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민원왕' 보험 개혁

배현정 2024. 8. 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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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경제선임기자
“정당한 보험금을 신속 지급하겠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보험산업의 신뢰 회복을 위해 약속한 말이다. 뒤집어보면, 씁쓸하다. 그동안 정당한 보험금 지급이 갖은 이유로 거절돼온 관행이 뿌리 깊다는 얘기다. 보험산업은 대부업을 제외하면 금융업권 가운데 신뢰도가 가장 낮다.

‘민원왕’ 불명예를 지고 있는 보험산업이 수술대에 오른다. 20년 만이다. 보험업법 전면 개정이 있던 2003년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한 셈이다. 8일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학회 등 학계·유관기관·연구기관·보험회사·보험협회 등이 참여하는 ‘제2차 보험개혁회의’를 통해 ‘보험산업 신뢰도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 의료자문 개선 실효성 의문
보험금 누수 ‘실손’ 손질 시급

주요 과제로는 보험 민원 감축이 꼽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금융 민원의 과반(53%)이 보험 민원이었다. 지난해 생·손보 보험 민원 총합은 4만9767건에 달한다. 특히 보험금 산정 및 지급을 둘러싼 민원이 많았다. 지난해 손해보험 민원 중 보험금 산정 및 지급 문제가 53.8%를 차지했다.

이러한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민원을 줄이고 부당한 보험금 지급 거절을 방지하기 위해 보험개혁회의는 의료자문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보험 분쟁 시 전문의 소견을 듣는 의료자문은 반드시 상급 기관에서만 실시하도록 제한하기로 한다는 방침이다. 또 중립적이고 전문성 있는 종합·상급종합병원 전문의로 자문의 풀(Pool)도 구성할 예정이다. 불완전 판매를 근절하기 위해 보험 안내자료에 불완전판매 비율과 설계사 계약 유지율 등 핵심 정보를 별도 서면으로 소비자에게 사전 제공하는 것도 의무화한다. 보험 가입 때와 보험금 지급 때 약속이 달라지는 부당한 업계 관행을 뜯어고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신뢰 회복’과 ‘혁신’을 키워드로 꼽은 보험 개혁안 추진은 박수받을 만하다. 그런데 벌써부터 ‘맹탕 개혁안’이라는 논란이 일며, 시장의 기대는 크지 않다. 일례로 금융당국은 의료자문을 상급기관에서만 받도록 해 공정성을 높이기로 했는데, 지금도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마디로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한 손해사정사는 “의료자문 폐해의 핵심은 보험회사가 자문의에게 자문료를 지급하는 구조로 인한 유착관계인데 이를 끊어낼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단순 민원 이첩 방안도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보험개혁회의는 금융감독원의 민원 처리 역량을 높이기 위해 단순 민원은 보험협회로 이첩키로 했다. 전체 보험 민원의 약 14%(7000여 건) 가량이 이첩 대상인 단순 민원으로 파악된다. 이는 민원 폭주로 인한 처리 지연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민원 처리기간 평균 62.5일로 2년 전(30.1일) 대비 두 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보험회사로부터 협회비를 걷어 운영되는 보험협회가 민원을 처리할 경우 처리 기준과 공정성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한편,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 개혁 문제는 발표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연내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내년 중 실손보험 등에 대한 종합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실손보험은 지난해 적자 규모만 약 2조원에 달한다. 일부 병원은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유도하고, 환자는 실손보험을 믿고 의료 쇼핑을 하다 보니 낭비되는 보험금 출혈이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실손 보험료는 매년 가파르게 올라가며 선량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 5년간 실손 보험료는 58%나 올랐다. 그럼에도 중대한 개혁 과제는 뒤로 밀리고, 실효성이 낮은 개혁 과제들이 발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험개혁회의는 ‘보험개혁 10대 전략과 60개 과제’를 추진한다. 광범위하고 폭넓은 개혁의 의지는 긍정적이지만,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배현정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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