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강성진]중진국 함정 넘었다는 한국, 구조개혁 없인 ‘반쪽 선진국’
노동-연금-부채 등 제도 개혁은 지지부진
개혁으로 생산성 향상돼야 선진국형 경제
이번 보고서의 ‘기적’이라는 용어는 20년 전 출판된 1993년 ‘동아시아 기적’이라는 보고서를 생각나게 한다. 다른 선진국들의 경제성장 원인과 비교할 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4개국(싱가포르, 홍콩, 대만)의 고속 성장에 총요소생산성(TFP) 변화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기적이라고 보았다. 물론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기술 변화보다는 투자가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하면서 이 4개 국가는 ‘종이 호랑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이들의 경제성장은 기적이라기보다는 투자 확대에 의한 전형적인 성장 경로를 밟은 경우라는 것이다.
이들의 평가가 어떻든 한국은 1951년 타임스 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 발전보다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자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쓸 정도였던 국가에서 현재는 선진국 문턱에 서 있다. 이 과정을 돌아보면 이번 세계은행 보고서 결론은 의아하다.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1960년 1175달러에서 세계은행의 중진국 기준(1136∼1만3845달러)을 넘어선 것은 1994년(1만3977달러)이었다.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수준이었던 1990년 이전에 과연 한국의 경제성장이 혁신으로 주도되었는지도 의문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이 세계를 주도하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들어서다.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커스는 기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한국과 필리핀의 경제성장 격차 원인을 인적자본(교육)으로 보았다.
세계은행의 진단이 옳고 그름을 떠나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이미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는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형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세계은행이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기 위한 핵심적인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투자율과 혁신 지표(특허 출원 수, 연구개발 지출 등)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2023년 1인당 실질 GNI도 3만2740달러로 고소득 국가에 진입해 있다.
앞으로의 경제성장 동력은 단순 경제지표 차원이 아닌 구조·제도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한 규제 완화, 시장 개방, 민영화 등 제도 변화로는 충분하지 않다. 1995년 경제학자 대니얼 로드릭이나 최근 제도경제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제도가 선진국형으로 개혁돼야 한다. 국제 규범 준수, 사회안전망 강화, 빈곤 완화, 유연한 노동시장 등 정책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이러한 개혁으로 투자나 혁신 지표가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혁신생태계가 강화될 수 있다.
구체적 개혁 방향이나 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보면 된다. 세계경제포럼(WEF)과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지표를 보자. WEF의 종합순위(2019년)는 141개국 중 13위지만 생산물시장(59위)과 노동시장(51위) 순위는 처진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정리해고 비용(116위), 고용 및 해고 관행(102위), 노사관계 협력(130위)은 거의 전 세계에서 후진국 수준이다. IMD의 종합순위(2024년)는 67개국 중 20위였으나 정부 효율성은 39위였고, 그중에서 재정(38위) 및 기업 여건(47위)이 특히 떨어진다.
세계은행이 이번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중진국 국가들의 도약에 대한 도전인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등은 우리에게도 도전과제다.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 연금, 국가부채의 급격한 증가 등은 또 다른 개혁 과제다. 경제적·정치적 포용 체제를 넘어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포용적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당면한 도전을 기회로 삼아 지속 발전을 달성하고, 모두가 행복한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설 수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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