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여행, 달고 쓴 삶의 맛도 함께 음미하다 [ESC]

한겨레 2024. 8. 1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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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의 작은 마을 여행 강원도 강릉
테라로사·보헤미안, 강릉에 기원
‘차가운 세계, 이런 맛도 있어야’
바다부채길…최고 트레킹 코스
생선구이·소머리국밥 등 맛집도
강원도 강릉시 안목해변의 새벽 풍경.

오늘 강릉에 가는 이유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다. 여행에는 수많은 이유가 존재하는데, 커피를 마시기 위해 300㎞의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것 역시 여행의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커피 하면 강릉을 떠올리지 않을까. 테라로사며 보헤미안 등 전국적으로 이름난 카페가 강릉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강릉이 이처럼 커피로 유명해지게 된 건 박이추 선생 덕이 크다. 박 선생은 다크 로스팅과 핸드드립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서울 안암동 고려대 후문 쪽에서 커피점을 운영하다 2000년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왔다. 처음엔 경포대에 보헤미안을 열었지만 관광지의 번잡함이 싫어 2004년 연곡으로 옮겼다고 한다. 지금도 연곡에는 보헤미안 본점이 있다. 강릉 시내를 벗어나 속초로 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만나는데, 야트막한 언덕에 하얀색 건물이 우두커니 서 있다. ‘보헤미안’이라는 간판이 없다면 아무도 커피 가게임을 눈치채지 못할 것 같다. 누가 이런 곳에 커피 가게를 차렸을까. 보헤미안은 세상사에는 별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는 자세로 서 있다.

10여년 전 박이추 선생이 내려준 커피

박이추 선생이 20년 전 강릉시 연곡면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보헤미안 모습.

10여년 전쯤에 이곳에서 선생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카페 한 쪽에 로스팅실이 있었는데, 검은 테 안경을 쓴 더벅머리의 한 사람이 갓 볶아진 커피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보석 세공사가 보석의 결점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결사적인 모습처럼 보였다. 커피콩을 노려보고 있던 사람이 박이추 선생이었다.

“커피는 어떤 맛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까”라고 선생에게 물었을 때, 선생은 “쓴맛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고 단호하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생이 직접 내려준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정확하게 묘사를 못 하겠다. 정말 맛있다, 느낌이 좋다, 어딘지 모르게 몸이 따스해지는 것 같다, 이 정도밖에는. 아무튼 그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일은, 일단 말로 해버리면 가장 중요한 뉘앙스를 잃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경험이었다. 선생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이 차가운 세계에 이런 맛도 있어야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10여년 전 보헤미안 로스팅실에서 커피를 로스팅 중인 박이추 선생.

그 당시 보헤미안과 테라로사보다 커피로 더 유명했던 곳이 안목해변이었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횟집 앞에 어마어마한 수의 자판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자판기마다 커피와 설탕과 ‘프림’을 다른 배합으로 만들어냈는데, 그래서 안목해변에 자주 드나드는 이들은 저마다 ‘단골 자판기’가 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횟집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지금은 카페 거리가 됐다. 하나둘 커피전문점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바다를 마주 보는 건물들 대부분이 커피 전문점이다. 커피콩을 직접 볶아내 만든 커피를 선보이는 곳도 있고, 요일마다 다른 품종의 커피를 내놓는 곳도 있다.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면서 커피 자판기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안목해변 앞 커피 거리.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 20여 일을 강릉에서 보낸 적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오피스텔을 빌려 살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아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그 열망을 실현할 수 있었다.

강릉에서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새벽 3시에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에스프레소와 초콜릿을 먹고 글을 썼다. 아무것도 쓸 수 없을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여기는 바닷가니까. 바다는 생각하는 인간을 싫어하고 일하는 인간을 더 싫어하니까. 베란다 창문을 3㎝만 열어놓아도 파도 소리가 방으로 밀려 들어왔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땐, 빌 에번스나 셀로니우스 몽크, 랑랑, 백건우를 틀어 놓고 피아노 사이로 서서히 스미는 파도 소리를 혹은 파도 소리 사이로 번져가는 피아노를 들으며 다시 잠들곤 했다.

“매일 바다 보지만 똑같은 파도 없어”

외국 유명 해변 못지않은 풍광의 안목해변.

다시 잠에서 깨면 푸른색이 짙어지며 새벽이 왔고, 수평선 너머의 하늘이 옅은 분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바닷가로 나가 산책로를 따라 해가 뜨는 방향으로 걸었다. 십여 분을 걸어 가면 조그마한 포구에 닿았는데, 그때쯤이면 해가 완전히 떴고 나는 해를 등 뒤로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카페 브라질’의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바다.

숙소 가까이에 ‘카페 브라질’이라는 근사한 카페가 있었다. 박이추 선생의 수제자가 운영하는 카페라고 했다. 그 카페에는 다소 옛날스러운 브렉퍼스트 메뉴가 있었다. 예가체프, 케냐 에이에이(AA), 과테말라 등으로 매일매일 바뀌는 ‘오늘의 커피’와 주인이 직접 만든 식빵 한 조각, 딸기잼, 삶은 계란, 요구르트와 시리얼이 함께 나왔다. 나는 2층의 통유리 앞 테이블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였나, 바닷가에 살고 있는 어느 등장인물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매일 바다를 보지만 똑같은 파도는 하나도 없어.” 2주일 동안 강릉에서 살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카페 브라질’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습.

