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랙퀸·트랜스젠더·나체 가수…종교 모독이냐 표현의 자유냐 [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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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개회식 퍼포먼스 논란
2024 파리 올림픽이 피날레로 향하고 있지만 개회식 퍼포먼스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드랙퀸, 트랜스젠더 모델, 술의 신 디오니소스로 분장한 나체 가수 등이 긴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이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명화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모독’이라는 비난과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을 나타내는 표현의 자유’라는 지지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개회식 예술감독 토마 졸리가 살해 협박을 받기까지 했다.
“교황청은 파리 올림픽 개회식의 특정 장면에 슬픔을 느꼈으며 최근 며칠 동안 많은 그리스도교인과 다른 종교 신자들에게 가해진 모욕을 개탄하는 목소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함께 모여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는 권위 있는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을 조롱하는 암시가 있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는 분명 의문의 여지가 없는 가치이지만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인해 제한되기도 한다.”
그런데 교황청의 발표 전에 졸리 감독은 논란과 관련해서 이 퍼포먼스가 ‘최후의 만찬’이 아닌 다른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리스도교 모독의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화가 얀 판 바일러트(비엘레르트)의 ‘(올림포스) 신들의 연회’를 참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일러트는 미술사를 공부한 사람들도 잘 모를 정도로 별로 유명한 화가가 아니다. 또한 개회식 퍼포먼스에서 식탁에 늘어선 몇몇 사람들의 자세는 확실히 이 그림보다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킨다. 그러니 전세계 시청자가 이 퍼포먼스를 볼 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 때문에 교황청은 “종교적 신념을 조롱하는 암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최후의 만찬’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을 묘사했다. 사진 스냅처럼 한 순간을 포착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제자들 사이에 충격과 당혹의 파장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여러 순간들의 시퀀스를 절묘하게 한 장면으로 담아낸 것이다.
혼란의 와중에서도 제자들은 예수를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대칭을 이루어 그 구도가 안정감이 있다. 이 그림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 벽화로 그려진 것인데 벽 너머로 공간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은 뛰어난 원근법으로도 유명하다. 원근법으로 시선이 집중되는 밝은 중앙 창문 앞에는 예수의 숭고하고 담담한 얼굴이 있어 제자들의 당황한 얼굴과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생생한 대조가 그림 전체의 단아한 조화와 균형 속에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이 걸작으로 회자되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 패러디 광고에 대해 그리스도교 교회는 대개 불편한 심기를 보여왔다. 대표적인 예가 2005년 청바지 업체 마리테 프랑수아 저버의 유럽 광고 사건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시 법원과 프랑스 파리 법원이 가톨릭 교회의 소송을 받아들여 이 광고의 게재를 금지할 정도였다.
일각선 “다빈치는 동성애자 가능성”
‘최후의 만찬’ 패러디도 시대적 유행을 탄다. 2000년대 중반에는 『다빈치 코드』의 영향을 받아 막달라 마리아가 등장하는 ‘최후의 만찬’ 패러디가 쏟아졌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가설이 시들해진 상태다. 왜냐하면 레오나르도가 원래 미소년을 매우 성별이 모호한 모습으로 그린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레오나르도가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파리 올림픽 개회식의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퍼포먼스는 ‘최후의 만찬’으로부터 의도치 않게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종교적 모독일까? 교황청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종교인들에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지면 문제이며 성소수자 못지않게 종교인들도 모욕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표현의 자유와 타인 존중 사이의 균형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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