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의 세계명반산책] 인간 김민기의 마지막 꿈

2024. 8. 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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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1일 그가 세상을 떠났다.

SBS에서 3부작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상영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접한 비보였다.

금지 가요로만 전해지던 김민기의 1971년 앨범은 한국 대중가요의 판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1996년에는 학전 그린 소극장을 추가로 개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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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의 첫 번째 정규 앨범 재킷.

2024년 7월 21일 그가 세상을 떠났다. SBS에서 3부작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상영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접한 비보였다.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난 그의 사인은 위암이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빈소와 장례 절차는 모두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문구가 연일 이어졌다. 김민기는 한국 음악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일까.

1951년생인 그는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도깨비 두 마리라는 의미의 '도비두' 포크 듀오를 만든 그는 1971년 첫 번째 정규 앨범을 제작한다. 이듬해 모교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꽃피우는 아이' 등을 부르다 경찰서에 연행된다. 1973년에는 시인 김지하와 함께 '금관의 예수'를 무대에 올린다.

그는 1974년 제대하는 선임하사를 위해 '늙은 군인의 노래'를 작곡한다. 이후 김민기는 더 이상 음악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부재했다. 야학 선생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 노동자를 위한 축가 '상록수'는 1979년 양희은이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부활시킨다. 노래 '바람과 나'는 한대수가 김민기를 위해 작곡해 준 곡이다.

금지 가요로만 전해지던 김민기의 1971년 앨범은 한국 대중가요의 판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건전 가요 일색이던 상황에서 그가 만든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가사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일종의 거울이었다. 김민기는 1980년에야 가수로서 문화체육관 무대에 등장한다. 필자는 1985년 여름에 그의 노래를 처음 알게 되었다.

김민기는 1991년 서울 대학로 학전소극장을 개관한다. 그는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4장에 달하는 음반을 출시한다. 학전의 간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는 당시 무명이던 배우 황정민, 설경구, 재즈 싱어 나윤선 등이 참여한다. 한편 가수 김광석과 안치환 등은 학전 무대를 통해 싱어송라이터로서 기반을 다진다. 1996년에는 학전 그린 소극장을 추가로 개관한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에도 김민기는 아동극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 때문에 학전소극장에는 가족과 함께 아동극을 즐기려는 관객이 모여든다. 김민기의 후반생은 극장을 방문한 아동의 환한 웃음과 함께였다. 한편 세상은 여전히 그의 명곡 '아침이슬'과 '작은 연못'을 기억하고 있었다. 노래 '작은 연못'은 메타포의 절정을 보여주는 명곡이다.

필자는 1990년대 후반 학전소극장을 방문했다. 담당자와 회의를 하던 중 신기루처럼 사무실 복도를 지나는 김민기의 뒷모습을 보았다. 순간 그의 노래들이 주마등처럼 부유했다. 노래 '봉우리'의 가사처럼 내게 김민기는 한국 음악의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거친 일상에 시달릴 때는 앨범에서 접했던 그의 절절한 가사와 목소리를 떠올렸다.

김민기는 2018년 인터뷰에서 함께 살아가는 늙은이로 남고 싶다는 말을 남긴다. 학전소극장은 2024년 3월 문을 닫는다. 재정난과 그의 투병으로 운영이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고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어떤 추모 공연이나 행사를 하지 않기를 원했다. 인간 김민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봉우리처럼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봉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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