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완충 제한" 응급 처방했지만 … 소비자에게 책임 떠넘겨
외부충격·제품결함·과충전
주요 화재 요인중 충전 통제
고객들이 직접 조치 취해야
車제조사·운전자 참여 관건
"내연기관 오일 교체하듯
배터리도 사전 점검 필요"
◆ 전기차 화재 파장 ◆
서울시가 9일 전기차 화재 예방 대책으로 '충전율 제한'을 꺼내든 것은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감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 차원에서는 이 대책을 강제할 방법이 없어 대책이 효과를 내려면 전기차 제조사와 소유주의 자발적 참여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전기차 화재 건수는 187건에 달한다. 이 중 16건이 서울에서 발생했다.
전기차 화재 원인으로는 외부 충격, 배터리 결함, 과충전이 꼽힌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전국에 깔린 전기차 충전기의 기능을 당장 조절하는 건 무리이기 때문에 불안감을 잠재우고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하는 건 적절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율은 전기차 제조사와 소유주가 설정할 수 있다. 국내 완성차업체 중 현대자동차, 기아는 충전율을 스마트폰 앱이나 차량 내 콘솔에서 조정할 수 있다. 다만 제조사나 소유주가 충전율을 설정하는 방안 모두 외부에서 강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여장권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은 "충전율은 전기차 소유주가 언제든 설정할 수 있지만 자율적 의지에 맡길 수밖에 없어 지속적인 확인·관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개정을 추진하는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직접적인 불이익이 없다는 점 역시 이번 대책에 강제성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울시는 전기차 소유주가 제조사에 '90% 충전 제한'을 설정해달라고 요청하면 해당 차량에 인증서를 발급하고, 9월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개정을 통해 인증서를 발급받은 차량만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권고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공동주택에서 준칙 내용을 반영하지 않아도 강제하거나 제재할 근거는 없지만, 각종 인센티브 사업 배제 등의 간접적 불이익은 줄 수 있다"며 "현재 전기차 화재로 많은 입주민이 불안해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자발적 참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기차 제조사 역시 최근 잇단 화재에 대해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충전율을 제한하는 것은 별개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칫 소비자에게 전기차 성능에 대한 의구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 본부장은 "서울시가 충전율 90%를 적용하는 것은 지속성·안전성 때문이지, 전기차의 성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도 "제조사들은 충전율을 적용해 서울시 정책에 협조하면 외부에 '안전하지 않은 전기차'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배터리 충전 제한이 온전한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높은 충전량은 높은 에너지 양을 의미하므로 충전량을 제한하면 화재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줄이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배터리 충전량과 화재 발생 가능성은 직접적 연관이 없고, 충전량은 배터리의 수명이나 내구도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는 "충전율 제한 효과에 대해 일부 논란이 있더라도, 이를 행하는 것은 시민 안전을 지키고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전기차 화재 예방·대응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업계에서도 전기차 화재와 관련해 배터리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배터리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엔진오일을 주기적으로 교환하는 것처럼 배터리 역시 관리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배터리 이상 징후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고객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자체와 적극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전기차에 데이터 수집 장치를 탑재해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 알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 구독·교체 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완성차와 배터리업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공동 협의체가 지난 6월 출범했다.
[정석환 기자 / 박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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