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동맹? 비용을 지불하세요!
지난 한 달간 미국 대선판을 뒤흔든 사건 현장에서 트럼프 핵심 참모들과 대화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제도권 정치를 혐오하는 이들을 워싱턴 정가에서 마주치긴 쉽지 않았다. 트럼프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한다고 평가받지만, 미 주류 매체들과도 인터뷰를 하지 않아 베일에 가려진 인물들이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를 초래한 TV 토론장, 총알을 피한 트럼프가 대관식을 치른 공화당 전당대회장 등에서 이들을 만나 질문을 쏟아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다시 만날 것인가, 여전히 주한 미군을 철수하고 싶어 하나, 한국의 핵 무장을 용인할 의향이 있는가.
그런데 답변이 불분명하거나 중구난방이었다. 중국, 유럽 문제엔 거침없이 명쾌한 답변을 내놓던 이들이 한국 질문을 받자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사령탑으로 유력 거론되는 한 인사는 기자와 인터뷰를 약속했다가, 예상 질문지를 받은 직후 ‘무기한’ 연기하자고 했다. 애초에 북한 문제 등을 두고 트럼프와 진지하게 상의하거나 방침을 정한 적이 없는 듯했다.
이들이 입을 맞춘 듯 반복한 단 한 가지 주제가 있었다. 트럼프와 김정은 간 친분이었다. “트럼프의 외교 능력 덕분에 한반도는 지금보다 훨씬 안전했다”는 식이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여기까지다. 트럼프 진영 내부에 합의된 한반도 정책이란 건 역시 없다는 게 최근 내린 결론이다. 트럼프 2기 파고(波高)에 대비해야 하는 우리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2기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충동적 결정’이 한국을 정면 타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트럼프 측근’을 자처하는 인사들이 한국을 안심시키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더라도 양국 관계에 금 갈 일은 없을 거라는 게 요지다. 정말 그럴까. 언론에 보도되는 이른바 ‘참모’들 중 트럼프와 대화 한번 못 해 본 사람도 많은 걸로 안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할 경우 그가 휘두르는 ‘아메리카 퍼스트’의 칼날이 언제 유럽에서 한국으로 향할지 모른다. 순간의 판단과 기분에 따라 한국·북한에 어떤 ‘거래’를 들이밀지 트럼프 자신도 모를 수 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불확실성을 상수(常數)로 두고 한국 정부는 대비해야 한다.
비교적 확실해 보이는 건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 기간 트럼프 최측근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 대사가 주요 동맹국인 프랑스 기자와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상징적이었다. 동맹 간 ‘연대’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기자 말을 중간에 자르면서 “나에게 설교할 생각 말라”고 했다. 그는 “전 세계 어떤 클럽에서 회비 안 내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느냐”며 “약속된 비용을 지불하면 그만(Simply pay your bills)”이라고 했다. 말 많던 프랑스 기자가 반박하지 못하고 눈을 껌뻑거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동맹을 다루는 장면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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