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에 덮여선 안 될 '기록의 사나이' 손기정

2024. 8. 1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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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전설의 순간들 ⑥ 손기정을 대하는 자세
파리 올림픽의 남자마라톤 경기는 10일 오후(현지시간)에 출발 총성을 울린다. 88년 전에는 하루 전에 출발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식민지 조선의 청년 손기정이 가장 먼저 올림피아슈타디온의 결승선을 통과했다. 2시간 29분 19초, 올림픽 최고기록이었다. 마지막 구간은 스프린터처럼 엄청난 스피드로 질주했다. 하지만 청년은 표정이 밝지 않았다.

당시 기온 30도? 공식 기록에는 21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선두로 달리고 있는 손기정 선수. [사진 아사히신문]
오늘날 올림피아슈타디온의 서쪽, 성화대 뒤 벽에는 종목별 우승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MARATHONLAUF 42195m SON JAPAN’. 1970년 8월 15일, 국회의원을 지낸 박영록 씨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JAPAN’을 뜯어내고 ‘KOREA’로 바꿨다. 다섯 시간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서독 정부는 곧 ‘JAPAN’으로 바로잡았다. 앞으로도 손기정의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012년 7월, 필자는 베를린을 방문해 올림픽 마라톤 경주 구간을 실사하고 스포츠박물관과 올림피아슈타디온을 방문했다. 스포츠박물관 코디네이터인 게르트 슈타인스의 도움을 받아 검색한 자료를 분석해 ‘한국체육사학회지’에 논문을 실었다. 내용은 적지 않는다. 다만 7월 19일 스포츠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놀라움을 기억한다.

문이 열리자마자 손기정의 사진이 보였다. 제시 오언스의 사진은 그 뒤에 있었다. 슈타인스는 사진 설명을 가리켰다. ‘Kee Chung Sohn(Kitei Son)’. 슈타인스는 “우리는 1989년부터 그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표기해왔다. 국적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필자는 손기정이라는 이름이 거대한 단층의 한가운데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한국과 일본, 승리와 비애.

“손기정은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30분 벽을 돌파해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땄다. 그리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 통치 아래 놓인 동포들의 울분을 씻는 한편 민족의식을 새삼 고취시켰다.”

우리는 여기까지 안다. 밖에서 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의 연구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손기정에 주목했다. 2004년에 논문 ‘손기정과 스피리돈 루이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정치적 국면’을 발표한 카를 레나르츠가 대표적이다. 그는 1936년 마라톤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인 젊은 승리자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백발의 노인이 성화봉을 들고 춤을 추듯 달리는 장면을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에서 일장기가 새겨진 운동복을 입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손기정. [사진 아사히신문]
손기정의 이름은 늘 선명한 단층 한가운데 모습을 나타낸다. 그 연원은 오래다. 손기정이 우승한 다음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8월 10일에 호외를 발행하고 임시특파원으로 파견한 사이조 야소의 시를 게재한다. 제목은 ‘우리의 영웅!-탄환 같이 달려간 작은 사나이’다. 이렇게 끝난다.

“… 아, 누가 오늘의 이 승리를 기대했을 것인가./춤춰라! 일어나라! 노래하라! 일본인!/일본은 보여줬다./오늘 확실히 보여줬다./이 작은 남자 손(孫)의 모습에서/세계를 지휘하는, 약진 일본의 용감한 현재의 모습을.”

반도에서는 시인 심훈이 8월 11일자 조선중앙일보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마라톤에 우승한 손, 남 양군에게’를 실었다. 시인은 절규한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이토록 선명한 대조는 손기정의 운명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머릿속 한가운데를 민족의 경계와 운명의 등고선이 가로지른다. 손기정은 베를린에서 누구도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드러내려 노력했을 것이다. 누군가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한글로 이름을 적고 한반도 지도를 그리고, 사인과 함께 KOREAN이라고 적는 방식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아 있는 자료들은 1936년 베를린에서 손기정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육상전문지 『데어 라이트아틀레트』는 손기정이 경성의 양정고보 출신이라는 일본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일본인들을 의식해서일 수 있지만 손기정은 자신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선수촌 소식지 『올림피아차이퉁』은 손기정이 “매우 과묵하여 10분에 한 번 겨우 말을 할 정도였다. 그는 고향인 Korea에서 훈련한 내용에 대해 말했다”고 썼다.

