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러스 냄새부터 나를 사로잡은 맥주

한은형 소설가 2024. 8. 10.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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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은형의 밤은 부드러워, 마셔] 쾰슈

그다지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그런 줄 알고 살아왔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술 앞에서는 진실한 사람이므로 맥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말해왔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맥주를 좋아한다고 하면 굳이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자고 하면 마셨다. 그때의 내가 진실하지 않았던 건 아니고 역시 진실했기 때문에 그랬다.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감정보다 그 사람의 세계에 나란히 있고 싶은 감정이 컸다.

혼자 맥주를 마시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여름철에는 더위와 습기를 식히려고, 또 겨울철에는 과한 난방으로 인한 열기를 잠재우려고 마셨다. 맛있어서 마셨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그저 시원했다. 그러니까 내게 맥주란 맛이나 풍취로 마시는 술이라기보다는 체온 조절 기능을 하는 가정상비약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나는 어떻게 맥주를 좋아하게 되었나. 라거만 맥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바이젠을 시작으로 세종, 아이피에이, 에일, 고제, 람빅, 발리 와인, 그리고 온갖 재료와 온갖 기법으로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들을 접하면서 그렇게 되었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맥주가 있고 또 그만큼의 세계관, 그러니까 ‘맥주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렇게 되었다. 세상에 그렇게나 다양한 맥주가 있는데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아니 될 말이었다.

쾰슈가 막대기 모양 전용 잔 '슈탕에'에 담겨 있다. /가펠숍

최근에는 쾰슈가 내게로 들어왔다. ‘들어왔다’고밖에 할 수 없는 전개다. 시작은 합정에 있는 어느 식당에 간 것이었다. 볼로냐식 만둣국을 하는 식당에서 K를 기다리는데 쾰슈가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쾰슈 생맥주가. 참지 못하고 시켰다. 참고로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맥주를 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칵테일이나 아페리티프가 보이면 약해지고 마는 경향이 있지만 맥주는 아니다. 아마도 ‘맥주는 배가 부르다’라는 생각에 주문을 주저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쾰슈를 시켰는가? 라거나 바이젠이었다면 시키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쾰슈였다. 그것도 쾰슈 생맥주. 한국에 있는 업장에서 쾰슈는 흔하지 않은 데다 생맥주는 처음 봤다. 게다가 그 식당에서는 맥주는 오로지 쾰슈 생맥주 하나만을 취급했다. 이쯤 되면 ‘우리 식당 만둣국에는 쾰슈만한 게 없어요’라는 무언의 외침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나처럼 마음이 약하면서 이런 진실된 외침을 감지하는 사람은 피하기가 힘든 장치다. 덫이라고 해도 되겠다. 기꺼이 걸려주고 싶은 덫.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막대기처럼 얇고도 긴 잔에 나온 쾰슈가 마음에 들어서. 이 얇고 긴 잔이 쾰슈의 전용잔으로 보였는데 잔 또한 내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매끈한 직선이 소구하는 도시적인 감수성에 눈이 즐겁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나름 과학적(?)인 이유다. 이렇게 얇은 잔은 구연부라고 하는 입술에 닿는 부분도 지극히 얇을 수밖에 없어지는데, 와인잔에 가까운 얇은 유리잔에 술을 마시면 호사스러운 기분이 든다. 이런 잔이 커지면 멋이 떨어지는데 300ml 사이즈라 딱이었다. 쾰슈를 한 모금 마시고서 생각했다. 어떤 맥주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쾰슈요’’라고 하겠다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그 시즌에 마시는 맥주를 말해왔는데 무조건 쾰슈라고 말해야겠다고. 제가 일방적으로 쾰슈에게 한 우정의 서약(?) 같은 것이랄까요.

유난히 덥고 습한 날이라 쾰슈가 더 맛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찜통 같은 날씨에는 비터 오렌지라든가 베르가못 같은 시트러스 향수가 최적인 것처럼 이런 날에는 쾰슈가 최적이라고. 비터함은 기본에, 프루티하면서 샤프하달까? 테이스팅 노트를 적고 보니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이렇게 생각까지 했다는 것은 쾰슈의 여운이 오래갔다는 말이다. 필스너나 라거도 덥고 습한 날씨에 어울리지만 최적까지는 아니다. 거기에는 프루티함은 없기에 발끝이 들리지는 않는다. 쾰슈에는 산미는 없지만 시트러스류 과일이 스치고, 달지 않고, 맑고 썼다고 복기하면서 깨달은 점이다. 맞다. 나는 쾰슈의 냄새도 마음에 들었다. 쾰슈에서 나는 시트러스 냄새에 마시기 전부터 사로잡혔다.

며칠 후 결정적 사건이 벌어진다. 두둥! 쾰슈의 도시 쾰른에 다녀온 Q에게 쾰슈 전용 잔을 선물받은 것이다. 여름휴가철이라 공연장이 모두 닫은 쾰른에서 그는 날마다 쾰슈를 마셨다고 했다. 다른 맥주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쾰른의 맥주가 쾰슈인 데다 쾰슈의 신선함이 인상적이었다고. 200ml잔에 쾰슈를 먹는데, 내가 좋아할 것 같아 사 왔다고 했다. 역시 뭘 좀 알아서 내가 좋아하는 Q. 포장을 푸는 순간의 행복감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200ml 전용 잔은 합정 식당에서 내가 마신 300ml 전용 잔보다 우월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잔에 쾰슈를 마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부풀었다.

그 잔을 부르는 이름까지 따로 있었으니, ‘슈탕에(Stange)’다. 막대기나 기둥이라는 뜻의 독일어. 작은 내 손에도 쏙 들어오는 슈탕에를 쥐고 쾰슈 무드에 젖을 생각을 하니 어찌나 행복하던지요. 내가 좋아하는 술을 내가 좋아하는 잔에 마실 생각만으로도 이 정도로 좋다니. 이렇게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이룰 때 나는 지극히 행복해진다. 빈 슈탕에를 보니 역시 쾰슈 전용 잔답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날렵한 미감이 있었다. 작고 날씬한 막대기 같은 슈탕에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나 아찔한 구연부다.

어느 노래를 떠올리며 특정 시절을 자동 재생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는데 나도 이제 비슷한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술을 떠올리면 특정한 시기가 떠오르게 되었으니까.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던 맥주마저도 내 일상으로 들어와 특정한 맥주를 떠올리면 어느 시기가 떠오르게 되었다. 바이젠과 아이피에이와 고제로 상징되던 어느 시절을 지나 이제는 쾰슈의 시절을 살고 있다. 그렇게 더위와 습기 사이에 쾰슈를 끼워 넣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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