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명품백 조사’ 권익위 국장의 비극…법치가 무너졌다 [논썰]
안녕하십니까. 한겨레 ‘논썰’의 박용현입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의 조사 실무를 총괄했던 국민권익위원회 김아무개 국장이 8일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는 권익위가 지난 6월10일 이 사건을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자괴감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명품백 받아도 된다? 상식을 뒤엎은 ‘법기술’
당시 권익위는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에 종결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는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은 채 1분여만에 끝났습니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는 공직자의 배우자가 금품·선물을 받아도 처벌하는 조항이 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런 행위를 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압니다. 실제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경우, 해당 공직자는 그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서면으로 신고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금품·선물은 지체 없이 반환하거나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이를 어길 경우, 해당 공직자는 3년 이하의 징역,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권익위는 김 여사가 명품백을 받은 사실을 윤석열 대통령이 인지·신고했는지 조사하지도 않은 채 종결했습니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권익위가 결정할 때 표결까지 가서 9 대 6으로 결론이 났던 사안이거든요. 수사기관에 이첩해야 한다는 위원이 6명이었고, 위원장을 포함해서 부위원장, 다수 위원들이 완강하게 반대해가지고 이렇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갈등이 심했던 것 같아요. 권익위원 한 분도 사임했습니다. 양심에 반하는 일이어서 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중략) 권익위원회는 자체적으로 수사권은 없는 일종의 조사기구잖아요. 조사기구에서 논쟁이 그 정도로 격렬하고 의심이 가면 저는 수사기관에 이첩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8월9일 MBC라디오 ‘뉴스바사삭’
권익위 결정은 ‘공직자의 배우자가 명품백 따위를 받으면 안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치를 오히려 ‘법의 이름’으로 부정했습니다. 김 국장은 이 사건을 종결 처리하지 말고 수사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의견이 묵살되고 결국 종결 처리되는 과정에서 심한 압박과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지인·동료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참담한 비극입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서 “국민의 공복인 공직자가 법과 원칙, 양심과 상식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에 대해 죽음으로 항변할 수밖에 없었다면, 정의를 위해 이 문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썼습니다.
이 사건은 현 정부 들어 법치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법치라는 말은 형식적 법 규정만 따지는 게 아닙니다. 법 규정의 빈틈을 민주주의, 정의, 인권과 같은 대원칙으로 채워야 완성됩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한 법기술이 법치라는 이름으로 판치고 있습니다. ‘권익위의 명품백 수수 정당화’와 비슷한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차별 통신조회, 윤 대통령 말대로면 ‘미친 검찰’
최근 정치인, 언론인, 일반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통신조회한 게 드러나자 검찰은 “적법한 수사”라고 반박합니다. ‘적법’이란 단어를 ‘명문상 법 규정을 위반하지 않음’으로 해석한다면 맞는 말입니다.(다만,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통보해줘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부분은 불법 여지가 커 보입니다. 검찰은 7달이 지나서야 당사자들에게 통보했습니다.) 어쨌든 통신조회는 법에서 허용한 수사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를 너무도 잘 아는 윤석열 대통령은 왜 후보 시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통신조회에 대해 흥분하며 비판했을까요.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저도 제 처, 제 처 친구들, 심지어 제 누이동생까지 통신사찰했습니다. 이거 미친 사람들 아닙니까? 국회의원 보좌관만 사찰해도 원래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이거 놔둬야 하겠습니까. 공수처장 당장 구속수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게 40∼60년 전 일도 아니고 이런 짓거리를 하고 백주대낮에 거리를 활보합니까.” ―2021년 12월30일 대구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이 말대로라면 지금의 검찰은 ‘미친 사람들’입니다.
