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공시 사후검증 해야”
1Q 정기주총 의결권 행사내역 점검 결과
펀드 5개중 4개, 불성실 의결권 행사
“금융지주·대기업 계열, 외부압력 무시 못 해”
“시스템은 충분···인식개선+유인 제공해야”
"소액주주 위한 주총 전자투표 의무화도”
정부가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강조하는 가운데 자산운용사들은 실효성 있는 의결권 공시를 위해서는 인센티브 혹은 페널티를 부여한 사후 검증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지주 및 대기업 계열 기관투자가는 이해관계자들의 요청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만큼 이들이 내세울 만한 실질적 근거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운용사에 자금을 위탁하는 연기금 등에서 의결권 공시의 사후 검증을 통해 추후 위탁운용사 선정에 반영하는 방식 등이다. 나아가 주주총회의 전자투표 의무화 등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9일 서울경제신문이 삼성·미래에셋·KB·신한·한국투자·NH아문디·신영·트러스톤·타임폴리오·VIP자산운용 등 국내 공모펀드 운용사 10곳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70%가 독립적 의결권 행사를 위한 세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정부가 연초부터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첫 단추로 올 3월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 등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지속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 참여는 매우 저조한 상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달 8일 운용사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아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재차 당부했으나 쉽지 않아 보인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 유도하기 위한 자율 지침이다.
공시 당사자인 자산운용사들은 굳이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특히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관투자가일수록 외부 입김이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A운용사 대표는 “중소형 독립운용사를 제외하고 대기업 및 금융지주 계열 운용사들은 사실 여러 루트로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며 “(본인들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앞으로 계열사 거래를 끊겠다고 압박하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반대를 하겠나”고 반문했다. 그는 “부당한 요청이 왔을 때 운용사를 보호해줄 만한 더욱 강력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B운용사 대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운용사 자체적인 책임의식”이라면서도 “의결권 행사를 어렵게 만드는 대상들에게 경고할 수 있는 특정 수단이 있으면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는 운용사들에 자금을 위탁하는 연기금 등이 의결권 공시를 평가해 가점 혹은 감점을 부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C운용사 대표는 “운용사에 돈을 맡긴 기관들이 의결권 행사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실행해 주주가치를 보호했는지 점수를 매겨 향후 위탁운용사 선정에 반영한다면 외부 압력에도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공적연금(GPIF)는 2015년부터 내부에 ‘ESG&스튜어드십’ 부를 구성하고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주주 관여 활동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또 정성적 평가항목 내 수탁자 책임 활동 비중을 10~30%까지 늘리기도 했다. 이 같은 제도가 만들어지자 GPIF의 위탁운용사에서 기업과 대화에 나선 건수는 2018년 2900여 건에서 2022년에는 6400여 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국내 연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여부에만 가산점을 줘 도입만 하고 실제 주주 관여 활동까지 나서지 않는 운용사들이 대다수다. D운용사 대표는 “일본은 임원 보수 한도나 대표이사 연임을 반대할 수 있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명확한 기준이 있다”며 “주주가치에 위배되는 안건이 있을 때 찬성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가 조금 더 분명하고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F운용사 대표는 “모든 것을 법제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운용사가 독립적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압력을 가하지 말라는 꾸준한 메시지가 나온다면 보다 수월하게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소액주주의 적극적인 권리 행사를 위해 주주총회 전자투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현재 상법상 전자투표 실시 여부는 회사 자율로 정하게 돼 있어 쪼개기 물적 분할 등의 안건에 대해 소액주주의 반대가 예상되면 활용하지 않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E운용사 대표는 “전자투표 의무화가 된다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이 적극적으로 반영돼 현재 나타나고 있는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이라 기자 elalala@sedaily.com조지원 기자 jw@sedaily.com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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