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마시 코스타세라 아마로네

유진우 기자 2024. 8. 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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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立秋)는 24절기 가운데 13번째 절기다. 가장 덥다는 대서와 서늘한 바람이 분다는 처서 사이에 껴있다. 천문학에서는 입추를 가을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올해는 지난 7일 입추를 맞았다.

곧 가을이 다가올 준비를 하는 가운데, 무수히 많은 와인 중에서 ‘가을과 가장 잘 맞는 와인’을 꼽으라면 누구든 망설이기 마련이다.

영국 와인 전문가 제인 맥퀴티는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이탈리아 북부에서 나는 아마로네(amarone) 와인을 꼽았다.

맥퀴티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와인 업계에 미 공로를 인정해 대영제국 명예훈장(MBE)을 수여했을 정도로 출중한 와인 박사다. 그는 1980년부터 40년 넘게 와인 관련 칼럼과 책을 썼다.

가을이 오면 꼭 사야 하는 와인이 있다.

이 와인에서는 독특하고 달콤한 과일 향이 난다.

모카와 송로버섯 향 따스한 느낌을 준다.

제인 맥퀴티, 'Amarone: the perfect Italian red for autumn'

이 와인은 샤토 무통 로칠드나 오푸스 원처럼 특정 와인 브랜드 이름이 아니다.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 인근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지역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만드는 와인을 일컫는다.

발폴리첼라는 라틴어로 포도주 저장고가 많은 계곡(Valley of many cellars)이라는 뜻이다. 통상 라틴어에서 유래한 지역명이 그렇듯 이 지역 역시 2000년 전부터 와인을 만들었다.

그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와인을 만드는 방법이 독특하다. 발폴리첼라 지역에서는 포도가 완전히 익은 11월 중순 가장 잘 익은 포도를 직접 손으로 선별해 수확한다. 이 포도를 바람이 잘 통하는 볏짚이나 대나무 채반 위에 올려놓고 4~5개월 동안 바짝 말린다.

4세기 무렵부터 이어진 아파시멘토(Appassimento)라고 불리는 와인 양조법이다. 이 방식은 일반 양조보다 공정이 까다롭다. 자칫 온도나 습도 조절을 잘못하면 기껏 고른 좋은 포도 알맹이에 곰팡이가 슨다. 포도 껍질에 균이 옮겨붙어 모두 못 쓰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 지역 생산자들은 1600년 넘게 세심한 손질과 각별한 관심으로 건포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포도를 말리면 포도 알맹이 속 수분이 줄어든다. 줄어든 수분만큼 당도는 높아진다. 자연히 이 포도로 만든 와인 향과 맛은 다른 와인보다 짙다.

그래픽=정서희

오랜 건조 기간을 버틸 만큼 생명력이 긴 포도를 키우려면 포도밭에 비가 적게 내리고 사계절 내내 햇볕이 강렬하게 비춰야 한다. 발폴리첼라 지역은 강우량이 적고 일조량이 풍부하다. 이름처럼 계곡 지형이라 포도를 말리기 좋은 바람이 사시사철 충분히 분다.

다만 이렇게 포도를 말리면 수분이 날아가면서 질량이 줄어든다. 아무리 공들여 관리해도 일부는 상한다. 와인을 만들 만큼 충분히 마르지 않는 포도 알맹이도 생긴다. 수분을 머금은 일반 포도로 와인을 만들 때보다 손실이 늘어난다.

중세까지 아마로네는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를 여력이 충분한 왕족과 귀족들 전유물이었다.

특히 셰익스피어가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던 17세기 무렵에는 ‘달콤 쌉싸름(bittersweet)한 사랑’을 표현하는 대명사로 꼽혔다. 발폴리첼라에서 15킬로미터(km)만 가면 나오는 베로나 지역은 ‘로미오와 줄리엣’ 실존 인물이 살고 사랑했던 무대다.

당도 높은 말린 포도는 달콤함을 한층 살려준다. 동시에 말린 포도가 품은 당분은 와인 도수를 높인다.

일반적인 레드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13~14%다. 반면 아마로네는 말린 포도가 가진 높은 당분을 효모가 오래 먹고 자란다. 도수가 15~17%까지 올라간다. 술은 도수가 높아지면 보통 쓴맛이 두드러진다.

아마로네는 진하고 묵직한 첫인상 뒤로 달콤함을 감추고 있다. 의외로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그야말로 달콤하면서 씁쓸하다. 일각에서는 아마로네 와인 풍미를 ‘추억을 곱씹는 맛’이라고 표현했다.

맥퀴티를 포함한 여러 와인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를 들어 가을에 마셔야 할 와인으로 아마로네를 꼽았다.

귀족 와인이었던 아마로네는 19세기에 들어 포도 재배 기법이 발전하면서 일반 와인 소비자들도 즐길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낮아졌다. 와인 밀봉과 장기 보관 관련 기술이 고도화한 덕도 봤다.

여러 아마로네 생산자 가운데서도 마시(Masi)는 7대째 가족 경영을 하는 유서 깊은 와이너리다. 특히 코스타세라 아마로네는 마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와인이다. 이 와인은 말린 포도만 사용해 와인을 만든다.

마시는 전통 방식을 응용해 대나무로 만든 건조대 위에서 포도송이를 놓고 말린다. 이 기법은 밀짚을 주로 사용하는 다른 생산자들 방식보다 바람이 잘 통한다.

마시 관계자는 “와인이 가진 풍미가 진한 편이기 때문에 따로 음식을 곁들이지 않고 파르산, 페코리노, 고르곤졸라 같은 숙성 치즈만을 안주 삼아도 충분히 즐기기 좋다”며 “마시기 2~3시간 전에 미리 병을 열어서 공기와 충분히 접촉을 시킨 다음 다른 와인보다 1~2도 정도 높은 온도로 마시면 더 풍성한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마시 코스타세라 아마로네는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 구대륙 레드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레뱅이 수입·유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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