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넘고 또 넘은 생생한 도전의 기록
강만수 지음
삼성글로벌리서치
1970년 가을 경주세무서. 행정고시에 합격해 총무과장으로 공직을 시작한 20대 청년은 누런 봉투에 담긴 첫 월급을 받고 좌절한다. 2만3544원. 한 달 하숙비는 1만8000원이었다. 첫 월급날 친구와 마신 술값은 그의 돈이 모자라 친구가 나머지를 냈단다. 하숙비 정도의 월급으론 자식 노릇도 못할 거 같아 일을 접을까 고뇌했다. 전후 복구 시대를 거쳐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진행 중이던 시절, 월급봉투에 담긴 ‘후진국 대한민국’이 발목을 잡았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저자는 누런 봉투를 ‘고난의 단초’라고 표현했다. 이후 30년 넘는 공직생활 동안 그는 한국경제에 닥친 두 번의 거대한 외부 충격에 모두 맞섰다. 1997년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단군 이래 최대 국란으로 회자되는 외환위기를 겪었다. 2008년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마주했다. 책에 반복되는 고뇌와 고난이란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경제의 부침과 위기 극복을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외환위기 당시 부도 위기에 몰렸던 한국 경제에 대한 처절한 반성도 있다. 그는 “당시 외환위기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고 리더십과 행동은 실종되어 있었다”며 “우리가 잘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고, 강요당한 변화는 큰 고통과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외환위기 이듬해 공직을 떠난 그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같은 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왔다. 저자는 당시를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는 전례 없는 위기”라 회고했다. 앞서 외환위기의 경험은 교훈이 됐다. 고평가된 환율, 과도한 세율, 부진한 연구·개발(R&D) 투자와 불안한 자본 유출입을 점검했다. ‘선제적(preemptive)이고 결정적(decisive)이며 충분한(sufficient) 대책’은 효과가 있었다. 한국은 위기에서 가장 빨리 벗어난 나라가 됐고, 세계 12위에서 7위의 수출 대국으로 올라섰다. 사상 처음 무역수지와 신용등급에서 일본을 넘어선 것도 이때다.
저자는 한국경제를 시련과 위기 속에서 꽃 피운 도전의 역사로 진단한다. 위기는 항상 있었고 반복된다는 지론이다. 결국 “어떻게 도전하고 대처하느냐가 남은 이들의 과제”라고 했다. 그는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적 갈등을 꼽는다. 투자 위축과 과도한 가계부채는 저성장경제를 낳고, 타협 없는 대립과 다수결의 파괴가 불임정치를 낳는다는 쓴소리에도 거침이 없다. 관료 사회에 애정 어린 조언도 이어진다. “무사한 관료는 한 것도 없고 그래서 욕 들을 일도 없다”며 “일해서 비판받는 것은 일하는 관료의 숙명”이라면서다.
2005년과 2015년 각각 출간한 두 저서 내용을 정리해 새로 한 권에 담은 이 책은 한국경제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기록이다. ‘1997 경제위기의 원인·대응·결과’ ‘2008 글로벌 경제위기 대응전략과 앞으로의 길’ 등 부록에 실린 당시의 보고서도 사료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곽재민 기자 kwak.jaem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