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팅이 약속하는 미래
<12>양자 컴퓨팅이 약속하는 미래(a quantum promise)
양자 컴퓨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괴짜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이었다. 그는 1981년 그 유명한 강연에서 양자 컴퓨팅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양자 물리학 전문가로서 그는 0 또는 1의 비트로 작동하는 고전 컴퓨터가, 0과 1이 동시에 될 수 있는 상태, 즉 '중첩(superposition)'을 달성할 수 있는 큐비트라는 비트를 사용하는 양자 현상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AI나 암호학 같이 병렬 컴퓨팅이 최상의 결과를 내놓는 응용 분야에서, 비트 대신 큐비트를 사용하는 컴퓨팅은 성능의 극적인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양자 기술 연구개발(R&D)에 약 30억 달러(약 4조1000억원)의 공공 자금을 투입했으며, 중국은 그보다 약 3배 더 많은 금액을 할당했다. 그러나 이는 정확히 동일한 비교라고 할 수 없다. 미국엔 양자 컴퓨팅 스타트업의 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 훨씬 더 크고 성숙한 민간 투자 시장이 있다. 미국의 벤처 캐피탈이 글로벌 기술 투자에서 쌓은 경험을 고려할 때, 민간 자금이 중국 정부의 자금보다 더 효율적으로 배분될 거라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양자 연구자들을 끌어들이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대학들이다. 그렇다 해도 현재 양자 기술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초연구다. 이런 연구는 상업적으로 즉각 응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로 대학과 정부 기관이 수행하며, 민간 기업과 투자자들은 지원에 관심이 없다. 이런 점에서 기초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과 관련된 논쟁은 중국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18억 달러와 12억 달러를 투자했다. 유럽연합(EU)은 기초 연구와 스타트업을 모두 지원하는 두 가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유럽양자통신인프라(EuroQCI)와 유럽양자 협정(European Quantum Pact)이 그것이다. EuroQCI는 양자 기반 시스템을 기존 통신 인프라에 통합해 EU의 27개국을 준비시키는 프로젝트로,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현재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암호학의 종말을 대비한다. 이 시스템은 유럽의 정부 기관, 병원, 에너지 그리드를 포함한 주요 광섬유 및 위성 연결에 양자 물리학을 기반으로 한 추가 보안 계층을 제공한다. 이는 EU의 가장 전략적인 통신 고속도로에 대한 대규모 양자 보안 강화 프로젝트다.
양자 협정(Quantum Pact)은 서명국들이 양자 기술 생태계에서 협력하도록 해 유럽 내 '양자 밸리' 조성을 목표로 한다. 많은 EU 국가들이 자체적인 양자 컴퓨팅 국가 전략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도 있다. 양자 협정의 목표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일하는 것을 피하고, EU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EU의 전형적인 접근 방식이기도 하다. EU의 많은 국가에서 정치인들이 나타내는 민족주의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정치·재계 리더들은 유럽의 힘이 통합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EU의 가장 큰 경제국조차도 개별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아울러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덴마크 코펜하겐에 최초의 양자 컴퓨팅 기술 센터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코펜하겐은 양자 이론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닐스 보어가 태어난 곳으로, 양자 물리학 분야에서 강세를 보여온 나라다.
러시아에는 몇몇 뛰어난 이론 물리학자들이 있음에도 양자 기술 분야에서 큰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양자 기술 우위를 위한 경쟁에 크게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러시아의 응용 물리학은 전통적으로 핵물리학에 집중돼 있다. 이 분야 R&D 수준과 기업들의 경쟁력은 매우 높다.
양자 컴퓨팅이 암호 해독에 미치는 영향은 그 기본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양자 컴퓨팅 분야는 기존 컴퓨팅과 마찬가지로 기계를 만드는 시도가 아니라 종이에 알고리즘을 작성하는 데서 시작됐다. 이 분야의 모든 사람들은 처음부터 양자 컴퓨팅의 두 가지 핵심 알고리즘이 암호를 해독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94년 MIT에서 미국 수학자 피터 쇼어가 개발한 쇼어 알고리즘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알고리즘의 목적은 큰 정수의 인수들을 찾는 것이다. 현재 많은 암호 시스템, 특히 RSA((Rivest-Shamir-Adleman)는 큰 정수를 인수분해하는 데 기반한다. 이는 전통적인 컴퓨팅 능력으로는 사실상 풀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언젠가 충분한 수의 큐비트와 낮은 오류율을 가진 양자 컴퓨터가 발명된다면, 이 보안 방식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해독된 에니그마 기계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양자 컴퓨팅의 미래를 더 생생하게 느끼는 방법 중 하나는 클라우드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IBM은 최첨단 양자 컴퓨터를 극저온으로 냉각해 원격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과 교육 자료도 함께 제공한다. 따라서 관심 있는 대학과 기업들은 자체 양자 컴퓨팅 환경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할 필요가 없이 이를 사용할 수 있다.
독자 여러분은 한국의 양자 기술 현황이 궁금할 것이다. 한국은 이 분야의 발전과 상용화에 기여하는 주요 국가 중 하나지만, 실제 잠재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성창모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양자 컴퓨팅에 관한 논문이 현재까지 영국에서 4979편이 나온 것과 비교해 한국은 307편으로 25위에 불과하다. 성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일부 주요 국가들보다 이 분야에 늦게 진입했다. LG와 삼성 같은 대기업의 R&D참여 외에 초기 양자 컴퓨팅 산업 참여도 제한적이다.
부산은 IBM 양자 컴퓨팅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양자 컴퓨팅 R&D 허브의 본거지가 됐다. 부산에는 새로운 유형의 양자 컴퓨터가 구축돼 2028년까지 가동될 예정이다. 학계와 산업계가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한국의 연구자들은 실온에서 작동하는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큰 돌파구를 마련했다. 양자 컴퓨터를 섭씨 영하 270도의 온도에서 유지하는 것은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사용할 때 매우 불편할 뿐만 아니라, 특히 규모가 커질수록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결론적으로, 양자 컴퓨팅은 매년 실용화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로 인한 기회와 위험은 매우 크다. 문제는 이 혁신적 기술이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지 여부가 아니라, 변화의 시기가 언제 오는 지이다.
*이 칼럼에서 표현된 견해와 의견은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것이며 소속회사의 것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필자와는 Twitter에서 @LithiumResearch를 팔로우하거나 hitechcolumn@gmail.com으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S&P글로벌 수석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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