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48] 알래스카 패러독스
여행자들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알래스카. 바다와 산, 빙하와 호수가 펼쳐진 미적 경관과 거대한 영토를 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에 갇히지 않은, 자연 생태계의 동물을 관찰하는 것 역시 감동이 다르다. 흰머리수리를 비롯한 각종 새와 연어, 곰, 산양, 수달, 물개, 그리고 다른 데서 구경하기 힘든 무스, 카리부, 퍼핀 등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도심의 공원에서 다람쥐를 보듯 알래스카에선 순록을 본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단지 실제로 여행을 해보면 감상의 효율은 좀 떨어진다. 오랜 시간 이동해서 곰 한 마리 보고, 또 다른 곳으로 배 타고 가서 물개 몇 마리를 보고 하는 식이다. 아무래도 “빨리빨리”가 익숙해서 서둘러 뭔가를 보고 또 다음 여행지로 이동해야 하는 우리 정서에는 다소 답답한 면이 있다. 실제로 몇 해 전 알래스카 방문 때 동물 구경에 갈증을 느껴 돌아오자마자 며칠 후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을 찾아가서 동물들을 실컷 본 적이 있다.
알래스카는 땅이 커다란 반면 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호텔이 많지 않고, 마을을 연결하는 육상 도로도 제한되어 있다. 알래스카의 주도인 주노(Juneau)로 연결되는 도로가 없어서 주청사 앞에 모여서 집회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마을에서 마을을 이동하려면 경비행기 등의 수단을 이용해야 하므로 미국에서 경비행기가 가장 많은 주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알래스카 여행의 대부분은 유람선으로 이루어진다. 길이 없으니 해안을 따라서 이동하고 호텔이 부족하니 숙박은 배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평생 한 번을 꿈꾸는 여행지이지만 지리적으로나 시간, 비용 면에서 쉽지 않은 선택지다. 알래스카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70세가 넘는다. 알래스카의 자연환경을 젊을 때 경험해보면 다른 모든 곳이 시시해 보인다는 변명이 있지만, 실제로는 여행지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한번 방문한 여행객의 90% 이상은 다시 찾지 않는다는 것도 재미있는 통계다. 그래도 알래스카를 다녀온 수많은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탄하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알래스카의 패러독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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