인권단체와 일하다 보니 죄책감은 뭔가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으로 변했죠.”(이나영 이사장)

“몰랐으면 안 했겠지만,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해) 스스로 하게 된 것이죠.”(홍기빈 소장)

소수자와 비주류를 위해 일할 때 이른바 ‘좌파’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이때 느낌은 어떨까?

“어떤 이들은 저에 대해 ‘종북 게이’라는 신조어를 써가며 저를 비판하곤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하는 순간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 사회입니다. 그나마 ‘종북 게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헛웃음을 불러일으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데서 위안받고 있습니다.”(임태훈 소장)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과 불평등을 넘어,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지향하는 이상주의자를 뜻한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종북 좌파처럼 정치적인 왜곡과 공격의 의미로 쓰인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봅니다.”(허승규 전 부대표)

“우리나라에서 좌파는 빨갱이 딱지를 붙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됐죠. 진보적 행동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저항적 목소리를 막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말도 안 되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이나영 이사장)

“저를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하려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홍기빈 소장)

생명·평화의 세상을 향한 꿈

‘좌파’라는 말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우리 사회는 분단, 성차별, 계급 격차, 역사 왜곡같이 다양한 영역에서 모순이 있죠.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좌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나는 좌파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거죠.”(이나영 이사장)

“경제성장이나 재테크에서 문제점을 얘기할 때 좌파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경제성장과 재테크를 마치 종교적인 믿음으로 떠받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인이 자신이 믿는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 대해 문을 닫아버리는 것처럼 말이죠.”(홍기빈 소장)

“과거 혁명적인 좌파의 이념은 현재 낡은 이념이 됐습니다. 지금은 성장지상주의·국가주의를 넘어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꿈꾼다면 진정한 좌파로 볼 수 있습니다. 좌파든 우파든 개인의 정치적 사고의 출발은 다를지라도 함께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생명·평등·평화의 세상은 우파도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허승규 전 부대표)

“좌파와 우파는 정치·경제·젠더·환경 등의 여러 사안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예도 있습니다. 하나를 놓고 편견에 따라 좌파와 우파로 나누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사람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임태훈 소장)

소수자와 비주류가 우리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선 어떤 점이 필요할까?

“우리가 스포츠를 볼 때 왼손잡이 선수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삶에서 느끼는 불편과 차별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이 불편하겠다’는 생각만 하지, 그들이 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지에 관해선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좌파와 우파를 가르기보단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임태훈 소장)

“타인에 대한 혐오는 편견에서 출발하죠. 예를 들어 피부색과 국가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지만,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편견을 줄여나가기 위해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종·성 등에서의 차이가 위계화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차별과 불평등의 원인이 되죠. 일상에서 누구나 차이 때문에 차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바꾸기 위해 작은 실천을 한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질 것입니다.”(이나영 이사장)

“소수자의 삶은 저절로 보장받을 수는 없습니다. 정치적 힘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소수자들이 정치적으로 대표될 수 있는 정당의 역할, 이를 촉진하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허승규 전 부대표)

“사람들은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른손잡이가 주류라지만 경제적으로는 약자가 될 수 있죠. 모든 사람은 살아가는 방식, 취향 등 모든 면에서 항상 다수의 편에 설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 점을 항상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홍기빈 소장)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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