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붙이면 역효과 우려···부동산시장 회복도 고려
시한 못박으면 구조조정 지연
업계 의견 수용해 자율성 부여
금감원, PF 정리계획 제출 받아
내달 19일부터 현장점검 진행
금융감독원이 압박 수위를 높여가던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정리 지침에 유연성을 부여한 것은 시장 충격과 구조조정 지연 등 부작용이 불거질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 때문이다. 시한을 정해 저축은행 업계를 압박할 경우 오히려 경·공매 등 부실 사업장 정리가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PF 사업장의 사업성이 구조조정이 시급했던 이전보다는 다소나마 회복될 수 있다는 점도 업계에 PF 구조조정 자율성을 부여하게 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달 금감원은 전 금융권에 △6개월 내 부실 PF 사업장 정리 △3개월 이상 연체된 사업장의 경·공매 처분 △경·공매 주기 1개월로 단축 △재입찰 시 직전 회 최종 공매가보다 10% 가격 하향 등을 골자로 한 정리 지침을 내렸다. 기존 경·공매 대상은 6개월 이상 연체된 사업장이었고 유찰 시 경·공매 주기는 3개월이었다. 금융사들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경·공매를 내놓으면서 부실 PF 정리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압박 수위를 대폭 높인 것이다.
이 같은 지침이 내려지자 업계는 물론 금융 당국 내부에서도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최근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주재한 민간 금융·거시 전문가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도 당국의 PF 사업장 정리 속도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당국이 추진 중인 PF 연착륙 방안을 빠른 속도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지만 예상보다 부동산 시장 충격이 클 수 있어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국의 예상보다 더 많은 시공사들이 도산하게 될 경우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으므로 거시경제 여건과 업계 상황을 살펴 유연하게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 역시 금리 인하 전망 등 거시경제 상황을 고려해 PF 처리 속도를 늦춰주기 바라고 있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 상승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향후 금리 인하까지 이뤄질 경우 자연스럽게 PF 사업장 사업성도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어서다. 저축은행 업계는 금감원의 고강도 지침에 유연성과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당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PF 사업장 정리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경우 오히려 경·공매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강화된 지침을 적용할 경우 매달 재입찰을 할 때마다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커 잠재 매수자들이 입찰가가 최대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게 되고 이는 곧 PF 구조조정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 사업장의 경우 경·공매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높아진 공사비부터 조정이 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사업장 조기 정상화가 쉽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부실 사업장을 급하게 처분한다면 부진에 빠진 저축은행의 실적을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 총 79개의 저축은행들은 약 5000억 원가량의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1년간의 순손실(5758억 원) 규모와 유사한 수준이다. 업계는 추가 충당금을 적립하고 부실 사업장 담보를 ‘헐값’에 처분하다 보면 올해 상반기 적자 폭은 지난해보다 클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금감원은 PF 정리에 대한 의지와 기존 지침의 주요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존 원칙은 유지하되 일부 예외를 부여한 것”이라며 “무조건 자율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격 설정에 대해서도 합리성 여부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9일까지 부실 PF 사업에 대한 재구조화 및 정리 계획을 제출받은 뒤 미비점이 발견될 경우 다음 달 19일부터 현장 점검과 경영진 면담에 나선다. 금융 당국은 다음 달부터는 본격적으로 경·공매 물량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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