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옆 학원, 과거 기출 답안지… 조선에도 존재한 ‘K교육열’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이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328쪽 | 1만8000원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쓴 한국 양궁팀에 일본 기자가 “왜 이렇게 강한가, 조선·고구려 때부터 활을 잘 쐈다는데 정말인가?”라고 물었다. 그걸 들은 우리는 “여태 몰랐나”라며 웃게 된다. 그런데 그런 ‘전통’이 혹시 다른 분야에도 존재했던 건 아닐까? 이를테면 지긋지긋한 입시 공부와 시험 지옥 같은 것. 서울대 석사 출신 역사 저술가가 쓴 이 책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당연하지!”
조선 시대 과거(科擧) 시험이라면 여러 선비가 질서 정연하게 대열을 이뤄 붓을 든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난장판’이란 말의 난장(亂場)이 과거 시험장에서 유래됐음을 염두에 두고 조선 후기의 과거 현장을 그린 ‘평생도’를 보자. 분명 시험을 보는 사람은 한 명일 텐데, 커다란 양산 아래 온갖 사람이 오글오글 모여 있다.
누구인가? 양산과 돗자리를 챙기는 수종(隨從), 잡일 담당 선접(先接)과 노유(奴儒), 심지어 때로는 참고할 책을 품에 넣어 온 협서(挾書), 대신 글을 짓는 거벽(巨擘), 멋진 글씨체로 답안지를 쓰는 사수(寫手)까지 있었다. 과거 시험은 사활을 걸고 온 여러 사람이 동원된 ‘팀 프로젝트’인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왜? 조선 최고의 국가고시였던 과거는 유능한 인재를 선발할 목적으로 치러졌지만, 벼슬길에 올라 명예와 재산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합격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양반이 될뿐더러 먹고살 길도 막막해졌다. 그래서 다들 비장한 각오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쳤다. 대략 열 살 때부터 최소 10년은 내다보고 과거를 준비했고 20~30년 만에 급제해도 인재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 공부는 패가망신과 통하는 길이기도 했다. 수십년 동안 생업을 접은 채 책 값, 교육비, 한양까지 오가는 교통비와 체재비만 줄기차게 드는 것이니 기둥뿌리 뽑힐 만했다. 정조 때 무신 노상추는 10년 동안 과거를 준비하며 500냥을 썼다고 하는데 웬만한 가정의 그 기간 생활비를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학습량 또한 엄청났다. 사서삼경에 ‘자치통감’(294권, 요약본 50여 권), ‘사기’(130권)를 비롯해 읽어야 할 책만 1000권 이상. 그걸 100회, 1000회 읽고 외워야 했고 논술 능력과 서예도 익혀야 했다. ‘장수생’의 스케일 역시 요즘에 비할 바 아니었으니, 고종 때 선비 박문규는 83세, 철종 때 김재봉은 90세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실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세상에 허다한 영재들이 세속의 학문에 허덕이고 있으니, 누가 이 과거라는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세태를 탄식한 사람은 퇴계 이황이었다. 그러나 ‘학부모 퇴계’는 달랐다. “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과거 준비를 하지 않느냐”며 아들과 손자를 닦달했던 것. 자식에게 공부 잔소리를 늘어놓은 숱한 사람 중엔 다산 정약용도 있었다. 이 정도는 약과였다. 중종 때 문신 이문건은 아들의 종아리를 80대 난타하고도 모자라 코에 물을 들이부었다.
사교육 시장도 커지지 않았을까? 그랬다. 인조 때 맹세형은 평안도에서 암기 위주의 ‘학원’을 세워 지역 합격자 수를 크게 늘렸다. 정조 때 천민 출신 정학수는 성균관 근처 서당에 100여 명을 모으는 ‘대형 학원’으로 이름을 떨쳤다. ‘입주 과외’ 선생인 숙사(塾師)가 있었는가 하면 시험 직전 예상 문제만 짚어 주는 ‘족집게 과외’도 있었다. ‘동책정수’ 같은 ‘기출 모범 답안지’와 초집(抄集)이라는 ‘요점 정리 참고서’가 인기를 끌었다.
세월이 흐르며 온갖 기상천외한 부정행위가 횡행했다. 시험장 담장 아래 묻어 둔 40m 길이 대나무 관이 적발된 미제 사건도 있었는데, 관을 통해 노끈을 연결한 뒤 문제지를 빼내고 답안지를 들여보냈던 것이다. 아예 답안지를 바꿔치기하는 비양심의 ‘끝판왕’도 나왔다. 입시 부정은 끝내 조선의 백년대계를 무너뜨려 망국의 길로 치닫게 했다.
교육열과 입시 지옥의 현실 역시 면면한 전통을 이었음을 알려 주는 흥미로운 생활사 책이지만, 왕실의 세자 교육을 지금의 고액 사교육에 견준 것은 좀 지나치다. 태종의 이복동생인 이방석을 이복형이라 하거나 ‘김득신이 백이열전을 1억 번 넘게 읽었다’는 대목에서 현대 숫자로 환산하면 10만여 번(그래도 많다)이 된다는 설명이 없는 등 아쉬운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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