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바이오법도 손놔… “차라리 과학委 따로 만들자”
지난 8일까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 계류된 법안은 100개다. 이 가운데 방송법 등을 제외하고 과학기술 관련 법안은 77개다. 인공지능(AI)·바이오 등 첨단 기술과 인력에 대한 내용으로, 국가 미래 경쟁력을 위해선 시급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법 정비가 늦어지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만 뒤처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민구 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은 “과학기술 분야는 특히 전문성이 중요한 만큼, 이를 별도의 위원회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I 기본법, 선진국 앞서가는데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에서 가장 시급한 법안으로 꼽는 것은 이른바 ‘AI 기본법’이다. AI 산업에 대한 규제도 담고 있지만, 법안을 통해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3년마다 정책 방향 등이 담긴 인공지능 기본 계획을 수립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AI 기본법은 21대 국회 과방위에서 장기간 논의를 거쳐 관련 법안 7건을 통합한 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했지만, 총선 국면에 들어가며 논의가 멈췄고 결국 폐기됐다. 22대 국회 들어 명칭은 다르지만, 여야 합쳐 6개의 AI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정쟁 속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AI 기본법이 없어, AI 모델을 출시해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산업을 생각하면, 싸움만 하는 국회가 한심해 보인다”고 했다.이미 유럽연합(EU)에서는 세계 최초로 AI 법이 발효됐다. 미국에서는 2018년 연방법에 AI 정의 규정을 명시하고, 지난해 AI 행정명령을 내놓았다.
이공계 지원 법안도 과방위에 계류 중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젊은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 강화 등 이공계 인력 양성을 위한 정책 추진의 근거를 마련하겠다며 발의된 법안이다. 과학계에선 ‘의대 쏠림’ 현상과 젊은 이공계 연구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인력 양성이 쉽지 않은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사태에서 가장 직격탄을 받은 이들도 젊은 연구자들이었다. 영국은 AI 연구자 전용 비자를 만드는 등 유럽·미국·중국 등 해외에서는 인재 확보를 위한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도 개선 발목 잡는 입법부
정부가 R&D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안도 멈춰 있다. 대표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폐지다. 정부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 기술의 경제성을 따지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던 예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양자 과학이나 첨단 바이오 등 첨단 기술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 예타 폐지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제도 개선을 위해 손봐야 할 연구개발혁신법 개정 등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엄청난 제도 변화인데 국회가 손 놓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했다. 예타 폐지 후 대체 평가 제도를 마련할 과학기술기본법 일부 개정안도 과방위에 올라와 있지만 논의가 전무하다. 정부 출연연에 대한 평가 개선도 추진 중이지만 법안 개정 논의조차 없다.
생명공학육성법은 유망 기술 지정·지원 등 생명공학 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이다. 한민구 이사장은 “계속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는 첨단 산업에서 신기술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제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EU의 바이오기술법 제정 추진처럼 선진국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첨단 산업에 시시각각으로 대응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국내 통신망 무임승차 논란을 막기 위한 ‘망 무임승차 방지법’, 사회 구성원 간에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취지의 ‘디지털 포용법’ 등도 역시 지난 국회 때 폐기됐다가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돼 처리를 기다리는 법안들이다.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한 단통법(단말기 유통법) 폐지를 비롯해 플랫폼 자율 규제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IPTV 사업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 등도 과방위 소관이다.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법 개정뿐 아니라 국회 현안 질의도 입법부의 중요한 기능인데 이것도 멈춘 상황”이라며 “R&D 예산 복원 같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국회가 이를 바로잡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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