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점프업] 韓과학자가 만든 게르마늄 적외선 센서, 전 세계 휩쓴다

송복규 기자 2024. 8. 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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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스트라티오 대표 인터뷰
고성능 적외선 센서 1000분의 1로 가격 낮춰
“국내 생산 거점 만들어 해외 진출로 확보”
이제형 스트라티오 대표가 지난달 11일 경기 성남시 스트라티오코리아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고성능 적외선 이미지 센서를 1000배 싸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게르마늄(Ge)이라고 하면 대부분 건강 팔찌를 떠올린다. 유사 과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게르마늄은 중국이 수출을 통제할 정도로 첨단 산업 분야에선 없어선 안 될 반도체 물질이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중요한 3나노(㎚·1㎚는 10억분의 1m) 공정에 게르마늄은 핵심 소재로 사용될 정도다. 실리콘보다 전기 전도도가 높고, 광학 특성이 우수해 광통신과 태양전지, 광섬유 분야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제형 스트라티오 대표는 게르마늄으로 만든 적외선 이미지 센서를 개발해 첨단 제품에 필요한 ‘새로운 눈’을 제공한다. 게르마늄의 전기 특성은 적외선을 감지하는 데에도 탁월하다. 스트라티오는 2013년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박사 출신 세 명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든 적외선 이미지 센서 개발업체다. 현재는 휴대용 분광기 링크 스퀘어(Link Square)와 근적외선(SWIR) 카메라 비욘센스(Beyon Sense) 개발을 마친 상태다.

스트라티오가 개발한 근적외선(SWIR) 이미지 센서 '비욘센스'. 사진은 적외선을 이용해 위조 지폐를 판별하는 모습이다./송복규 기자

파장이 긴 빛인 적외선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관측하는 데 유용하다. 적외선 이미지 센서는 단일 기기로도 사용되지만, 가전제품이나 통신기기에 광범위하게 들어간다. 예컨대 사용자의 얼굴과 동작을 인식하는 정보통신(IT) 기기나, 옷감을 알아서 인식하는 세탁기 센서가 대표적이다.

스트라티오는 적외선 이미지 센서의 핵심 기술 개발을 마치고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생산을 전담할 국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들과 만나 협업을 논의 중이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11일 경기 성남시 스트라티오코리아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전 세계 첨단 제품을 정복할 청사진을 들었다.

이 대표는 “스트라티오의 강점은 반도체 설계에 있다”고 했다. 적외선 이미지 센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적외선을 전기신호로 바꿔 감지한다. 이때 전류가 한 방향으로 흘러야 전자기기가 손상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전류가 양방향으로 흘러 전기적 문제가 생기는 현상인 역전류를 없애야 한다.

특히 게르마늄은 반도체이지만, 전류가 계속 흐르는 도체로 변하려는 특성이 강해 역전류가 일어나기 쉽다. 스트라티오는 게르마늄의 역전류를 방지할 수 있는 설계를 개발해 한국·미국·중국·유럽·일본에 특허를 등록했다.

게르마늄 기반 적외선 이미지 센서는 기존에 많이 사용된 ‘인듐갈륨비소(InGaAs)’ 센서와 비교했을 때 성능은 비슷하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게르마늄을 웨이퍼 위에 성장시키는 공정이 단순해, 센서 칩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인듐갈륨비소보다 적다. 게르마늄 칩은 인듐갈륨비소보다 더 큰 웨이퍼에서 만들 수 있어, 한 번에 많은 칩을 만들 수 있다.

이 대표는 “인듐갈륨비소는 물질을 한 층씩 쌓아 만드는 화합물이기 때문에 칩으로 바꾸는 공정 자체가 너무 비싸고, 4인치 웨이퍼에서만 만들 수 있어 칩 생산량이 적다”며 “게르마늄은 실리콘 위에 증착해 8인치와 12인치 웨이퍼에서 만들 수 있어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형 스트라티오 대표가 지난달 11일 경기 성남시 스트라티오코리아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고성능 적외선 이미지 센서를 1000배 싸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이 대표는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스탠퍼드 의대·전기공학과 교수이자 미국 뇌 진단 의료기기 개발업체 엘비스(LVIS)를 창업한 이진형 교수의 동생이기도 하다. 그는 조금 저렴한 적외선 이미지 센서를 만들 거였다면 사업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 대표는 “기존 적외선 센서는 3만달러(4000만원)의 고가 장비”라며 “게르마늄을 이용해 적외선 센서의 가격을 10~20% 정도가 아닌 1000분의 1로 싸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 제품은 가격이 300달러(41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스트라티오의 적외선 이미지 센서는 이미 수출되고 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스트라티오의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마약 유통을 감시한다. 칠레 농림부는 와인 생산에 사용되는 포도의 더 정확한 수확 시기를 찾기 위해 스트라티오를 찾았다. 한국 관세청은 가짜 약을 판별하는데 스트라티오 적외선 이미지 센서를 쓰고 있고, 위조지폐를 찾는 데 이 기술을 쓰는 나라도 있다.

스트라티오의 진격은 이제부터다. 스트라티오는 지난달 한국법인 에스티랩스 설립을 시작으로, 국내 생산 거점 구축에 나섰다. 이번 달 말까지 시리즈A1 투자를 유치해 적외선 이미지 센서 생산을 늘리고, 국내외 전자제품 생산기업들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스트라티오에 관심을 보인 투자사도 여럿인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의 가치를 ‘1조원’ 수준으로 올려놓는 게 이 대표의 목표다.

이 대표는 “자체 파운드리에서 생산한 적외선 이미지 센서 500대가 완판됐고, 다음 버전에 대한 주문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일본 소니가 여전히 세계적인 회사로 남아있는 건 이미지 센서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인데, 우리도 게르마늄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이미지 센서를 독점적으로 팔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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