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상화 해야]①협치 물꼬 텄지만 여야 신경전 여전…정쟁-민생 '투트랙' 필요
이번 합의 계기로 국회 정상화 돼야 한다는 목소리 커
여야정 협의체 두고 신경전…여 "조건 없어야" 야 "선 영수회담"
채상병 특검법·방송4법·노란봉투법 등 협치 깰 뇌관 많아
"정쟁 사안은 후순위로 두고 합의 가능한 법안부터 처리해야"
[서울=뉴시스] 김지은 최영서 한은진 한재혁 기자 = 22대 국회 개원 이후 두 달 넘게 정쟁만 일삼던 여야가 비쟁점 민생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하며 일단 협치의 물꼬를 텄다. 물가 상승에 이어 최근 증시 폭락과 티몬·위메프 정산지연 사태 등 경제위기 징후가 짙어지는 상황에서 국회가 '강 대 강' 대치로 사실상 공전을 거듭하는 데 대한 비판여론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야는 첫 실무회동부터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두고 이견을 드러내는 등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모처럼 성사된 이번 합의가 국회 정상화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야는 우선 '구하라법'(민법 개정안)·간호법 제정안 등 이견이 적은 민생 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데 합의했다. 구하라법은 자녀 사망 시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이다. 간호법은 간호사가 진료 지원 관련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법안으로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으로 필요성이 커졌다.
상임위의 법안 심사 일정을 고려하면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정기국회 전인 이달 22일 열릴 가능성이 크다.
화해 분위기는 조성됐지만 대화 테이블인 '여야정 협의체' 구성부터 난항이다. 국민의힘은 조건 없는 출범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선 영수회담' 조건을 내걸었다.
민주당은 "협의체 구성 전제는 대통령의 국정 기조 전환"이라며 영수회담을 먼저 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야·정 협의체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이 참여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참여하는 방식보다는 여야 대표간 논의가 더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여당에서는 이재명 전 대표가 차기 대선 주자로서 입지를 굳히고 사법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여야정 협의체, 영수회담 등을 이용한다고 보고 있다.
한 야당 의원은 10일 "박찬대 원내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은 사실상 이재명 전 대표가 대표 발의한 민생회복지원금 지급법을 수용하라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를 국정 운영의 동등한 파트너로 부각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는 "법안 처리뿐 아니라 저출생 문제, 연금개혁, 의료개혁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한데 여야가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경쟁에만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채상병 특검법'과 '방송4법' 등 협치 분위기를 깰 뇌관도 적지 않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두 차례 폐기된 채상병 특검법을 지난 8일 다시 발의했다. 새 특검법 수사 대상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의 이른바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명시했다.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방송4법'도 '25만원 지원법', '노란봉투법' 등과 함께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 재표결 수순을 기다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분위기는 다시 경색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민생 현안 처리와 정쟁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쟁 사안은 그 사안대로 충돌하더라도 합의 도출이 가능한 민생 법안은 그것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논쟁이 될 만한 법은 후순위로 하고 일단 합의 처리가 가능한 법안을 최대한 조율하는 게 필요하다"며 "한 번 시도해서 결과가 나면 그 자체로 동력이 생긴다. 국민에게도 정치권이 바뀌고 있다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띄운 영수회담과 관련해 "여당 대표를 배제하고 영수회담을 하면 패싱 논란이 또 다른 이슈로 부상하고, 협치 대상인 여당을 무시했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선출되면 우선 한동훈 대표와 만난 후 여야정 협의체를 상설화하는 게 실효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도 "오랜만에 화해 무드가 조성됐기 때문에 여야정 협의체에서 쟁점적이지 않은 것부터 처리하고 이후 여야 영수회담에서 양측이 민감한 내용까지 다루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민주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끝나면 민생 정책 경쟁이 불이 붙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연임이 확실시되는 이재명 당대표 후보와 한동훈 대표 모두 유력한 대선 주자로 꼽히는 만큼 민생 경제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대표가 당선되고 민주당 새 지도부가 꾸려지면 정치권이 '민생 반 대결 반' 구도로 전환이 될 것"이라며 "탄핵·특검 공세에서 민생 공세로 넘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금투세와 관련해서도 지금 당장 폐지냐 아니면 개선이냐를 놓고 다투고 있지 않느냐"며 "정쟁은 그대로 존재하고 거기에 민생 경쟁이 더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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