이토록 선명한 단층의 건너편에 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올림픽 정신에 비춰 가장 고귀한 가치일 수도 있는 승리자에 대한 존중과 숭배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손기정은 세계최고기록 보유자로서 베를린에 갔고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받았다. 그가 세운 기록의 가치,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가 받아 마땅한 명예를 ‘식민지 청년의 비애’와 ‘일본은 아직도 손기정이 일본인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는 한국인의 분노 맞은편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뛰어난 마라토너 손기정의 실제 경기 내용과 관련한 정보조차 비애와 분노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결과 때로는 전설이, 때로는 확인할 수 없는 과장과 왜곡이 사실처럼 유통된다.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국내 문헌은 마라톤 경기가 열린 1936년 8월 9일 베를린이 ‘30도가 넘는 고온’에 습도가 높았다고 기록했다. ‘북해에서 열풍이 불어왔다’는 기술도 보인다. 베를린 올림픽 공식 기록은 다르다. 기온은 경기가 시작된 오후 3시쯤 22.8도, 끝났을 때는 21.0도였고 하늘은 맑고 대기는 건조했다. 30도는 한여름 무더위를 상징하는 온도다. 마라톤 경기가 혹독한 더위 속에 열렸다는 전제는 우승자 손기정의 영웅 이미지를 강화하고 그가 거둔 승리의 의미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으리라.

사인할 때면 꼭 한글 쓰고 한반도 그려
손기정은 달리는 동안 물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그는 자서전에 “비스마르크 언덕에 오르니 간호부가 물을 권해 입을 한번 헹구고 뱉었다”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사진 자료는 손기정이 적어도 두 지점에서 물을 공급받았음을 보여준다. 우선 간호사가 건넨 물잔을 입에 대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이 사진은 손기정의 자서전에도 실렸다. 올림픽 공식 기록 645쪽에는 일본인 관계자가 건넨 물을 마시는 (듯한) 사진이 있다. 39㎞ 지점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42.195㎞를 달린 초인적 의지를 강조하는 데는 마라톤 경기 중에 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낡은 상식도 작용했다.

필자는 여러해 전 존경하는 도반과 대화하면서 손기정을 ‘역사적 의미’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자연과학의 측면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이런 생각을 나눴다. 손기정이 달리는 모습은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올림피아’ 등 동영상이 존재한다. 1937년 5월에 손기정이 세브란스에서 심박수·혈압·폐활량·심장구조 등을 측정한 신체검사 기록이 남아 있다. AI를 비롯한 최근의 기술을 적용하면 손기정의 체격과 주법 등을 분석해 그가 도달할 수 있었던 기록의 최대치, 현대 마라톤에 적용해야 할 특장점을 추출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손기정이란 이름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망각과 비애, 분노라는 이름으로 세상 한편에 남아 있다. 어떤 곳에서 망각의 심연은 1936년 8월보다 지금 더 깊다. 필자는 4년 전 여름휴가 때 독일 뤼데스하임을 방문해 참새골목(Drossel-gasse)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거기서 오랫동안 기념품 가게를 해온 교민에게서 들은 일화다. 1981년 10월 손기정이 그 집에 들렀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동행한 교민 한 분이 독일인들에게 물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누가 우승했는지 아는가?”

한 사람이 외쳤다.

“일본인(Japaner)!”

교민은 ‘한국인’이라고 바로잡은 뒤 “그 분이 여기 오셨다”고 소개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우울한 에피소드의 끝자락이 박수로 마감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허진석 한국체육대 교수. 스포츠 기자로 30여 년간 경기장 안팎을 누볐으며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지냈다. 2023년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하고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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