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론] 안세영과 쇼펜하우어

최영미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2024. 8. 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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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짧은 언어로 쇼펜하우어의 본질을 꿰뚫은 니체도 대단하고, 그렇게 누구도 섬기지 않고 살아남은 쇼펜하우어도 대단하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쇼펜하우어가 17세 때 사고로 죽었는데, 부친이 남긴 유산으로 쇼펜하우어는 당시 독일의 대학 교수가 받는 샐러리의 2배에 달하는 이자 수입을 얻었다.

쇼펜하우어가 위대한 게 아니라, 그의 남다른 철학을 이해하고 지지한 독일의 교양 높은 독서가들이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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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최영미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그의 가르침은 버림받아도

그가 살던 삶은 남아있으리라

그를 오직 응시하라!

그는 어느 누구도 섬기지 않았다!

니체(Friedrich W. Nietzsche)(이상일 옮김)

이처럼 짧은 언어로 쇼펜하우어의 본질을 꿰뚫은 니체도 대단하고, 그렇게 누구도 섬기지 않고 살아남은 쇼펜하우어도 대단하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는 72세까지 살았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쇼펜하우어가 17세 때 사고로 죽었는데, 부친이 남긴 유산으로 쇼펜하우어는 당시 독일의 대학 교수가 받는 샐러리의 2배에 달하는 이자 수입을 얻었다. 누구도 섬기지 않았던 그의 꼿꼿한 자존심과 염세주의는 돈에서 나왔나. 

쇼펜하우어가 위대한 게 아니라, 그의 남다른 철학을 이해하고 지지한 독일의 교양 높은 독서가들이 위대한 것이다. 독일의 철학계와 출판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글들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아카데미 밖의 전문가들, 취미로 철학을 공부했던 법률가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위대한 게 아니라 미켈란젤로를 살려주고 까칠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한 메디치, 교양 있고 부유한 부르주아지들이 위대한 것이다. 뛰어난 예술가이자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을 지녔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는 88세까지 살며 왕성한 예술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세영이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쇼펜하우어처럼 누구도 섬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은 운동선수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안세영 선수를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제 숨 좀 쉬고 살자"고 말하며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이랑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라는 발언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녀가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며 아픔을 참았는지, 어떤 분노와 절망을 삼키고 묵묵히 라켓을 잡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압박감이 얼마나 컸기에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긴장했을까.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고통을 이겨낸 그녀. 뛰어난 경기력도 멋있지만, 여왕의 품위가 느껴지는 금메달 세리머니와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사나운 포효도 아름다웠다. 안세영 이전의 대한민국 어느 여성 운동선수가 그녀처럼 위풍당당했는지?

"목표를 잡고 꿈을 이루기까지 원동력은 제 분노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자신의 인생 최고의 날에 '분노'를 말하는 슈퍼 스타를 우리도 갖게 되었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지난 몇 년간 세계를 제패한 안세영은 김연아 이후 한국 스포츠의 가장 빛나는 별. 파리올림픽 이전부터 그녀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화려하고 강한 스매시를 연달아 때리는 공격수가 아니다. 테니스의 노박 조코비치처럼 안세영은 수비를 아주 잘하고, 랠리를 길게 가져가며 상대방을 지치게 하다가 기회가 오면 한 방을 터뜨리는 스타일. 조코비치처럼 엄청난 체력과 수비를 바탕으로 정상에 올랐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후에도 국제대회 출전을 강행하는 그녀가 걱정스러웠었다.

2023년 유럽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후 인터뷰에서 그녀가 영어로 "Tonight I am champion"이라고 말할 때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안세영을 보아라. 그녀는 누구도 겁내지 않았다. 부상투혼이란 말은 한국 스포츠에서 사라져야 한다.

아픔을 참으면서 뛰는 선수를 보고 싶지 않다. 올림픽의 성취에 도취하지 말고 선수들이 더 편안한 환경에서 훈련하고 치료받기 바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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