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4위 김유진 '도장깨기'…랭킹 5-4-1-2위 차례로 꺾었다
김유진은 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를 라운드 점수 2-0(5-1, 9-0)으로 물리쳤다. 이 체급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딴 건 2008년 베이징(임수정) 이후 16년 만이다.
한국 태권도는 전날 남자 58㎏급 박태준(경희대)에 이어 이틀 연속 금메달을 수확했다. 2000년 정식종목이 된 뒤 처음으로 ‘노골드(은1·동2)’에 그친 2020 도쿄 대회의 부진을 딛고,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았다.
김유진은 천신만고 끝에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세계랭킹이 말해주듯 ‘월드 클래스’로 평가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아 국제대회에서 저조했다. 박태준(5위), 서건우(한국체대), 이다빈(서울시청·이상 4위)이 랭킹 5위 안에 들어 올림픽에 직행한 것과 달리 대한태권도협회 선발전-대륙별 선발전을 차례로 거쳤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김유진은 큰 무대 체질이었다.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선수를 하나하나 꺾었다. 16강에서 하티제 일귄(튀르키예·5위), 8강에서 스카일러 박(캐나다·4위)을 물리쳤다. 준결승에선 세계랭킹 1위 뤄쭝스(중국)를 만났지만 3라운드 접전 끝에 승리했다. 결승에서 랭킹 2위 키야니찬데까지 무너뜨려 ‘언더독(underdog·이길 가능성이 작은 약자)의 반란’을 완성했다. 그는 시상식 후 “랭킹은 아예 신경도 안 썼다. 나 자신만 무너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금메달을 목에 건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의 얼굴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호신술로 태권도를 배우길 권한 분도 할머니였다. 김유진은 “할머니! 나 드디어 금메달 땄어. 너무 고마워. 나 태권도 시켜줘서!”라고 외쳤다.
최대 고비는 뤄쭝스와의 준결승전이었다. 1라운드를 7-0으로 손쉽게 따낸 김유진은 2라운드에서 잇따라 감점을 허용하며 1-7로 패했다. 김유진은 “2라운드 직후 훈련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그 훈련을 다 이겨냈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되겠다.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더 악착같이 발차기 했다”고 말했다. 김유진의 롤 모델은 여자배구 김연경(흥국생명)이다. “나도 실패하면 ‘식빵’이라고 하면서 나쁜 기분을 털어낸다. 김연경 선수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1m83㎝ 장신 김유진은 리치가 강점이다. 상대가 접근하기 전에 긴 다리로 공격한다. 그러나 민첩성은 떨어지는 편이라 상대들은 파고드는 전술을 많이 썼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 대비해 뒷발인 왼발을 짧게 차는 기술을 연마했고, 잘 통했다.
키가 큰 만큼 체중 조절은 갑절로 힘들었다. 대회를 앞두곤 어김없이 ‘감량과의 전쟁’을 벌였다. 김유진은 “이번 올림픽을 위해서 미리 조절해야 했고, 먹고 싶은 걸 계속 못 먹었다. 한 끼, 한 끼 식단에 따라 먹으며 많이 운동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오늘이 태권도를 하면서 체력과 몸 상태가 가장 좋은 날이었다. 경기 전 몸을 풀 때 너무 좋아서 ‘오늘 일 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유진은 하루에 세 번, 두 시간 이상씩 ‘죽어라’ 훈련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연습했다. 한 번에 발차기 1만 번은 한 것 같다. 지옥길을 가는 것처럼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고 했다. 일정을 마친 그는 “삼겹살에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맥주도”라며 크게 웃었다.
태권도는 변수가 많은 종목이다. 세계최강 이대훈도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을 정도다. 이창건 감독은 “선수별 맞춤 작전과 훈련, 상대 선수에 따른 대처 등 다양한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유럽 전지훈련을 하면서 시차 및 현지 분위기 적응도 마쳤다.
이대훈 해설위원은 “박태준·김유진 등 젊은 세대는 전통적인 태권도 훈련을 한 선수들보다 기술이 다양하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김유진의 ‘안쪽으로 찍기’다. 이 위원은 “어릴 때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종의 변칙 기술이다. 배드민턴에서 스핀 서브가 처음 나왔을 때 기발하단 평가를 받았던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대훈 위원은 “많은 나라들이 도쿄 올림픽부터 일찌감치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출전시켜서 성적을 냈는데, 한국은 선수층이 워낙 두꺼워서 속도가 더뎠다. 파리에서야 빛을 본 것”이라고 짚었다.
파리=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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