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한국의 조지 케넌을 기다리며
사람들이 갖는 외교관의 이미지는 영화에서처럼 고급 옷을 입고 특급호텔에서 와인 잔을 부딪치며 외빈들과 대화하는 모습인 것 같다. 이런 사교활동이 외교관 활동의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본질적인 모습은 아니다. 외교관은 전쟁터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총칼 대신 말과 글로 싸우는 것만 다르다. 대사는 본국 정부를 대표하는 막중한 자리라 단 한번의 실수로도 양국 관계를 해칠 수 있다. 싱 대사의 발언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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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 붕괴 등 예견한 미국 외교관
주재국 언어는 물론 정서까지 이해
한국, 강국에 둘러싸여 외교 중요
생존과 통일 위해 통찰력 발휘해야
」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조지 케넌을 최고의 외교관으로 꼽는다. 그는 냉전시기 미국의 대 소련 외교정책이었던 ‘봉쇄정책’을 설계한 외교관이자 전략가이며 역사가였다. 2차 대전 중 미국과 소련은 함께 독일과 싸웠다. 대다수의 미국 국민은 종전 후에도 여전히 소련을 동맹국으로 여겼다. 바로 그런 시기에 주소련 미국대사대리 케넌은 소련의 팽창주의적 의중을 파악하고, 인내심을 갖고 장기적으로 소련을 봉쇄하면 결국 소련이 붕괴할 것이라는 요지의 보고서를 워싱턴에 보냈다. ‘긴 전문(long telegram)’이란 이름으로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바로 그 보고서다. 케넌의 통찰력은 강대국간 전쟁을 막았고,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진영을 수호했으며, 동구공산권을 붕괴시켰다. 한 명의 외교관이 국제질서의 변화를 가져온 엄청난 일을 해냈다.
그의 통찰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1997년 케넌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치명적 실수’란 제목의 글에서 나토의 동진은 러시아의 민족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 성향을 부추겨 냉전 분위기를 되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어떤 지도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바로 그 이유 아닌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미국 관료들 사이엔 케넌의 봉쇄정책을 다시 공부하는 붐이 크게 일었다.
그는 어떻게 그런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프랭크 코스틸리올라 코네티컷대 교수가 쓴 케넌의 전기(『Kennan: A life between worlds』)를 보면 그는 러시아에 대한 지식을 누구보다도 많이 쌓았다. 29세에 모스크바에 부임하기 전부터 러시아 역사에 정통했으며, 러시아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했다. 러시아에선 예술가, 지식인, 실무급 관료 등과 사귀는 한편으론, 러시아 옷차림을 하고 전차나 영화관에서 모스크바 시민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소련의 속사정을 파악했다.
그의 탁월함은 소련체제와 국민의 속성을 꿰뚫어 보았다는 데 있다. 싱하이밍 대사와 조지 케넌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그 부분에서다. 싱 대사 역시 주재국에 대한 지식과 어학 능력 등의 자질을 갖췄으나, 그의 눈은 우리 국민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본국의 지침인 거친 ‘전랑외교’가 그의 눈을 가린 게 아닐까.
주변이 온통 강대국인 우리의 생존과 통일을 위해서는 외교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젊은 외교관들은 케넌의 통찰력과 열정을 다시 한 번 돌아보기 바란다. 케넌과 같은 외교관이 많이 배출되면 우리 외교의 미래는 저절로 밝아질 것이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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