좀더 차분히 보겠습니다.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형사사법절차는 ‘비례성’이라는 대원칙이 지배합니다. 수사로 달성하려는 공익적 가치와 수사로 침해되는 시민의 권리를 저울에 올렸을 때 최소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번 통신조회는 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가 목적인데, 이것이 시민 수천명의 통신조회를 정당화할 만한 사안이라고 여길 사람이 윤 대통령 말고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니, 윤 대통령조차도 자신의 과거 발언을 기억한다면 차마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김규현 변호사(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공익제보자) “이 명예훼손 사건이라는 것이 어이가 없는 거예요. 일반인들 명예훼손 사건을 고소장 내면, 어떻게 수사하는지 아십니까? 일단 고소장 가져가라고 그럽니다. 남의 감정 다툼 이런 거에 행정력을 세금을 써야 돼? 이러는 사건인데,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기관이라고 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1부에서 그런 명예훼손 사건으로 수천 명을 이렇게 한다는 것은… 거기는 원래 중대한 뇌물 범죄라든가 기업들의 엄청난 횡령·배임 범죄라든가 이런 걸 수사를 하고 있는 데 아니에요? 반부패잖아요. 명예훼손이 부패 사건입니까?” ―8월6일 스픽스 ‘최경영의 정치본색’
그런데도 검찰이 형식적으로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핑계로 이런 식의 수사를 정당화하려 한다면, 대안은 통신조회를 엄격히 제한하는 규정을 명문화하는 것뿐입니다. 판사의 영장을 받아야만 통신조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건희 황제조사’가 규정대로? ‘법 앞의 평등’보다 높은 규정 있나
형식적 법치의 더 극명한 사례는 김건희 여사 ‘황제조사’입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월3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반 규정에 따라 진행한 것이고 특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조사 방식, 시기, 장소 등은 검찰의 재량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너무도 잘 아는 이원석 검찰총장은 왜 국민들에게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드렸으나 대통령 부인 조사 과정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사과했을까요.
‘공정성’이라는 형사사법절차의 대원칙이 파괴됐기 때문입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특혜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런 식의 수사를 ‘규정을 따랐다’는 이유로 정당화하려 한다면, 대안은 ‘비공개 출장조사를 하지 말라’거나 ‘검사가 휴대전화를 뺏긴 채 조사해서는 안 된다’ 따위의 규정을 일일이 명문화하는 것입니다. 검찰이 이렇게 모자란 조직입니까.
법은 ‘이렇게 하라’는 의무와 ‘이런 건 하지 말라’는 금지를 규정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규정되지 않는 무한대의 여백이 남기 마련입니다. 재량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마냥 회색의 지대는 아닙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공정성·비례성 같은 더 큰 원칙들이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이와 달리, 원칙을 내던지고 회색 지대의 허점을 틈타 잇속을 챙기는 건 모사꾼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런데 국가기관마저 그런 행태를 대수롭지 않게 따라 하는 게 현 정권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법 허점 이용한 꼼수로 방송장악 밀어붙이는 방통위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한 방송장악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법상 방통위는 5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2명은 야당이 추천하도록 돼 있습니다.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방통위는 대통령이 임명한 2명만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법은 방통위 회의의 의결정족수를 ‘출석’위원이 아닌 ‘재적’위원 과반수로 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위원만 출석해서 의결이 이뤄지면 소수의 독단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규정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재적위원을 아예 2명으로 줄여놨습니다. 그 2명이 독단적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법에 정한 ‘재적위원 과반수’라는 요건은 형식적으로는 충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울뿐인 과반수입니다.
법원도 여기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8일 이진숙 방통위원장 체제에서 이뤄진 문화방송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6명의 임명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이 의결정족수를 아예 ‘숫자’로 못박았다면 방통위의 꼼수가 불가능했을 텐데, 법에 허점이 있었고 정권이 이를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꼼수를 막도록 의결정족수를 4명으로 명시한 방통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또 거부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대통령 부인 특검법은 거부권 예외’ 헌법에 못박아야 하나
윤 대통령은 이미 ‘김건희 특검법’을 포함해 역대 가장 많은 1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헌법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 사유를 명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법부·행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가 이 여백을 지배합니다. 입법부가 명백히 부당한 법률을 제정하려는 경우에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해야 합니다. 특히 김건희 특검법의 경우 도무지 거부할 명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 스스로 과거에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2021년 12월29일 경상북도 선대위 출범식)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8일 ‘채 상병 특검법’도 세번째로 발의됐습니다. 이번 특검법엔 ‘이종호 등이 김건희 등에게 임성근의 구명을 부탁한 불법 로비 의혹 사건’이 수사 대상에 추가됐습니다. 김 여사가 수사 대상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 역시 거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헌법에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으니 내키는 대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만큼 반민주적인 사고도 없습니다. 한 국가의 원수가 이렇게 천박한 인식을 가져서야 되겠습니까. 헌법에 ‘대통령 부인이 관련된 특검법은 거부권의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라도 넣어야 한단 말입니까.
형식적 법 규정만 따지는 건 반쪽짜리 법치입니다. 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신이 부정되면 껍데기뿐인 법치입니다. 법치와 공정을 내걸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실제 보여주는 건 그런 법치입니다. 대통령부터 검찰, 권익위, 방통위 할 것 없이 모두 법의 회색 지대에 숨어, 법의 본령인 민주주의와 정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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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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