1주일 정도 지나자 바닷가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는 말은 곧 게을러졌다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에스프레소와 초콜릿을 먹고 바닷가 산책을 다녀와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 것까지는 서울에서의 생활과 똑같았지만,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일은 서울 쪽으로 멀찌감치 밀어두었다. 노트북을 열다가도 ‘이런 건 해서 뭐하게’ 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덮고는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어느 문학평론가의 평론집을 읽었고, 어느 소설가가 경주에 산 이야기를 읽었다. 시를 다시 쓰고 싶었고, 경주에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후의 카페에 앉아 있으면 바다로 나갔던 배들이 포구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시계를 보면 얼추 4시 무렵이었다. 갈매기들이 배 위를 떼 지어 맴돌았다. 그때쯤 나는 가방을 챙겨 포구로 갔다. 배가 돌아오는 시간이 내 퇴근 시간이었던 셈이다. 포구에는 직접 잡아 온 물고기를 파는 난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회를 떴다. 기본 5만원. 할머니가 우럭과 이런저런 잡어를 한 접시 썰어주었다. 나는 할머니께 반은 회로 썰고, 반은 포로 떠달라고 부탁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포구에서 떠 온 회를 놓고 맥주를 마셨다. 동쪽 해안의 낮은 짧아서 금방 어두워졌다. 포를 뜬 회는 다음날 미역국을 끓이거나 회덮밥으로 만들어 먹었다. 그러고도 남은 회는 다음다음 날 회로 먹었다. 숙성이 되어 더 맛있어서 소주가 잘 들어갔다.

정동심곡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만난 풍경.

심심할 때면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나서곤 했다. 제일 좋아하는 코스는 헌화로였는데, 그 길을 따라가면 ‘정동 심곡 바다부채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걷는 내내 푸른 바다가 길 옆에 펼쳐지는데, 이 길은 국내에 존재하는 바다 트레킹 코스 중에서는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길이는 정동진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에서 심곡항 사이에 2.86㎞. 왕복으로 걷기에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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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과 지금 똑같은 커피 맛

길은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며 나아갔다. 가끔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딪치기도 했는데, 이럴 때면 솟구치는 흰 포말이 어깨를 적셨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투구바위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게 된다. 바다부채길 최고의 절경이다. 이름 그대로 장군이 투구를 쓰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투구바위 앞에서 저녁으론 뭘 먹을까 하는 다소 쓸데없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어제 먹다 남은 회로 회덮밥을 만들까, 파스타를 만들어 와인을 마실까, 이런 사소한 고민을 하며 길을 되돌아 왔고, 돌아오는 길에 뭔가를 재촉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움직인 하루였다며 굉장히 만족해했다.

그리고 몇달이 흐른 지난달 21일 새벽, 강릉으로 왔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고 커피가 마시고 싶어 고속도로를 달렸다. 오는 내내 날씨는 잔뜩 흐렸고 간간이 빗방울이 뿌렸다. 강릉에 도착해 곧장 연곡으로 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해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그 사이 날씨는 맑아져 있었고 빈 해변에는 파도만이 밀려왔고 또 밀려갈 뿐이었다. 포말이 일었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뒤돌아보니 걸어온 발자국들이 어느 것은 파도에 지워져 희미했고, 또 어느 것은 아직 깊숙하고 선명히 남아있었다. 누구에게든 자세히 보면 그런 발자국의 흔적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희미한 것이 슬픔이고 아픔인지, 선명한 것이 기쁨이고 행복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모르겠지만 그것 모두가 하나로 이어져 인생이 될 것이다.

해변을 걷고 있는 중에 카페가 문을 열기에 얼른 들어와 커피를 후후 불며 마시고 있다. 카페 통유리 너머로 파도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시간은 흘렀지만 커피 맛은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7달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인생을 만드는 데 50년이 걸렸다. 사는 게 덧없다는 걸 아는데 50년이 걸렸고, 덧없으니 하루하루 정성을 들이고 즐거워야 한다는 걸 아는 데도 50년이 걸렸다. 너무 늦은 깨달음인가? 아니, 너무 빠른 것인가? 잘 모르겠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커피 맛이 달다, 아니 쓰다. 단맛이 있고 쓴맛이 있는 것 같다. 모든 게 섞여 있다. 인생도 이 커피 맛처럼 달다가 쓰다가, 그런 것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정보

주문진실비생선구이의 생선구이.

정동진 가는 길에 자리한 하슬라 아트월드는 산언덕과 바다 사이에 자리잡은 종합 예술 공간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닮은 조각부터 매미와 같은 곤충을 형상화한 작품, 다양한 모양의 추상 작품까지 산책로를 따라 걸어 오르며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문진실비생선구이(033-661-4952)의 생선구이는 유명하다.

벌집칼국수의 장칼국수. 장칼국수는 강릉의 별미다.

벌집칼국수(033-648-0866)는 직접 만든 수제 칼국수에 고추장을 풀어 끓인 얼큰한 육수를 부은 후 자른 김과 다진 고기 고명이 넉넉하게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직접 담은 고추장과 시중에서 판매되는 달달한 고추장을 섞어 만든 고추장이 이 집만의 비결이라고한다. 40년째 옛 문화여인숙 건물을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데, 예전 여인숙이었을 때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주문진에 있는 철뚝소머리집(033-662-3747)과 중앙시장 국밥골목에 있는 광덕식당(0507-1321-1961)의 소머리국밥도 유명하다.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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