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되찾은 동메달…전상균, “메달리스트다운 삶 살아갈게요”[파리올림픽]
2024 파리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위한 무대에 검은 정장 차림의 한 중년 남성이 걸어 나왔다.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게 된 전상균(43) 조폐공사 화폐본부 차장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 역도 남자 105㎏ 이상급에 출전했던 전상균은 합계 436㎏, 4위로 아쉽게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자신의 실력이 모자랐다고 생각했고, 정정당당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당시 3위를 했던 러시아의 루슬란 알베고프의 도핑 위반이 뒤늦게 밝혀졌다. 알베고프의 런던 대회 기록은 삭제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해 3월 전상균을 진짜 동메달의 주인으로 인정했다.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 챔피언스 파크에 모인 관중들은 전 차장의 이 같은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전광판에 소개된 짧은 이력을 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관중들은 12년 만에 메달을 받는 올림피언을 보며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동메달을 목에 건 전 차장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다. 뜻깊은 세리머니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그는 “12년 전 현장에서 누려야 할 기분과 감정을 이곳에서 느꼈다. 최대한 이 순간을 누리고 싶었다”며 “당시 감정보단 덜하겠지만, 위로받는 것 같아 참 기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전 차장은 2012 런던 대회 이후 조폐공사 역도팀 감독을 맡아 지도자 생활을 했다. 하지만 2014년 팀이 해체되며 조폐공사 일반직으로 전환됐고, 그 이후로 역도계를 떠나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고 당장 삶이 극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그는 “앞으로도 직장인의 삶을 꾸준하게 이어가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역도 현장으로 돌아가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는 지난 4월부터 52만5000원의 올림픽 동메달 연금을 받고 있다. 12년간 받지 못한 1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받진 못한다. 전 차장은 “그 돈 없이도 똑같이 살 수 있다. 굳이 생각 안 하려고 한다”며 “이젠 올림픽 메달리스트다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메달을 목에 건 모습을 누구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냐는 물음에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이형근 전 한국 역도대표팀 감독을 떠올렸다. 전 차장은 “이 모습을 보셨으면 가장 좋아해 주셨을 것”이라며 “항상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분이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전 차장은 딸을 떠올리며 웃음 짓기도 했다. 그의 딸은 얼마 전 여자 고등부 76㎏급에서 합계 한국 학생 신기록(233㎏)을 세운 역도 유망주 전희수(17·경북체고)다. 그는 “딸은 아빠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것을 신경 안 쓴다”며 “자기를 위해 운동하는 태도는 자식이지만 존경스럽다. 계속 유지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것 같다”고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이날만큼은 직장인이 아닌 ‘역도 선수 전상균’이 되었던 그의 하루가 미소와 함께 저물었다.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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