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물 영화의 변화, 공포보다 재난이 더 시원·통쾌하다

2024. 8. 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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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영화를 만지작거리며 어떻게 남냥(납량의 옳은 발음, 納凉)을 할까, 즉 어떻게 하면 서늘함을 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무서운 영화가 납량물로 적격이라고 얘기하는 건 근거가 없다. 공포영화가 종종 간담을 서늘케 하긴 하는데 간과 쓸개가 서늘해 진다고 해서 더위가 싹 가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땀이 날 수도 있다. 공포를 참기 위해 오히려 힘을 주고, 용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의 공포영화는 물리적으로 무서워지는 장면이나 ‘쇼킹 이벤트’격의 장면들을 그다지 구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면의 공포, 사회 내의 기이한 현상이 만들어 내는 공포를 주로 다룬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는 별로 안 무서운데 막상 극장 밖에서 혼자 있을 때, 어두운 골목 길을 지나가야 할 때, 혹은 휴일에 빈 교실을 지나 복도를 걸어가야 할 때 그 직전에 봤던 영화들이 생각나 오싹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이때는 진짜 더위가 가셔진다. 공포가 더위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20~50대 여성 공포영화 선호 안 해
예컨대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한동안 새벽 여명 길의 한적한 골목 끝에서 소복을 입은 천우희(무당 무명)가 서 있다가 지나갈 때 “시방 워디 가? 글루 가면 죽어”라고 말할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영화 ‘곡성’은 꽤나 기분이 나쁘고 찝찝하며 뒷맛이 두고 두고 남는 오컬트 무비였다. 한때 빈 교실의 공포를 주요 상품으로 내세운 ‘여고괴담’ 시리즈도 왕따를 당하던 여고생이 미술실이나 화학실에서 살해 당해 유기된 후 화장실로 가는 복도 끝에서 피를 흘리며 나타나는 장면으로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유의 공포영화는 잘 만들지 않는다. 극장의 주 고객층인 20~50대 여성들이 공포영화를 선호하지 않아 최대 관객치가 200만을 넘기기가 힘들고, 따라서 수익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을 공포영화에 불러 들이려면 공포의 수위를 낮출 수 밖에 없고 물리적 공포보다는 그런 심리, 정서, 아우라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오는 소리가 ‘요즘 공포영화는 무섭지가 않다’이다.

영화가 무서울 때는 영화의 설명이 애매모호하게 느껴질 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긴 한데 그 ‘무슨 일’이라고 하는 걸 논리적으로 잘 설명할 수 없을 때 무서워진다. 지난 해 넷플릭스에 공개된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사진2)’가 그렇다. 시작은 분명하다. 집 안으로 누군가 침범한다는 설정이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내용이다. 클레이와 어맨더 부부(에단 호크, 줄리아 로버츠)는 아이 둘인 아치와 로즈(찰리 에반스, 파라 맥켄지)와 함께 브루클린의 집을 잠시 떠나 버지니아에 있는 해안가 마을인 포인트 컴포트의 한 저택을 에어비앤비로 임대한다. 집은 호화롭고 깨끗하다. 어맨더는 너무 마음에 들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곧 터진다. 어느 야심한 밤에 흑인 부녀인 스콧과 루스(마허샬라 알리, 마이할라 헤럴드)의 방문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영화가 가장 무서워 하는 전형적인 설정은 흑인 남녀(혹은 집단)가 백인 중산층 가정을 ‘침입’하는 것이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백인 중산층 부부는 무조건 올바르고 선할 것이다라는 인종적, 정치적 편견을 갖게 된다. 당연히 스콧-루스 커플도 사실은 아버지와 딸이 아니라 위장 강도, 침입자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엄청난 불길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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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명령어다. ‘세상을 뒤로하고 (떠나라)’ 혹은 ‘세상을 뒤에 (남기라)’는 의미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기한 것들이다. 거대한 유조선이 해변 백사장을 향해 돌진한다. 그건 뭔가 기계의 오작동일 수 있다. 그보다는 사슴이 자꾸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떼로 나타난다. 사슴도 뭐가 불안해 보인다. 정전이 되고 인터넷이 끊긴다. 어맨더 부부는 지리를 잘 모르는 탓에 내비게이션이 필수인데 그런 걸 전혀 이용할 수가 없다. 당연히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다. 방송도 나오지 않는다. 이 가족, 그리고 흑인 부녀는 자신들이 완전히 고립되고 감금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영화 속 공포가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전이되기 시작된다. 세상이 통제될 때보다 세상을 통제하는 누군가가 없을 때 비로소 진짜 공포가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대의 공포영화는 이런 것이다. 눈앞에 귀신 ‘따위’는 무수한 현대 과학의 이론으로 착시나 착각, 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에 깜짝 쇼는 더 이상 공포영화의 작법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에 봉착하는 것, 그 불일치와 부조리에서 오는 공포야 말로 현대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영화 속 이웃의 은둔자 대니(케빈 베이컨)는 이 모든 것이 다 한국이 저지른 짓이라고 말한다. 한국 중 북한의 가공할 군사 공격 탓이라고 말하는지 남한의 경제성장, 남한의 자동차 산업이나 반도체 산업이 미국 중심까지 침범한 탓이라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 불명확함이 주는 공포야말로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의 핵심 컨셉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공포영화는 아예 어려워진다. 정치와 역사를 개입시킨다. 1977년 다리오 아르젠토가 만든 전설의 공포영화 ‘서스페리아(사진3)’는 2018년, 지금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탐미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루카 구아다니노에 의해서 재탄생 되면서 1977년의 독일 베를린 상황, 당시 세계에서 일어났던 극좌파의 테러 행위 등이 배경에 깔린다. 독일의 바더 마인호프와 일본의 적군파, 중동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등의 정치색이 왠지 모르게 계속 나온다.

