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감독이 질투한 천재는 어떤 영화를 찍었나[허진무의 호달달]
감독 존 카펜터
출연 샘 닐, 줄리 카르멘, 위르겐 프로크노브
상영시간 95분
제작연도 1995년
영화를 사랑하고, 특히 호러 영화를 사랑하는 기자가 ‘호달달’ 떨며 즐긴 명작들을 소개합니다. 격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1980년대에 미국 영화를 이끌어나갈 재목으로 꼽히던 감독이 세 명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그리고 ‘존 카펜터’였다. 존 카펜터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가 계실지도 모르겠다. 스필버그와 루카스는 대자본을 투자받아 각각 <죠스>(1975)와 <스타워즈>(1977)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카펜터는 할리우드 주류에서 벗어나 주로 저예산 호러 영화의 길을 걸어왔다. 카펜터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매드니스>(1995)를 가장 좋아한다.
주인공 존 트렌트(샘 닐)는 제법 실력 좋은 프리랜서 보험 조사관이다. 트렌트는 한 출판사로부터 실종된 공포소설 작가 서터 케인(위르겐 프로크노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서터 케인의 작품은 공포스러울 정도의 열광적 인기를 끌고 있다. 그의 신작 ‘광기의 입 안에서’(In the Mouth of Madness)는 출간되지도 않았지만 군중들이 서점에 몰려 폭동이라도 일어날 듯한 분위기다. 트렌트는 서터 케인의 소설에 묘사된 미국 뉴잉글랜드의 마을 ‘홉스의 끝’이 실재한다는 단서를 찾아낸다. 서터 케인 담당 편집자 린다 스타일스(줄리 카르멘)와 함께 마을을 향해 떠난다.
<매드니스>는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를 다루는 ‘코즈믹 호러’ 작품이다. <매드니스>의 원제이자 서터 케인 소설 제목인 ‘광기의 입 안에서’는 미국 공포소설 거장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 ‘광기의 산맥’(In the Mountain of Madness)을 오마주한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라고 했다. <매드니스>에는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 신화’ 괴물을 닮은 존재들이 쏟아져나온다. 러브크래프트도 저승에서 흐뭇하게 웃을 만하다.
존 카펜터의 영화에선 상상력의 강력한 힘을 실감할 수 있다. 트렌트의 모험은 환상과 실재를 오가다 결국 구별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매드니스>의 공포 연출은 직관적이며, 서사는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이다. 무저갱처럼 현실의 관객까지 빨아들여 허우적대도록 한다. 관객은 <매드니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도 트렌트처럼 <매드니스>의 세계 속에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트렌트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절망적인 광란의 폭소를 터뜨린다. ‘광기’ 말고 다른 표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
카펜터는 수많은 영화감독이 공인한 천재다. 조지 루카스는 “유일하게 질투심이 나는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카펜터는 촬영, 각본, 미술, 특수효과를 도맡아 영화를 만든다. 평범한 영화감독이라면 전문가에게 맡길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카펜터 영화에 나오는 음악 대부분도 카펜터 본인이 작곡한 것이다. 신디사이저 중심의 독특한 전자음악들이다. 직접 각본을 집필하는 감독은 많지만, 직접 음악을 작곡하는 감독은 흔치 않다. 카펜터의 최고 흥행작인 <할로윈>(1978)의 테마곡은 특히 유명해 누구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카펜터 특유의 절제된 촬영 기법은 저예산의 한계 덕분에 단련됐다. 괴물이 카메라 프레임 바깥에서 안쪽으로 갑자기 튀어나오는 기법은 카펜터가 ‘칩 스케어’(싸구려 공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칩 스케어는 언제 어디서 무언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현재는 수많은 호러 영화에서 클리셰로 자리를 잡았다. 카펜터는 첫 장편영화인 <다크 스타>(1974)를 제외한 모든 영화에서 시네마스코프(화면비 2.35:1)를 고집해 넓은 화면에 미장센을 채웠다. 주연 배우인 샘 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1993)으로 유명하지만 호러 영화에 잘 어울리는 표정을 갖고 있다. 공포에 무기력하게 땀을 흘리며 서서히 짓눌려가는 연기가 압권이다.
카펜터 영화는 극장에선 망했어도 TV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으며 재평가받은 경우가 많다. <매드니스>도 딱 그런 작품이었다. <매드니스>는 <괴물>(1982)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1987)와 함께 ‘종말 3부작’을 이룬다. 카펜터의 <괴물>은 봉준호 감독이 선정한 최고의 SF 영화 10편 목록에 들어가기도 했다. 카펜터의 인터뷰 발언은 그의 성격과 철학을 보여준다. “주류에 속하고 싶지 않아요. 인구 통계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개인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악평을 소중히 여깁니다. 평론가들이 제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다면 큰 곤경에 빠진 것이죠.”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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