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라운드 인생] 데뷔 10년 차 김영훈, 끊임없이 노력하면 운도 따른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2014년 드래프트 16순위 지명
다들 그렇겠지만, 뽑힐 수 있을까 생각했다. 4학년 때 주전으로 뛰지 않았다. 중간중간 들어가서 했던 역할이 슛 던지는 거였다. 슛을 장점으로 삼아서 프로에 가고 싶었는데 DB에서 뽑아 주셨다. 뽑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드래프트 현장에서 제 이름이 호명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라운드 지명을 준비하는 10분 휴식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안 될 수도 있었다.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프로와 연습경기를 많이 했는데 그 때 팀 이름인 동부(현 DB)와 연습경기 때 슛이 잘 들어갔다. 그래서 동부와 연습경기를 하면 더 많이 움직이고 더 슛을 넣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연습경기에서 그런 걸 잘 봐주시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상범 감독 부임 전까지 두 시즌
첫 시즌에는 못 뛰니까 ‘신인이라서 괜찮아’ 이런 마음이었다. ‘다음 시즌에 잘 하면 되지’ 했는데 그 다음 시즌도 못 뛰니까 ‘여기까지인가’,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나’ 했다. 대신 포기하는 마음은 없었다.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연습한 걸 다 보여주면 후회는 하지 않을 거라서 포기하지 않았다. 우연찮게 계약 만료를 1년 유예를 해주시고 이상범 감독님께서 오셨다. 그렇게 2017-2018시즌을 앞두고 진짜 마지막이라고 여기며 해보자고 했다. 코칭 스태프가 새로 오셔서 새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운이 따른 상무 입대
2017-2018시즌이 끝나고 이상범 감독님께서 군대를 다녀오라고 하셨다. 상무 입대하려고 했는데 탈락해서 착잡한 마음으로 현역 입대를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추가 선발로 전준범과 함께) 상무에 갔다. 상무를 다녀온 뒤에는 팀이 1위(2019-2020시즌)로 우승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아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다음 시즌 54경기(2020-2021시즌)를 뛰었다. 불과 몇 년 전에 1경기도 못 뛰고 은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연히 이상범 감독님께서 오셔서 기회를 주신 이후 잘 풀려서 저에게는 천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현대모비스에서 보낸 2시즌
현대모비스로 갈 때는 잘 배워서 경기를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잘 안 되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안에서 많이 배웠다. 양동근 코치님과 박구영 코치님께서 수비의 세세한 부분을 알려주셨다. 그걸 못 따라가고 팀에 많이 못 녹아 들었다. 제가 부족해서 못 뛴 건 확실하다. 농구선수뿐 아니라 사람으로 인생의 힘든 경험을 했다. 이걸 이겨내는 방법을 알고, 저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멘탈이 좋아졌다. 2년을 쉬어서 경기감각은 떨어져도 몸도 많이 좋아졌다.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멘탈이다.
필리핀 팬들의 사랑
정확한 건 언제인지 모른다. DB에 있을 때 허웅(KCC)이 방송에 나온 뒤 해외 팬들이 웅이를 보려고 (구단) 유튜브를 많이 보신 거 같다. 다른 선수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때 저를 좋게 봐주셔서 그렇게 된 걸로 안다. 처음에는 ‘어, 나한테?’ 이런 마음이 컸다. 너무 신기했다. 커피차 등을 보내주셔서 동료들에게 기가 살고, 기분이 좋았다. 좋아해 주시고, 생각해 주시는 팬들이 계셔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DB에서 현대모비스로 이적한 뒤 훈련 소집 첫 날 커피차를 항상 보내주셔서 감사하고, 감동이었다. 소노에서도 그렇게 해주셨다.
지난 시즌 막바지부터 2년 동안 보여준 것도 없고, D리그에서도 잘하지 않아서 FA 기간 동안 어린 나이도 아니고, 연락을 주실 팀이 있을까 생각했다. 감사하게 소노에서 연락을 주셨다. 또 어떻게 보면 천운이다.
2년 전에 (FA 기간 중 영입의향서를 제출한 데이원과 현대모비스 중) 현대모비스를 택했음에도 다시 연락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김승기) 감독님께 죄송하다. 이렇게 만난 건 이유가 있다고 여기며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한 번 더 믿고 연락을 주셔서 소노에 왔기에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다.
감독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부분은 DB에서처럼 수비와 슛을 쏘고, 궂은일을 하길 바라신다. ‘2년 동안 경기를 안 뛰었기에 급한 마음으로 하면 더 잘 안 되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고 몸을 잘 만들어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감사드리고, 조급하지 않게 몸을 잘 만들고 있다.
후배들에게 조언
저 말고도 2라운드에 뽑힌 선수들이 조언을 해달라고 하면 똑같은 말을 할 거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한 자가 오래 살아남는 것보다 오래 살아남은 선수가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끝까지 버티면 좋은 일이 있을 거다. 기회는 무조건 한 번은 온다. 그 기회를 살리냐 마느냐의 문제다. 운동 선수라고 해도 운동이 전부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해서 인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면 오래 버틸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훈련하며 노력하는 거다. 다가올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면 잘 될 거다.
BONUS ONE SHOT
대학 입학 후 센터에서 포워드로 변신
동국대를 이끌었던 서대성 감독은 “그런 타이밍에 슛을 던지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슛 타이밍이 빠르고, 슛이 한 번 들어가면 막기 까다로운 선수”라며 “정말 1년 12달 훈련해도 빠지지 않는다”고 김영훈을 설명한 적이 있다.
김영훈은 “중고등학교 때 팀에서 장신이라서 센터를 봤는데 대학 올라와서 ‘이대로 가면 경쟁력이 없겠구나. 포지션 변경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감독님과 코치님께서도 포지션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며 “서울(군산고→동국대) 올라가자마자 바로 다음날부터 새벽훈련을 했다. 새벽, 오전, 오후, 야간으로 슈팅 훈련을 많이 연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로 돌아가면 못 할 거 같다. 어떻게 했는지 모를 정도로 몸이 계속 나가서 운동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김영훈은 “처음엔 3점슛도 잘 안 날아갔다. 슛 자세를 잡기 위해 백보드에 한 손으로 던지며 슛폼을 잡고 슛 거리를 늘렸다. 팀에서 정한 개수를 던진 뒤에도 더 많이 연습했고, 경기에서 나오는 움직임으로 훈련했다”며 “빨리 쏘려고 했던 이유는 제가 쏠 때 상대에게 걸리는 거 같고, 타이밍이 포워드보다 느렸다. 스텝을 남들보다 빨리 잡아서 쏘려고 했고, 이를 위해 줄넘기도 많이 했다”고 3점슛을 훈련한 방법까지 들려줬다.
김영훈이 3점슛 자신감을 가진 계기는 2012년 프로-아마 최강전 서울 삼성과 맞대결에서 3점슛 4개를 성공한 이후다. 김영훈은 “삼성과 경기에서 연습했던 움직임으로 3점슛이 들어가서 자신감이 생겼다.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3,4학년 때 슛 기회에서 잡으면 슛을 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사진_ 점프볼 DB(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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