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활을 쏘는 마음
양궁선수 김수녕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인전 및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됐었지요.
이번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접전 끝에 김우진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는 장면을 보면서 김수녕 선수와의 인터뷰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그는 평정심의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한 번도 ‘죽을힘을 다해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 적이 없다. 마음의 무게를 내 두 손에 들 수 있을 만큼만 가졌다.”
파울로 코엘료의 ‘아처(The Archer)’에서 비슷한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궁도(弓道)를 연마해 온 작가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에서, 배움을 청하는 소년에게 이름난 궁사는 말합니다. “활은 얼마간 무위(無爲)의 시간이 필요하다. 늘 팽팽하게 긴장해 있는 활은 힘을 잃는다. 활을 가만히 놓아두어 견고함을 회복할 여유를 주어야 한다. 그러면 네가 마침내 시위를 당길 때 활은 흡족한 듯 온전히 그 힘을 발휘할 것이다.”
궁사는 또 말합니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그날 아침의 활쏘기에 너무 휘둘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수많은 날이 남아 있고, 각각의 화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이다”라고. 이는 “어린 선수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메달 땄다고 젖어 있지 마라. 해 뜨면 마른다”는 김우진 선수의 충고와도 맞닿아 있네요.
과녁을 향해 끊임없이 활을 쏘는 일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우리네 인생과도 닮아 있습니다. 살면 살수록 백발백중의 삶도, 빗맞기만 하는 삶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코엘료는 이렇게 썼습니다. “쏘아 보낸 화살은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날아간다. 천 발의 화살을 쏘면 천 발 모두 다른 궤적을 그린다. 그것이 바로 활의 길, 궁도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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