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족 ‘앨리스’와 4족 ‘스폿’의 비밀을 찾아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기술이 산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은 공장이나 물류창고에 벌써 휴머노이드를 시범 삼아 배치하고 있다. 구글이나 보스턴 다이내믹스 그리고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테크기업들 또한 경쟁적으로 휴머노이드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지난 세월 몇 차례 겨울을 맞은 인공지능(AI) 기술 또한 근래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일반 사람들은 챗봇이나 그림, 영상 등에 적용되는 생성형 AI 기술 일부에 열광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은 제약·소재·우주탐사 등 과학기술 전 분야에도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로봇과 AI에 관련된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문화공간이 탄생할 예정이다. 바로 오는 8월20일,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개관하는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Seoul Robot AI Museum)’이다. 영문 스펠링을 줄여서 서울 라임(Seoul RAIM)이라 불린다. 라임은 과학관이다. 그러나 아동과 청소년을 주 고객으로 삼는 기존 과학관의 한계를 넘어 대상을 성인까지 확대하는 도전적인 시도를 할 계획이다.
라임은 건축물과 그 속의 콘텐츠 모두가 매력적이다. 건물 앞에 서면 말 그대로 모난 곳 하나 없는 둥그런 비정형 구조물이 관람객을 반긴다. 실내에는 1층과 3층을 관통하는 비선형 튜브가 인상적이다. 이 튜브 속을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인다. 이처럼 파격적인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건축설계와 시공을 책임지는 담당자들은 복잡한 설계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빌딩정보모델링(BIM) 기술을 사용했다. 주요 구조물과 외관 패널 등을 별도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OSC(Off-Site Construction·공장 시공) 공법도 적용되었다.
라임의 외관은 금속 패널 여러 개로 덮여 있는데, 이 금속 패널들은 모두 서로 다른 형상을 지니고 있다. 현장에서 설계 자료를 보며 하나씩 제작하려면 공사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라임 겉면을 덮은 금속 패널들은 컴퓨터에 저장된 설계 정보를 별도로 마련된 공장에서 읽고, 이에 맞게 패널을 세밀하게 굽히는 프레스 장치를 사용해 제작되었다. 같은 공법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도 적용된 적이 있다. 4만5000장이 넘는 서로 다른 금속 패널을 만들어야 했는데, 사람 손으로는 20년이 넘게 걸릴 작업 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여 공사 기간을 7년으로 단축했다. 건물 외관부터 최첨단 공학 기술이 적용되어 ‘로봇 과학관’이라는 라임의 정체성을 빛나게 한다.
라임이 가진 최고의 매력은 ‘도슨트’
상설 전시관을 거닐다 보면 세계 최대 로봇 축구대회인 ‘로보컵’에서 2023년 준우승을 거머쥔 한양대학교의 인간형 로봇 ‘앨리스(ALICE)’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위 사진). 그 명성과 달리 앨리스의 걸음걸이는 움직임이 다소 불완전하게 보일 수 있다. 어려서부터 땅을 짚고 일어나 쉽게 걸어 다니는 우리에게는 로봇의 이런 모습이 성에 차지 않는다. SF 영화나 애니메이션 속 로봇 캐릭터들은 인간처럼 움직이고 활동하지 않던가.
하지만 로봇공학자들에게, ‘다리’라 부르는 한두 개의 막대만을 이용해서 무게중심이 바닥을 향하는 물체를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일은 아직까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난제다. 기다란 막대를 한 손끝에 올려놓고 중심을 잡는 놀이를 해본 경우라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로봇공학자들은 로봇에게 인간의 걸음걸이 패턴을 학습시키고, 여기에 그때그때의 주변 환경을 인지해 적절히 반응하는 방식을 결합시켜 2족 보행 기술을 구현한다. 이 같은 어려움을 이해하고 다시 앨리스를 바라보면 우리가 두 발로 서서 걷거나 뛰는 행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역으로 깨닫게 된다.
이에 비해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만들어 사업화에 성공한 4족 보행 로봇 ‘스폿(SPOT)’의 움직임은 관람객들이 마치 살아 있는 개 한 마리를 마주하는 듯 자연스럽다(아래 사진). 스폿은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낮은 터널 속을 엎드려 걷는 등 여러 동작을 잘 수행한다. 스폿의 다리에는 비밀이 몇 가지 숨어 있다. 첫 번째로 스폿의 다리는 탄소 복합재(carbon fiber)로 제작되었다. 탄소 복합재는 강철과 비교해 강도가 10배로 튼튼한데 밀도는 5분의 1 정도로 매우 가볍다는 특징이 있다. 두 번째로 위아래 각각의 다리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모터 두 개가 모두 위쪽 다리와 몸통이 만나는 영역에 모여 있다. 이는 모터를 다리 중간에 위치시킬 경우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것처럼 위쪽 다리가 움직일 때 추가로 소비되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다. 마지막으로 스폿의 다리는 바닥을 밟고 움직이는 데 필요한 회전력을 각 관절에 고르게 분산시키기 위해 뒤로 꺾인 형상을 하고 있다. 앞으로 꺾인 다리의 경우, 걸어나갈 때 골반 쪽 관절에 대부분의 회전력이 작용하게 된다.
근사한 건물과 전시물들을 갖추고 있지만 라임이 가진 최고의 매력은 다른 데에 있다. 바로 도슨트들이다. 라임 내부에서는 주기적으로 로봇-AI와 관련된 책, 기사, 영상 등을 보고 토의와 토론을 반복하는 도슨트 모임이 이뤄진다. 이를 통해 라임은 단순히 지식으로 관람객의 머리를 빽빽하게 채우기보다는 로봇-AI 기술의 본질과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예를 들어 인간형 로봇 앨리스를 통해 2족 보행 기술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인간 사회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스폿의 다리를 만든 소재와 그 구조에 대해 설명함과 동시에 스폿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느끼게 만드는 인간의 심리에 관해서도 생각할 점을 제시한다. 이렇듯 라임은 로봇-AI 시대가 가져올 기술혁신,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변화에 대해 관람객이 사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곧 이곳을 방문하게 될 무수한 시민이 로봇과 AI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바라며.
유만선 (서울시립과학관 관장·공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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