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칼, 활’의 최종 병기
[아무튼, 레터]
입추가 지났건만 세상은 찜통이다. 파리 올림픽으로 폭염과 열대야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총(사격)으로 3개, 칼(펜싱)로 2개, 활(양궁)로 5개. 대한민국은 이 세 종목에서 금메달 10개를 수확했다. 편집기자들은 ‘총, 칼, 활’로 헤드라인을 뽑았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밀리언셀러 ‘총, 균, 쇠’가 연상되는 제목이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식으로 묻는다면 한국 양궁은 어떤 환경적 차이 때문에 메달밭이 되었을까. 활을 잘 쏘는 동이(東夷)족의 후예라서? 젓가락질로 다져진 손끝의 감각 덕분에?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대한양궁협회가 복이 많아서? ‘짬짜미’도 명성도 배제하고 실력만으로 대표를 선발하기 때문에? 모두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총, 칼, 활’의 최종 병기는 따로 있다.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거 아니다”(사격 반효진) “괜찮아. 다 나보다 못 쏴”(사격 김예지)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그렇게 잘할 수 있었다”(펜싱 오상욱) “메달 땄다고 젖어 있지 말아라. 해 뜨면 마른다”(양궁 김우진)…. 메달리스트들이 이런 말을 툭 던질 때마다 존경심이 우러나 기립하고 싶어졌다. 결국 ‘멘털(mental)’이 승패를 갈랐다.
경기력은 체력, 기술, 전술, 심리로 구성된다. 그런데 런던 올림픽부터 10년 넘게 ‘국가대표 멘털 코치’를 맡은 김영숙 박사는 “양궁과 사격은 경기력에서 심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50%”라고 했다. 경쟁자와 신체 접촉이 없는 대신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종목이라서 그렇다. 반면 펜싱은 상대에 따라 심리적 부담이 커지고 예측이 빗나가곤 한다.
멘털 코치의 처방전을 보자. 상대 선수 눈을 보며 하는 펜싱은 비트가 있는 음악이나 고함으로 에너지를 올려주고, 양궁·사격은 심리를 차분하게 눌러준다. 양궁 선수들은 오전에 잘 쏘다 오후에 망치기도 한다. 그렇게 멘털이 흔들릴 때를 대비해 화살통에 ‘루틴 카드’를 넣어둔다. ‘바람도 내 편이다’ ‘기본기만 하자’ 같은 단순하고 긍정적인 문장을 보며 정신을 다잡는 것이다.
‘영숙이 이모’라고도 하는 국가대표 멘털 코치는 선수들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만 생각하도록 이끈다. 이 멘털 훈련은 일상에도 쓸모가 있다. “부족한 것은 밀쳐두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세요. 수험생이라면 자신의 강점을 더 생각해야죠. ‘오늘은 나의 날이다’ ‘문제도 나의 편이다’ 같은 마음가짐으로.” 최종 병기는 멘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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