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호흡으로 곱씹는 그곳
이해준 2024. 8. 10. 00:04
최승표 지음
어떤책
언젠가부터 여행이 시끌벅적해졌다. 블로그를 뒤져 음식점이나 카페를 찾아가면 기대와 달라 속상할 때가 더 많지만, SNS에 올리기 위해 그럴듯한 사진은 남겨야 한다. 계획-실행-평가에 홍보가 곁들여지는, 이것은 여행인가 ‘회사 업무’인가.
『조용한 여행』은 이런 ‘요즘 여행’에 반기를 든다. 부제는 ‘서두를 것도 꼭 해야 하는 일도 없는, 오래 바라보고 가만히 귀 기울이는 여행’. 여행 기자인 저자는 팩트를 압축한 기사와 달리 주관적 시선과 느긋한 호흡으로 국내외 30여 곳을 안내한다.
저자는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일하는 스위스 고르너그라트역 역무원, 서핑을 즐기는 하와이 오아후섬 노스쇼어의 구부정한 할아버지 뒷모습을 가슴에 담는다. 캐나다 소도시 화이트호스에서 오로라를 보고 온 뒤 겨울이면 그곳에서 들은 캐럴을 흥얼거린다. 베트남 사빠시에서는 밤새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와 사투를 벌인다. 태국 까오야이 국립공원에서는 새벽부터 길을 나서 해질녘 극적으로 9마리의 코끼리 무리와 마주친다.
남의 블로그를 흉내 낸 여행이 아니기 때문일까. 예기치 않은 사건과 모험이 이어진다. 책 속 70여 장 사진 중 일부는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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