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도광산 비판 우려해 일본 대표 발언 ‘바꿔치기’한 외교부
외교부가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관련 보도자료에서 사도광산 전시물과 관련한 일본 대표 발언을 실제와 다르게 소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시물이 “모든 노동자”와 관련됐다는 발언을 “한국인 노동자”로 바꿔 옮긴 것이다. 외교부가 일본의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지우기를 용인해놓고 국내 여론의 반발을 우려해 발언을 조작한 것 아닌지 해명이 필요하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일본 수석 대표 발언문에 따르면,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지난달 27일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은 모든 노동자가 처했던 가혹한 노동 환경을 설명하고 이들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와 관련된 새로운 전시물을 이미 현장의 설명·전시 시설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이 발언을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이미 설치했다”로 바꿔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지난 수개월간 일본 정부와 가진 진지한 협상의 결과물”이라고 자찬했다.
외교부는 너무 긴 표현을 옮기며 줄이다 보니 발생한 일이었다고 해명했으나, 해당 보도자료는 발언의 축약이 아니라 주요 언급을 발췌한 것이다. 게다가 국가 간 외교에서 상대국 발언문의 핵심 단어를 멋대로 바꾼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사안의 성격상 ‘모든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는 의미가 천양지차여서 함부로 바꿔 쓸 내용이 아니라는 점은 외교부가 누구보다 잘 알 것 아닌가.
일본과의 사도광산 협상에 대한 외교부의 설명은 줄곧 석연치 않았다. 외교부는 처음엔 ‘강제성이 드러나는 표현’을 일본이 수용했다며 성과를 강조했으나 ‘강제’(forced to work) 표현 명시를 요구했는지에 대해서는 “표현 문제를 일본과 협상한 것은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그러나 이후 이재정 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일본에 ‘강제동원’ ‘강제노역’ 등 표현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실토했다. 결국 외교부는 일본에 ‘강제성’ 표현 요구를 거부당했는데도 유산 등재에 찬성해준 것도 모자라, 국내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 대표의 발언문까지 직접 ‘마사지’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렇게까지 일본을 감싸는 이유가 뭔지 요령부득이다.
일본 정부는 니가타현 현립문서관의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명부를 공유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양보만 거듭하니 한국 정부를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닌가. 지금의 한·일 관계는 “일본의 역사를 세탁하려는 기시다 정권이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완벽한 공범을 찾아냈다”(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는 논평이 과하지 않다. ‘사도광산 외교참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고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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