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접으며 괴로움 호소…명품백 종결 압박이 사인”

송인걸 기자 2024. 8. 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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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숨진 채 발견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김아무개(51) 부패방지국장이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사건 처리 문제로 극심한 압박감을 느꼈다는 주변 인물들의 증언이 9일 잇따랐다.

이 사건의 조사 실무를 총괄했던 김 국장이 사건을 수사기관에 이첩하자는 자신의 의견과 달리, 권익위 수뇌부가 '종결'을 밀어붙이자 주변에 괴로움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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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지인들 분통…진상조사 요구도
9일 오후 세종 도담동 세종충남대병원 쉴낙원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아무개(51)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빈소 모습. 김채운 기자

지난 8일 숨진 채 발견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김아무개(51) 부패방지국장이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사건 처리 문제로 극심한 압박감을 느꼈다는 주변 인물들의 증언이 9일 잇따랐다. 이 사건의 조사 실무를 총괄했던 김 국장이 사건을 수사기관에 이첩하자는 자신의 의견과 달리, 권익위 수뇌부가 ‘종결’을 밀어붙이자 주변에 괴로움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이날 빈소가 마련된 세종시 도담동 세종충남대병원 쉴낙원장례식장을 찾은 권익위 고위 간부 출신 ㄱ씨는 “(김 국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김 여사 명품 백 사건 관련 압력 때문이라는 건 권익위 선후배들 사이에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이 친구가 원래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감이 있다”며 “(죽음의 원인이) 명품 백 때문이라는 것은 100%, 120% (명백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영국에서 부패방지 분야 석사학위를 받고, 주경야독하며 최근 행정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등 누구보다 부패방지 업무에 ‘진심’이었던 김 국장이 상부의 압력에 무척이나 힘들어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ㄱ씨는 “자기 소신과는 맞지 않는 결정을 하면서 (상부 지시를) 따라야 하니 김 국장 성격에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며 “주위 동료들에게 ‘권력을 따라가는 놈’으로 비칠까 얼마나 자책감을 느꼈겠느냐”고 말했다.

김 국장의 유족들도 빈소를 찾은 야당 의원들과의 면담에서 “충분한 진상조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김 국장의 작은아버지 김아무개(77)씨는 “워낙 과묵한 성격이라, 하루 이틀 불만이 쌓여 행동한 게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권익위 관계자 ㄴ씨도 “고인이 힘들어했다는 건 동료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며 “종결 결정에 비판이나 조롱 댓글이 많이 달리면서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권익위 내부에선 김 국장이 전원위원회를 전후해 상급 지휘라인에 있는 정승윤 부위원장과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권익위 관계자 ㄷ씨는 “김 국장으로선 자신들이 조사한 대로 전원위원회에 (논의 사전자료로) 1안, 2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전원위에서 정 부위원장은 ‘최재영 목사가 연약한 여자를 교묘하게 함정수사로 이용했다’고 했고, 소수의견을 내겠다는 권익위원들에겐 ‘법에 어긋난다’고 하니 (김 국장이) 힘들지 않았겠느냐. 김 국장이 힘들어서 그만두려 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들도 같은 맥락의 말을 전했다. 권익위는 지난달 12일 민주당 보좌진들을 상대로 업무설명회를 열었는데, 당시 김 국장은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조사에 질문이 집중되자 “개별 사건은 답변드릴 수 없다”, “비밀유지 의무 때문에 답변 못 한다”는 말만 거듭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김 국장이 ‘답변을 못 한다’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 보였다. 당당하고 떳떳한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심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한국투명성기구는 이날 논평에서 “사망한 공직자는 명품백 사건 처리 등을 두고 상급자와 갈등을 겪고 심각한 모멸감과 좌절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권익위원회가 독립적인 반부패 청렴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국민권익위원회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공무원노조도 이날 성명에서 “부패방지 업무 전문가로서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온 공직자에게 이번 (명품백)사건 종결 처리는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수사기관은 명품백 사건 조사와 관련한 윗선의 압박이나 부당한 개입이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송인걸 김채운 서영지 임재우 고한솔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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