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봉투째 업체 넘기고 “재활용률 100%”... 쓰레기의 거짓말

박상현 기자 2024. 8. 10.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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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적게 쓰고 다시 쓰자] [2] 지자체들 ‘위장 재활용’
9일 새벽 인천 서구의 한 재활용 업체에 서울 관악구 일대 생활폐기물을 수거한 차량이 들어와 쓰레기를 하차하고 있다. /박상현 기자

9일 오전 5시 20분쯤 인천 서구 한 재활용 공장. ‘관악구청’이란 글씨가 쓰인 5t 생활 폐기물 처리 차량이 서울 관악구 일대에서 수거한 생활 폐기물을 하차하고 돌아갔다. 생활 폐기물은 가정이나 소규모 식당·카페 등에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한 것을 말한다. 보통 생활 폐기물은 공공 소각장에서 태우거나 공공 매립장으로 보내 땅에 묻는다. 그런데 밤새 수거한 생활 폐기물이 요즘엔 민간 재활용 업체로 들어가고 있다.

최근 전국 시군구에서 ‘위장 재활용’이 성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할 지역에서 나온 생활 폐기물을 소각·매립하지 않고 재활용 업체로 보내기만 하면 전량 재활용된 것처럼 실적으로 잡히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쓰레기를 소각·매립하면 환경 오염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도 우회적으로 피해갈 수 있다. 재활용률이 뻥튀기되고, 탈세 창구로 이용되고 있지만 환경부가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자체가 재활용 업체로 보내는 생활 폐기물은 2022년 6만3256t에서 지난해 16만2186t으로 2.5배가량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 5월까지 7만354t으로 2022년 물량을 이미 초과했다. 가정과 자영 업체에선 플라스틱·캔·병 등 재활용 품목은 분리 배출하고, 나머지 쓰레기만 종량제 봉투에 넣어 배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종량제 봉투에 재활용 품목을 섞어 버리는 경우가 있어 이를 골라내기 위해 생활 폐기물을 재활용 업체로 보낸다는 것이 지자체 입장이다.

그래픽=송윤혜

문제는 지자체가 실제 재활용된 양만큼만 재활용률을 인정받아야 하지만 ‘100% 재활용’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종량제 봉투 내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 비율은 ‘최대 54%’로 추산된다. 환경부는 2017년 종량제 봉투 내 쓰레기 성상을 조사한 결과 54%가 비닐·종이·플라스틱·유리·금속 등 재활용 품목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렇게 솎아낸 쓰레기는 이미 오염된 상태라 모두 재활용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실제 재활용되는 물량은 54%보다 더 적다. 환경부는 이렇게 재활용 업체로 넘어간 생활 폐기물이 어떻게, 얼마큼 실제 재활용되고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위장 재활용’은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폐기물 처분 부담금’을 회피하는 용도로도 이용되고 있다. 환경부는 2018년부터 지자체나 사업장이 쓰레기를 소각·매립할 때 t당 1만원가량의 부담금을 매기고 있다. 부담금을 매겨 소각·매립 대신 재활용을 늘리겠다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그러나 유통 과정만 바꾸면 재활용한 것처럼 둔갑하면서 부담금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활용 업체도 생활 폐기물 처리를 반기고 있다. 종량제 봉투 안에서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아도 ‘돈’이 되기 때문이다. 재활용 업체는 지자체에서 돈을 받고 쓰레기를 가져온 후, 재활용 품목을 빼내고 남은 쓰레기는 시멘트 공장 등에 돈을 주고 처리한다. 쓰레기를 시멘트 소성로(燒成爐·일종의 가마)에 넣어 불을 때는 연료로 쓰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받는 돈이 시멘트 공장 등에 지불하는 비용보다 크기 때문에 낙찰만 받아도 수익이 된다.

이런 ‘위장 재활용’을 당국이 잡아내지 못하면서 실제 재활용률은 떨어지고, 걷어야 할 세금도 새나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입장에선 관할 지역의 재활용률을 어떻게 높여가야 할지 깊게 고민할 필요 없이 쓰레기만 재활용 업체로 넘겨주면 되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이런 ‘위장 재활용’을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장 재활용’이 늘어나도 외관상 재활용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 측은 “재활용률 과다 산정 오류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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