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66] 노잼 라이프
오래전 조카가 하는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 다운받은 적이 있다. 시작하자마자 얻어터지고 게임이 바로 종료됐다. 게임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외워야 할 게 많았는데 이동, 공격, 방어, 아이템 사용 등 기본적 무기 사용 방법을 배워야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게임에도 기초가 있어야 했다.
PT 수업을 받을 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재밌는 건 없다!”는 트레이너의 주장이었다. 공감이 전혀 안 되던 그 말이 이해된 건 지루한 근력 운동을 3개월 반복한 후, 두부 같던 팔뚝에 약간의 근육이 생긴 걸 느낀 다음부터다. 쾌락과 기쁨은 다르다. 재미의 기쁨은 즉각적일 때도 있지만 나중에 오는 경우가 더 많다. 재미에도 진입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취미라고 말하는 독서나 음악, 미술 같은 것이 더 그렇다. 안 읽히던 책이 읽히고, 안 되던 연주가 되면서부터 우리는 점점 흥미를 느낀다. 재미있어 보이는 일의 이면에는 지루한 반복이 많다. 그래서 내가 재미에 대해 가장 공감하는 말은 ‘원래 사는 건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번아웃된 환자들을 진료한 한 정신과 의사의 조언 중 기억에 남는 건, 소진되지 않고 일하려면 신나게 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것이었다.
조회 수 경쟁이 벌어지면서 즉각적인 재미를 주는 도파민 중독이 최근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최고의 가속도를 추구하는 수퍼 카 제조 업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엔진이 아니라 ‘브레이크’라는 사실이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없다면 최고 속도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도파민 과잉 시대일수록 우리는 스스로 멈추고 만족을 느끼는 능력이 필요하다. 삶을 여행에 비교하면 속도와 풍경 모두를 가지긴 힘들다. 빠른 속도는 여행의 밀도를 떨어뜨린다. 우리 뇌의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중추가 맞닿아 있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 걸까. 나는 이것이 재밌게 살기 위해서 재미없는 걸 견디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우리 몸의 충고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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