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의 횡단] 침팬지 나탈리아의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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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동물원의 침팬지 나탈리아는 죽은 새끼를 100일 넘게 안고 다녔다.
뼈만 남은 새끼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말라버린 살가죽을 하염없이 쓰다듬다가 새끼의 고개가 꺾여 땅으로 곤두박질치려고 할 때는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모든 침팬지가 나탈리아를 살폈다.
침팬지들은 새끼를 품에 안고 움직이지 않는 나탈리아에게 먼저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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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동물원의 침팬지 나탈리아는 죽은 새끼를 100일 넘게 안고 다녔다. 뼈만 남은 새끼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말라버린 살가죽을 하염없이 쓰다듬다가 새끼의 고개가 꺾여 땅으로 곤두박질치려고 할 때는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제대로 먹지도 않으면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사육사들은 나탈리아를 돌보지 않았다. 돌볼 필요가 없었다. 모든 침팬지가 나탈리아를 살폈다. 우리 안은 내내 조용했다. 흔한 장난이나 다툼은 사라졌다. 침팬지들은 새끼를 품에 안고 움직이지 않는 나탈리아에게 먼저 다가갔다. 나탈리아의 등을 토닥이고, 포옹했다. 죽은 새끼를 함께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얼마 전 이태원에서 만난 친구는 작년 10월 핼러윈 기간에 이태원에 왔었다고 했다. 어디서 놀았냐고 묻자, 그는 망설이다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그 골목에 꽃 한 송이를 두고 왔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사람'으로 보이냐고 걱정했다. 그에게 용기 있다고 칭찬하다 스스로 놀랐다. 어느새 나는 애도를 용감한 행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마땅한 애도가 유난이 됐다. 눈치 봐야 하는 일이 됐다. 한국방송(KBS)은 최근 자사 취재기자가 노트북에 붙인 세월호 노란 리본을 '삭제'했다. 간판 뉴스인 KBS 9시 뉴스에서 생중계로 연결됐을 때는 있던 노란 리본 스티커가 다시 보기 영상에서 모자이크 처리되더니, 밤 11시 두 번째 생중계 때는 노트북에서 스티커가 떼어져 있었다.
기형적인 '자기 검열'은 세월호 참사 이후 싹텄다. 당시 유가족들이 보험금을 노리고 있다는 주장에 사람들은 흔들렸다. 풀릴 필요가 있는 의문을 제기해도 정치 공세라는 비판이 나왔다. 모두 함께 슬퍼하던 나라는 점차 좌우로 갈라졌다. 사람들 입에서 "피로하다" "지겹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가의 침묵이 만든 폐해다. 진실이 묻힌 공간에는 추측과 루머와 혐오가 망령처럼 떠돈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유언비어들은 서로 공명하며 공간을 가득 메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에 따르면 담론은 권력에 의해 취사선택된다. 정부가 무언가 말하지 않는다면 그건 부작위가 아니라 철저한 작위이자 전략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외아들을 잃은 슬픔을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에 절절하게 풀어냈다. 그는 모든 상실에는 진통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감미로움'이 있기 마련이지만 "오직 참척(慘慽)의 고통에만 전혀 감미로움이 섞여 있지 않았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었다"고 적었다. 상상할 수 없는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려면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는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흉터를 가리도록 종용하는 사회는 비정하기만 한 게 아니다. 은폐된 상처는 오히려 모두를 과거에 붙잡아 둔다.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저서 '인류 진보의 단계'에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다시 그 과거에 처할 운명"이라고 적었다. 흉터를 아프게 직시해야 미래로 갈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침팬지가 되겠다. 썩어가는 새끼의 시체를 어미와 함께 어루만지겠다. 적어도 어미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겠다. 내게도 그 포용이 필요할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찌하겠는가.
[김상준 글로벌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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