개봉 첫 주 미국서만 1200억원 수입
사진 3
‘서스페리아(suspiria)’는 서스피어(suspire)에서 나온 말이다. 한숨, 호흡이란 뜻인데 유럽 흑마술 역사에 나오는 세 명의 마녀 중 한 명을 의미한다. 테네브라룸(어둠 마녀), 라크리마룸(눈물 마녀) 그리고 서스피로룸(한숨 마녀)이다. ‘서스페리아’는 극한의 광기와 잔인한 살인 행각으로 이어지는 마녀의 공포가 어떻게 나치의 시대에서 극좌 테러의 시대로까지 이어지는가를 고찰한다. 게다가 주인공인 수잔(다코다 존슨)은 아미쉬 집안의 딸이다. 이것 역시 극단적 기독교 공동체다. 결국 ‘서스페리아’는, 그것이 이데올로기든 종교든 혹은 무용과 같은 예술행위든, 인간의 과도한 집착이 가져 오는 신경쇠약 직전의 히스테리가 어떤 광적인 결과를 가져 오는가를 목격하게 만든다. 생각하게 하는 공포는 생각에 치중하느라 무섭지가 않다. 무서울 틈이 없다.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납량특집은 공포가 아니라 재난영화에서 찾아야 한다.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 배급하는 ‘트위스터스(사진1)’가 주목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토네이도 영화이다. 미국에서 현재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 달 19일에 개봉돼 첫 주 미국에서만 8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우리 돈으로 1200억원가까이를 벌어 들인 것이다. 개봉 2주만에 올해 개봉된 흥행작 중 10위에 올랐고, 더 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토네이도 영화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리는 것일까.

‘트위스터스’의 주인공은 토네이도다. 영화 속 타일러(글렌 파월)나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가 아니다. 쌍으로 몰아 닥친 어마어마한 회오리 토네이도가 주인공이다. 이 막강한 회오리 바람은 세상의 모든 걸 다 집어 삼킨다. 미국 관객들은 늘상 이 토네이도에 피해와 재난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서는 재난을 ‘당하지만’ 영화에서는 재난을 ‘즐긴다’. 왜냐하면 영화는 이런 재난마저 늘 극복하고 이겨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영화에서라도 재난 극복의 해피 엔딩, 그 인간 승리를 맛보려 한다. 한국 관객들 역시 지금 이런 영화 속 토네이도나 태풍이 절실한 마음이다. 현재 두 열기둥이 한반도에 유입될 태풍을 막고 있고, 태풍이라도 그것을 밀어 내지 않는 한 지금의 이 살인적인 무더위가 가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토네이도는 미국에서 있는 재난 현상이지만 한국 관객들은 시각적 쾌감으로나마 엄청난 바람의 시원함을 만끽하고 싶다.

‘트위스터스’의 감독은 정이삭이다. ‘미나리’가 여우주연상(윤여정)을 받은 후 주목을 받고 바로 블록버스터 연출로 불려 갔다. 이런 상황은 ‘노매드랜드’를 만들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던 클로이 자오의 경우도 같은 맥락이었는데 자오는 이후 ‘이터널스’라는 SF판타지로 대대적인 실패를 겪었다. 반면에 정이삭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통쾌하고 시원한 납량의 바람이 될 것같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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