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앙 위협 댓글에 대한 유감 [아침을 열며]

2024. 8.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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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국가대표 라건아가 경기 용인 KCC 연습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년 1월 특별귀화로 태극마크를 단 라건아는 오는 5월 국가대표 계약이 종료된다. 용인=윤서영 인턴기자

다음 중 한국인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고르시오.

①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를 둔 가수 인순이

② 한국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를 둔 가수 윤수일

③ 필리핀 출신 귀화인이자 전 국회의원 이자스민

④ 프랑스 출신 귀화인으로 한국인과 결혼한 방송인 이다도시

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를 둔 아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인종적 편견과 선호에 따라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이 퀴즈에 답할 것이다. 가능한 답변들은 아마도 다음 정도가 아닐까 싶다.

1) ① ~ ⑤번 모두 다 한국인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거나 오래 살아왔고, 한국어도 능숙하게 하며, 한국 문화도 잘 알기 때문이다.

2) ①, ②, ⑤번이 한국인이다. 이들은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한국인으로, 한국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이다.

3) ① ~ ⑤번 누구도 한국인은 아니다. 100%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국적'은 한국인이지만, 흔쾌히 한국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누구까지를 한국인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최근 유행하는 '대한외국인'이라는 신조어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외국인을 뜻하는데, 최근 두 명의 대한외국인을 둘러싼 사건들은 이 용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첫 번째 대한외국인은 부산 KCC 소속이었던 귀화 농구 선수 라건아이다. 미국 출신의 그는 2012년부터 12년간 한국 농구계에서 뛰었다.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 '리카르도 라틀리프'였던 미국인 라건아는 2018년 특별 귀화로 '한국인'이 되었고, 이름도 대한건아라는 의미로 라건아로 바꿔 용인 라씨 시조가 됐다. 지난 2월엔 귀화 선수로는 처음으로 한국 국가대표 주장도 맡았다. 그랬던 그를, 5월 한국농구연맹은 2024~25시즌부터 '외국인' 선수로 분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프로농구 역대 득점 2위와 리바운드 1위라는 업적에다가 2018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국가대표로서 이룬 업적도, 그를 완벽한 한국인, '국내' 선수로 인정받게 할 수는 없었다.

파비앙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두 번째 대한외국인은 프랑스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의 방송인 파비앙이다. 올해 한국살이 16년차인 그는 각종 예능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2022년 한국 영주권 비자를 취득하였다. 파비앙은 7월 30일 인스타그램에 "대한민국 양궁 남자단체 금메달. 프랑스도 은메달. 휴 살았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에 '#안전한귀국'이란 해시태그도 달았다. 파비앙이 "살았다"를 외치며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다고 안도하는 배경에는, 그가 프랑스인이라는 이유로 한국 네티즌들의 악플 세례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7월 27일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조직위원회 측이 대한민국 선수단을 북한으로 소개한 것과 관련, 네티즌들이 그의 소셜미디어에 악성 댓글을 퍼부었다. 그는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댓글테러가 이번 뿐만은 아니라서 익숙하다고 말하였다. 파비앙은 '천착', '상춘객' 등 평범한 한국인도 잘 쓰지 않는 수준 높은 단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도 1급을 받아 한국사 해설사로도 활동하였다. 진정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이라 불릴만한 그에게도, 프랑스와 관련하여 기분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바로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욕이 쏟아지고, 넘을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울타리가 높게 세워진다.

대한외국인이라 불리는 이 두 명은 그래서 결국 외국인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정답이 무엇이든, 이제 우리 사회는 260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과 함께 하는 나라이다. 한국인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삼을 것인가에 대해 열린 공론장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다.

누가 한국인이냐는 질문에 책 '인종주의의 덫을 넘어서'(캐서린 김 외, 2020)는 이렇게 답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혈통도 인종도 아닌, 근현대 한반도의 경험에 뿌리를 둔 공동의 역사"라고. 따라서 사실 한국인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고르라는 위 문제는 정답이 없다. 누구든지 이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살며 같은 경험과 역사를 공유한다면, 모두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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